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이오 Apr 09. 2023

EP9. ◆◆, 능성에서 복현까지

[EP9. ◆◆, 능성에서 복현까지]     


오만촉광에서 십만촉광으로     


 “강철! 3.1일부로 진급을 명 받았습니다.” 인생 첫 진급이었다. 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다사다난 했던 소위 시절을 보내고 정상적으로 중위 진급을 했다. 대부분의 소위들이 정말 특별한 사정이 아니고서야 모두 같은 날 진급을 한다. 그래서 그다지 큰 의미는 아닐지 모르지만, 기분은 좋았다. 다이아몬드 하나는 좀 불안해보였고, 세 개는 무거워보였는데, 두 개가 딱 적당해 보였다. 더군다나 중위가 되었다는 것은, 내가 전역 계급을 달았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무엇보다 설렜다.   

  

 두 가지 아쉬움도 있었다. 먼저는, “제가 소위여서 잘 모릅니다.”라는 말이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것. 그동안 유용하게 잘 써먹고 잘 먹혔던 멘트인데 이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다음은, 정복을 입고 진급식을 못했다는 것이다. 임관을 하고 정복을 입을 기회가 몇 번이나 있을까. 사실 진급식 때 정복을 입지 못하면, 공식적으로는 임관 이후에 입을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리 여단은 진급식을 전투복을 입고 진행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임관한 우리 기수는, 임관식도 합동으로 하지 못했다. 부모님 참석도 제한되는 상황이었어서 아쉬움이 컸다. 임관도, 진급도 정상적으로 축하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기도 했다.     


 그간 각자의 대대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진급식을 핑계로 오랜만에 동기들이 모였다. 같이 사진 하나 찍고 나니 바로 부대로 복귀해서 일 할거리가 쌓여있다는 연락을 받고 흩어졌다. 그래도 진급식인데, 좀 쉬게 해주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괜찮다 난 이제 중위니까. 소위의 시절도 너무나도 특별했다. 가장 열정과 패기 넘칠 그 시절을 잘 마무리했기에, 미련과 후회는 없었다. 앞으로 중위로서 보다 나은 복무를 다짐하며, 대대장님과 간부들, 용사들 앞에 서서 축하를 받았다.     

중위 진급식, 동기들과
진급 한달 후, 애정하는 인사 행정병과

 2022년 3월은 중위로 진급한 첫 달이기도 하지만, 작년에 결실을 맺은 교육대학원 합격으로 인해 새로운 학업이 시작되는 달이기도 했다. 두 가지의 설렘이 함께 왔다. 첫 진급의 설렘과, 군 복무와 학업을 병행할 수 있다는 설렘이었다. 원래는 일주일 4회 수업을 듣는 게 정상적인 커리큘럼이지만, 복무와 학업을 병행하는 것을 적응하는 차원에서 3회만 수업을 듣도록 수강신청 했다. 교직과목인 교육학개론을 선수과목으로 신청하고, 전공과목인 도덕윤리교육론과 응용윤리학연구를 신청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새 학기를 맞이할 때마다 늘 설레 했다. 같은 설렘을 복무 중에 느끼게 되니 더욱 기분이 좋았다. 책가방을 사고, 필기구를 장만하며 새 학기를 준비했다.     


 하지만,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일을 왜 요즘 ‘갓생’이라고 부르는지 이내 체감했다. 내가 대학원을 다닌다고 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일을 다닌다고 학업량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07시에서 0730분 사이에 출근해서 미리 업무 파악을 하고, 아침보고를 들어간 뒤, 일과 시간 안에 모든 일을 누락 없이 마무리하기 위해 치열하게 집중했다. 그렇게 1730분 일과시간이 마치면, 죄송하지만 양해를 구하고 바로 차로 달려갔다. 우리 부대는 대구 동구에 위치한 능성동에 있는데, 경북대학교는 북구 복현동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30분 정도 소요된다. 더군다나, 퇴근 시간이기 때문에 18시에 시작하는 교직과목의 경우에는 늘 교수님께 양해를 구하고 10분 정도 늦게 출석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약 21시경. 대충 때운 허기를 달래기 위해 간단히 저녁을 먹는다. 만약 과제가 있으면 추가적으로 과제를 하고, 부대 회식이 있으면 수업을 마치자마자 회식자리로 가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참석한다. 하루가 빠르고, 일주일이 빨랐다. 하지만, 생기가 돌았다. 학업이 삶의 활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공부가 즐겁다는 것이 재수 없는 말로만 느껴졌는데, 군 생활을 하며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큰 행복이고 활력소였다.     


 특히, 전공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사회와 윤리교육전공 중 고민을 했었는데, 윤리교육전공에서 배우는 이론들과 그것들에서 파생되는 물음들이 내게 큰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레포트 과제를 하거나, 발표를 준비하는 것이 크게 어렵거나 힘들지 않았다. 시간을 내서 책을 읽게 되고, 더 넓은 범위에서 활발한 토론이 될 수 있도록 의견도 적극적으로 개진하며 수업에 참여했다.     


 일을 마치고 바로 학교로 가다보니, 불가피하게 옷을 갈아입지 못한 채 군복을 입고 수업을 듣는다. 아마 주변 사람 눈에는 신기한 풍경일 것이다. 대부분 교사로 일하거나, 교사 지망생인데 군 간부 한명이 군복을 입고 수업에 참여하고 있으니 왠지 모를 딱딱함이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같은 과 동기 선생님들과도 말을 트고 친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린 편이다. 다른 선생님들은 좀 어색하긴 해도 말을 잘 걸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는 군인이라서 아마 말 걸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교수님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셨다.   

  

 뭔 군인이 한명 들어오네.      


  수업에 참여한 나를 보고 교수님들은 신기해하셨다. 더군다나 나는 항상 맨 앞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교수님이 던지는 질문에 가장 먼저 답하려고 노력했다. 그렇다보니, 아마 적잖게 눈에 띄는 캐릭터였을 것이다. 그런 은근한 시선을 즐기며, 학업에 열중하는 것도 즐거웠다. 특히 학부시절을 정치외교학과에서 수업을 듣고, 글쓰기를 하고, 술자리에서 이런 저런 토론을 했던 것이 내겐 큰 자산이었다. 대부분의 같이 수업을 듣는 선생님들은 교육학부 출신이셔서 토론을 즐기기보다, 강의식 수업을 선호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토론이 자연스럽고, 발표가 부담되지 않도록 훈련을 받아서인지 윤리교육전공 수업들에 쉽게 녹아들고 때론 주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수업에서 친해진 동기 선생님들(형들)과

 이제는 3학기 째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시점이지만, 아직까지도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고, 활력소이다. 물론 나는 굉장히 특수한 케이스이지만, 다른 방면으로라도 군 생활을 하며 무언가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용사든, 간부든 상관없이 자신의 앞날을 위해 무엇이든지 기회를 찾아 가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복무 중 학점인정제도, 병 자기개발비용, 온라인 학점인정 등 제도개선을 통해 기회를 확대하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간부들의 경우에는 주기마다 올라오는 사이버대학원이라든지, 정책연수과정, 하다못해 전화영어와 자격시험 강의 등의 할인 혜택 등 주어진 기회를 잘 찾아서 보다 미래지향적인 자기 계발을 병행한다면 풍성한 군 생활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추천한다.     


 (다음 화 예고) : EP10. D-100, 새로운 계획

이전 09화 EP8. 아니 대체 어떻게 합격한거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