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차-1 까오방 가는 길은 전쟁이었다]
새벽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시간, 나는 동랑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베트남 까오방으로 가는 직행 버스가 있는지, 아니면 적어도 베트남 북부와 연결되어 있는 국경도시 핑샹으로 가는 첫차가 몇 시인지조차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였기에, 불안감을 안고 일찍 일어나 택시를 잡았다.
도착한 시간은 6시 10분쯤.
생각보다 이른 시각이었지만 마침 티켓 판매 부스에 직원이 막 자리에 앉는 모습이 보였다. 이른 아침에 눈을 떠서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있는 터에 어떤 대답이 나올지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중국어로 천천히 물었다.
"혹시 오늘, 까오방까지 가는 버스가 있나요?"
직원은 친절하게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직행 버스는 없고, 핑샹 가는 버스만 있어요. 첫차는 7시 40분에 출발합니다."
나는 그 순간, 믿고 의지하던 chatGPT에게 뒤통수를 시원하게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난닝에서 까오방으로 가는 국제버스가 있다는 확신—사실 그건 나의 chatGPT만능설을 되돌아보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네이버에서 떠돌던 희미한 여행홍보 사진을 첨부했고, chatGPT한테 해석을 맡겼다.
그런데 문제는…
나도 그 한자 하나하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chatGPT 이 녀석도 딱히 직항노선이 없다는 것으로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 했는지 아님 글자가 희미해서 읽을 수 없다는 표현이 귀찮았는지 둘이 합쳐 ‘근거 없는 확신 콜라보’를 보여줬달까.
결국 속은 건 나 하나. AI는 원래 그런 거고, 과하게 믿은 내가 문제였다. 다음부터는… AI 요놈에게만 의지해서는 안되고, 현지 후기로 검증한다. 그런데 정보가 없는 장소는 참.. 직접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으니..
교훈: 기술보다 무서운 건, 내 확신이었다.
110위안으로 차표는 손에 넣었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분주했다.
“이 버스를 타고 정말 오늘 해 지기 전에 까오방, 그것도 누이맛턴(산신의 눈)까지 갈 수 있을까?”
시간은 촉박했고, 이동 경로는 안개 속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걱정할 틈도 없이,‘육로로 국경을 넘는 방법’이라는 미션 하나에 내 뇌의 모든 용량을 올인해야 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적어도 첫차가 있다는 건… 이 여정이 시작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갖춘 셈이니까. 나는 노을 비슷한 아침 햇살 속에서 걱정을 거듭했다.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새벽의 싸늘함은 점점 따뜻해졌고, 낯선 여정에 대한 긴장감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흘렀다. 버스에 올라탔을 땐 이미 좌석 대부분이 채워져 있었고, 대다수가 베트남으로 일을 하러 가는 듯한 현지인들이었다.
내가 옆좌석의 할아버지에게 “까오방까지 가는데 방법을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하자,
그 순간 주변이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더니,
마치 즉석 까오방행 포럼이라도 열린 듯, 버스 안은 금세 **“이 친구를 까오방에 데려다 주기 위한 대토론의 장”**으로 변모했다.
“핑샹에서 택시 타면 돼!”
“아니야, 거기서 로컬버스 있어!”
“그보다 이 사람은 중국인인가?.. 한국인이래”
저마다의 주장과 정보가 쏟아졌고, 나는 그 친절함에 감동하면서도, ‘아, 이래서 여행은 결국 사람이 만든다’는 말을 새삼 떠올렸다. 심지어 중국 출국심사장과 베트남 입국심사장에서는 누군가 앞에 있든 말든,“마! 이게 C-새치기다!”라는 시범을 몸소 보여주며 나를 자연스럽게 자신의 라인에 설 수 있도록 밀어 넣는 진풍경까지 펼쳐졌다.
그렇게 약 3시간 후,
나는 베트남 부북과 연결된 국경도시, 핑샹에 도착했다.
버스는 관광지처럼 생긴 어느 한 지점에서 나를 내려주었고,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도착하자마자
“여기… 어디?”
라는 의문과 함께, 나는 다시 방향감 상실 모드에 진입했다. 국경지에 웬 여객중심이란 말인가... 길거리의 사람들은 손짓으로 그 건물을 가리켰고, 나는 의심 반 기대 반으로 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건물 안에는 관광지 입장료 관련 절차를 처리하는 창구가 있었고, 직원이 나를 보며 묻는다.
"몇 명인가요?"
"한 명이요."
"여권 주세요."
나는 여권을 건넸다.
직원은 여권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내게 이렇게 물었다.
"비자가 없네요?"
그 말에 순간 당황했지만, 곧 침착하게 설명했다.
"저는 비자 면제 대상자입니다. 한국 국적이에요. 오늘 베트남으로 갑니다."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 그럼 10위안입니다”라고 말했다. 관광차 온 것이 아니라 단지 국경을 넘기 위해 이곳에 왔어요라고 말할 여유는 없었다.
나는 돈을 건네고 작은 표를 받았다.
표를 자세히 살펴볼 틈도 없이, 누군가 "셔틀버스 출발합니다!" 하고 외쳤고, 나는 그 소리에 놀라 급히 달려갔다. 셔틀버스는 출입국 사무소로 향하는 차량이었고, 이미 출발 직전이었다. 다행히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탑승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국경 넘기 미션’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