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자세로 국경을 넘습니다

[3일 차-2 이제 베트남]

by 인사신해

셔틀버스는 마치 나를 재촉했던 모습과는 상반되게 느릿하게 굴러갔다. 창밖 풍경은 심드렁했지만, 셔틀 안 공기는 복잡했다. 국경을 넘는 사람들의 계획과 속내까지 싣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 역시 설렘과 막연한 불안 사이에서 요동치는 심장을 달래는 중이었다.


버스가 멈췄고, 사람들은 조용히 건물 안으로 흘러들어 갔다. 여기가 바로 중국 출국 심사장이었다. 줄을 따라 들어가긴 했는데… 이상했다. 아무도 입장하지 않았다. 직원도, 열린 문도 없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정적. 물론 한국엔 육로 국경이 없지만, 언젠가 통일되면 볼 수 있을까? 그때까지 내가 현업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긴 공무원이 갑이고, 여기 모두 심사를 마냥 기다리는 이들은 을일 뿐. 다들 숨소리마저 줄이며 정면만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직원이 오기만 해 봐" 하는 무언의 단체 시위처럼.


그러던 중, 옆 라인의 문이 슬며시 열렸다. 모두가 움찔. 나도 그 틈에 재빨리 그 부스로 옮겨 탔다. 이런 게 바로 국경 넘기 생존 기술 아닐까. 눈치로 줄 잘 타야 시작이 달라진다. 같은 버스 옆 좌석의 할아버지가 이 줄로 손짓하는 것을 보니 나의 포지션이 틀리지는 않은 듯하다.


덕분에 빠르게 출국 도장을 받고 나왔고, 버스에서 함께 내렸던 이들이 기다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같이 베트남 입국장으로 걸어갔다. 길은 꽤 길었지만, 다행히 잘 정비되어 있어 도보 여행자에게는 봐줄 만했다.


면세점을 지나자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리석에서 시멘트로, 공무원의 복장에서, 몇 걸음 차이인데, 나라가 바뀐 게 실감 났다. 긴 줄, 단 하나의 심사대, 무표정한 직원, 그리고 던져지는 여권. 여기에서 기분 나쁨은 사치일 뿐, 던지면 잘 받으면 될 뿐.


긴 줄 끝에 서서 묵묵히 기다렸다. 입국 도장을 받고 나왔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감도 안 왔다. "뭐, 일단 사람들 따라가 보자"는 심정이었다. 그때 난닝에서 함께 온 한 남성이 다가와 물었다.


“까오방 가세요?”


끄덕이자 그는 “일단 랑선 시내까지 가야 해요”라며 안내해 줬다. 셔틀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엔 택시기사들이 우르르 몰려와 이리처럼 승객을 노리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자, 얼마까지 부르실 건가요?"*라는 태도로 그들을 맞이했다.


그중 한 베트남 기사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다가왔다. 협상 시작. 랑선 시내에 있는 VP뱅크 ATM에 들를 수 있느냐고 물으니 흔쾌히 OK. 토스뱅크의 현지 환전 수수료 무료 혜택을 받기 위한 필수 코스였지만 육로로 국경을 넘으니 이런 것은 불편하네.


택시를 타고 한참을 달려 ATM에 도착, 무려 3번에 걸쳐 돈을 인출하고 랑선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 그는 살짝 한마디 덧붙였다.


“은행에서 기다려줬잖아요, 5만 동만 더…”


겨우 2,500원이지만 아니, 이건 협상 전에 얘기했어야지. 그래도 동행이 있었다면 든든한 빽이 되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별것이 아닌데 쪽수는 무시할 수 없는 강점이다. 랑선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까오방 가는 버스는 아침 9시에 있었고 다음날 갈 수 있다는 매표소 직원에 약간 의심이 들었지만, 남은 옵션은 하나뿐. 택시. 가격은 약 110만 동, 한국 돈으로 약 5만 5천 원.


하지만 해지기 전까지 까오방에 도착하면 해 지는 누이맛탄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도 안 되는 낭만 하나가 마음을 기울였고, 택시를 탔다.


가는 길에 기사님은 자연스럽게 현지인들을 태웠고, 나도 자연스럽게 체념했다. 어차피 빈자리인데 뭐. 차 안은 이상할 정도로 평화로웠고, 나는 어느새 졸고 있었다. 이제야 국경 넘는 긴장이 풀렸나 보다.

까오방까지 타고 갔던 완행 택시


까오방 시내 도착. ‘란즈홈’이라는 작은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 사장님은 매우 친절했고, 기가 차도 기분이 좋아도 말이 통하지 않아도 계속 웃기만 했다. 그 미소에선 협상을 위한 투쟁의 용맹은 한우 살치살처럼 사라졌다.


오토바이를 빌려 누이맛탄으로 가려던 계획이 변경되었다. 맛탄산까지 길이 비포장길에 오르막이라니, 눈 딱 감고 택시로 가보기로 했다. 오늘은 택시 풍년일세.

마탄산까지의 SUV 택시와 도착전에 소들


차는 안정적으로 달렸다. 도착했을 때, 마탄산은 모든 소리를 흡수한 듯 고요했고, 그 가운데 뚫려 있는 ‘신의 눈’이라 불리는 거대한 구멍이 '오움...'소리를 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주변은 정비를 해서 마치 골프장처럼 풀을 짧게 깎아놓아 캠핑장으로 착각될 정도였지만 마탄산으로 향하는 길이 온통 소똥천지여서 인공과 자연이 어우러진 곳 같은, 그러나 인스타 속 요정이 나올 것 같은 초현실적 풍경은 없었다. 산 가까이 가 보려고 했으나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혼 여행의 중요원칙!

해 떨어지면 낯선 곳을 벗어난다! 나는 준비한 간이의자에 잠시 앉아 충분히, 아주 충분히 그 마탄산을 바라보고, 마음속에 담고 내려왔다.


시내로 돌아와 정신을 차리니 배가 고팠다. 숙소 사장님이 추천한 곳에 가보니, 식당이 아니라 야시장. 하지만 그날 밤, 하필 폭우. 야시장은 사라졌고, 나는 비를 피해 쌀국수 집으로. 맛은... 평범했다. 아니, 그냥 내 혓바닥이 하루 종일 고생한 맛이었다.


그러던 중 반미 샌드위치를 파는 노점 발견. 두 개를 품에 안고 숙소로 돌아왔다. 반지옥 폭포 앞에서 먹겠다는 작은 소망과 함께.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중얼거렸다.

“오늘 하루, 진짜 많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근데, 아... 내일은 반지옥 가야 하는데…”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잠이 들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