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차- 베트남, 까오방]
어젯밤, 나는 아침식사를 위해 반미 샌드위치 두 개를 고이 싸두었다.
긴 오토바이 운전 끝에 반지옥 폭포에 도착하면 반미 2개쯤 내 위에서 거뜬히 소화할 수 있을 거라는 호기로움, 그리고 그 수고를 보상받는 것 같은 입안 가득 저 맛있는 반미를 우걱우걱 씹어먹을 요량이었다.
아침 고요한 폭포 앞에서 반미 한 입. 그리고 이 모른 것을 해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서 말이지.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확인한 순간, 나는 좌절했다.
그 샌드위치는 이미 흐물흐물해져 밀가루 반죽처럼 변해있었다. 이 음식은 내 막바지 여행의 보상이 될 수 없었다. 쓰레기통으로 ㄱ.ㄱ.
내 아침식사는 그렇게 사라졌다. 하지만 여정은 계속되어야 했다.
새벽 5시.
해뜨기 전의 어스름 속에서 나는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목적지는 반지옥폭포. 약 3시간 거리. 길의 상태에 따라 얼마나 더 걸릴지 알 수 없었다.
아침안개 때문에 추위가 꽤 심했다. 비가 오는 것도 아닌데 온몸이 떨렸다. 가는 길에 비옷을 하나 샀고, 기능은 별로였지만 노숙자에게 신문지 마냥 심리적 보온효과는 확실했다. 2시간 정도를 달리니 배가 무척 고팠다. 아침을 꼭 든든히 먹어야 하는 나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마침 현지인이 모여있는 길가 노포식당을 발견했다. 저런 곳은 음식은 신선하고 가격도 적당한, 나 같은 맑은 날 비닐 비옷 무장자에게 완벽한 곳이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그들과 섞어 앉는다. 경계하는 눈빛이 느껴진다. 이럴 때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
I CAME IN PEACE.
그들이 추천해 주는 음식이 가장 최상의 메뉴이고 그들 대부분이 먹고 있는 음식이 주문가능한 최선의 메뉴가 분명하다. 그래서 합석한 여자손님이 먹고 있는 것을 가리켰고 어묵탕처럼 따끈한 국물이 먼저 나왔고, 뒤이어 창펀처럼 생긴 쌀가루 지짐 말이 요리가 내 앞에 놓였다.
속이 따뜻해지자 피가 도는 듯 피곤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바로 옆카페에서 마신 카페쓰어다.
4만 동 설탕라테! 그건 정말 반칙이었다.
폼이 진하게 올라온 부드러운 커피. 엔제리너스의 아메리치노는 비교되지 않는다.
단맛은 강했지만 피곤한 몸엔 딱 맞는 약 같았다.
그 순간, 내가 무시했던 베트남의 로부스타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처럼 느껴졌다.
길은 계속 이어졌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동안,
안개 낀 산길을 달리는 내 모습이
어딘가 산수화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현실과 비현실 사이, 그 경계 어딘가를 나는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반지옥폭포 도착. 사족을 붙이자면 중국 난닝에서 이곳 폭포(덕천폭포)로 올 수 있지만, 입장료가 3만 원이며 다시 베트남의 국경까지 돌아와야 하는 경로를 피해 이곳으로 바로 왔다는 나의 판단이 틀리지 않기를 바랐다.
베트남 반지옥 폭포의 입장료는 약 2,000원 정도.
조금 걷자,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이윽고 폭포가 눈앞에 펼쳐졌다.
폭포는 생각보다 크진 않았지만,
여러 갈래로 나뉜 물줄기가 두 단에 걸쳐 떨어지는 모습은
묘하게 정돈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양옆이 각각 국경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다.
왼쪽은 베트남, 오른쪽은 중국.
각 나라에서 나온 작은 뗏목들이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며 폭포 아래를 스치고 돌아갔다.
그 풍경을 보며, 국경이란 게 참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폭포 앞 바위에 앉았지만, 샌드위치는 이미 쓰레기통에 있었고,
나는 그냥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게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침묵 속에서 폭포는, 나의 실수를 힐난하지 않고 또 나의 업적을 칭찬하지도 않고 그저 흘러내렸다.
돌아오는 길은 확실히 수월했다.
몸도 익었고, 길도 익었다.
속도는 빨라졌고, 불안감은 줄었다.
오후 3시쯤 숙소에 도착했다.
슬리핑버스를 타기 전, 버스 회사에 들러 탑승 시간과 위치를 확인하려 했으나 문이 닫혀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날 전화해서 확인해 둘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대신 근처에서 식사를 해결했고, 필요한 약도 다시 챙기기 위해 약국을 찾았다. 그리고 드디어, 슬리핑버스를 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작은 셔틀버스가 란즈홈 숙소 앞까지 직접 왔고,
이 모든 것은 여사장님의 한 통의 전화 덕분이었다.
나는 여러 번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녀의 느긋한 웃음은 마지막까지 따뜻했다.
슬리핑버스는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넓은 좌석, 안정적인 주행, 그리고 조용한 차 안.
잠도 제법 잘 잤다. 중간에 몇 번 깼지만, 다시 금방 잠들었다.
그렇게 나는 불편하지만 동시에 편안한 상태로 하노이에 도착했다.
여행이란,
내가 계획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만나고,
예상한 것보다 더 나쁜 것도 겪고,
생각보다 수월한 길을 만나 안심하다가,
갑작스레 불편한 변수를 맞는—
끊임없는 시험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일.
마침내 마지막 날.
하노이에서 닌빈을 갔다가 다시 하노이 공항으로 돌아오는
이 여행의 가장 터프한 ‘지옥 스케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잠깐만 방심해도 비행기를 놓칠 수 있다.
이건 여행이 아니라 하루짜리 서바이벌 미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