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미션 버스 타기
등산화를 신어야 하는데 어제 신은 부츠를 신고 있었다. 다시 올라가서 바꿔 신었다. 현관문을 나오려다 아차, 아침 비타민을 안 먹었네 다시 신을 벗고 들어가 비타민을 챙겨 먹었다.
'이게 뭐냐 나 어떡하지! 건망증이냐 치매냐!'
혼잣말을 되뇌었다.
오늘의 미션은 ‘버스 타고 친구 만나러 가기’이다. 자가용 두 대를 이용하다가 퇴직 10년 만에 한 대를 정리하였다. 그렇다 보니 부부 중 누군가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날이 가끔 생기게 되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평소에 잘 이용하지 않기에 버스를 타려면 낯설고 어렵다. 요금이나 노선에 대한 정보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어제 버스앱을 설치하고 목적지인 무등산 증심사 입구에 가는 차를 한참 뒤적였다. 다행히 집 앞에서 한번 타면 갈 수 있는 버스가 있어서 번호를 저장했다. 교통요금이 결재되는 카드를 따로 호주머니에 넣었다.
집을 나서면서 버스앱을 여니 4분 전 도착이라는데 이번 버스는 포기해야겠다. 다음 버스는 15분 후 도착이라고 알려준다. 얼마나 고마운지 또 버스앱을 이용하는 내가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책을 읽는 것 마냥 눈은 쉬지 않고 주위를 둘러본다. 다음 정류장을 안내한다. '광주 예술의 전당 앞'이라고 한다. 예전 도청을 아시아문화전당이라고 하는데 문화예술회관이라고 알고 있는 이곳이 '광주예술의 전당'으로 개명되었음을 알았다. 버스를 탔기에 새롭게 알게 된 득템이다.
한참 만에 뒷자리가 비어 자리에 앉고 보니 앞이 훤히 보여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승객들이 버스에 오르며 카드대는 모습들이 각양각색이다. 핸드백을 갖다 대는 멋쟁이 아주머니, 작은 카드 지갑을 대는 예쁜 아가씨, 휴대폰을 대는 학생, 나처럼 카드 한 장 꺼내어 벌거숭이 카드만 대는 조금 나이 든 언니도 있고 바라보는 재미가 솔솔 하다. 옆에 카우보이 모자를 멋지게 쓴 아저씨가 커다란 목소리로 전화하는 내용이 내 귀에도 들려온다.
'우리 사이가 뜨거운 사이는 아니어도 정을 나누는 사이는 되지 않나. 기다릴게' 하신다
멋진 멘트에 나도 모르게 눈길이 아저씨의 휴대폰을 든 손으로 갔다. 손에는 흰색의 널찍한 얼룩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아뿔싸, 백선으로 무척이나 고생을 하셨겠다는 안쓰러움에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 순간 백선으로 많이 마음 아파했던 친구 영선이가 생각났다. 오랜만에 메시지를 보냈더니 다행히 바로 답이 왔다. 잘 지낸다고 서울에 오면 꼭 전화해라 한번 뭉치자 한다. 그럼. 그러고말고 좋지! 하고 답했다. 옆의 아저씨 덕분에 친구와 톡을 하고 나니 그 또한 감사했다.
약속시간에 2~3분 늦을 것 같아 미리 전화하며 뒷따라가겠으니 먼저 출발하라고 했다.
그런데 내리는 정류장을 잘못 선택했다. 앞 정류장에서 내려야 하는데 약속 장소를 지나쳐 한참 올라간 정류장에서 내리게 되어 속상하기도 하고 멀리 친구들이 기다리는 모습이 보여 마음이 급해졌다. 친구들은 나를 기다린 것이다. 누군가는 의도적으로 두 세 정거장 먼저 내려서 걷기를 한다는데 약속 시간을 촉박하게 맞춘 나를 반성했다. 자가용을 탈 때보다 훨씬 더 긴장되었다. 시간을 보니 계획된 시간보다 30분이 더 걸렸다. 앞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있으니 미리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을 만나서는 미션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했다. 버스앱 설치부터 버스 안에서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들을 모두 자세하게 얘기했다.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상기된 기분이었다. 뇌를 깨우기 위해서, 특히 노인들의 치매 예방의 한 방법으로 동네 산책을 하더라도 매일 같은 길로 다니지 말고 일부러 다른 길로 가보라는 얘기를 실감하는 오늘이었다.
문제는 친구들과 헤어져 집에 올 때였다. 야외 찻자리 행사 때 단체복으로 입을 쾌자(베자보다 긴 조끼 스타일)를 맞추고서는 친구가 데려다준다는 걸 괜찮다고, 오늘의 미션 성공해야지 하며 웃고 헤어졌다. 그 후 앱을 뒤지다가 마침 아침에 탄 버스가 있길래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갔다. 안내판을 보니 이쪽에서 타야 할지 길 건너서 타야 할지 애매하여 옆의 학생에게 물었더니 ‘여기 진한 화살표를 보셔야 해요 저쪽에서 타셔야겠네요’ 한다. 그래서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에 서있는데 어떡하나,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출발해서 가고 있었다. 이것이 문제였다. 20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나는 좌불안석이다. 데려다준다는 친구의 호의를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후회도 되고 지금이라도 택시를 탈까 하고 잠깐 고민도 했다. 직장 생활하며 가사에 육아에 바쁜 시간에 쫓기던 버릇이 여전했다. 솔직히 급한 볼 일도 없으면서 말이다.
심호흡을 하며 나를 알아차렸다. 마음을 진정하고 휴대폰을 열어 이것저것 뒤적이다 보니 벌써 버스가 온다. 이런 시간을 보내며 세월 무상함과 나에게 있는 여유로움에 감사하며 미션성공에 토닥토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