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기린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베란다의 꽃기린이 따사로운 햇볕에 부드럽게 웃고 있다. 막 이발하고 오신 아버지의 말끔한 모습이 꽃기린에서 보인다.
별로 사랑을 주지 않았는데, 아니지 거의 내팽개쳐 두었는데
"나 좀 봐주세요"
"나 여기 있어요" 하며 외치고 있다
근처에 사시던 아버지네가 서울로 이사 가기 전이니, 거의 13년 전 친정에서 가져온 화분이다.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무거운 화분을 가져다 거실 구석에 놓았다가 시든 잎이 많이 떨어져서 베란다 구석으로 옮겨 버렸다. 그리고 어느새 많은 세월을 함께 했다. 가시가 많아 분갈이도 힘들고 해서 내가 하는 일은 가끔 물 주고 가지치기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미안할 정도로 많은 가지를 쳐냈다. 이번 봄에는 내다보지도 못했는데 보스코가 정리하여 말끔하게 해 놓은 꽃기린의 모습을 보니 꽃이 아닌 아버지의 모습이 보여서 울컥했다.
많은 정성을 쏟았던 화분들과 정을 떼고 서울로 가셨으니 한동안은 마음이 많이 허하셨을 텐데 잘 이겨내시고 서울시민으로 사셨던 아버지시다. 어찌나 깔끔하셨던지 잠옷 솔기조차도 다림질해서 솔기의 구김을 제거해 드려야 편안히 잠드셨던 아버지시다.
가끔 서울에 가면
"미희야 네가 화분 정리 좀 해라. 네가 제일 잘해서 너를 기다렸다"하신다
서울에 가셔서도 하나 둘 사들인 꽃과 나무들이 베란다 가득이다. 큰 몬스테리아에서부터 작은 호야까지 아버지가 아끼시는 식물들이다. 나는 전정가위를 들고 덤벼든다.
잘한다는 것이 겨우 잘라내는 것이다. 그리고 화분의 재배치이다. 구석에서 빼꼼히 꽃을 피운 사랑초도 큰 나무 밑으로 내놓았다. 지난봄에 꽃을 피워 사랑을 받았던 철쭉도 철이 지나 저쪽 가장자리로 밀어 놓았었는데 앞으로 내놓으며 "드디어 너의 때가 또 왔구나 그동안 꽃 피울 준비로 힘들었지. 애썼다" 하며 쓰다듬는다. 그리고 자른 가지와 시든 잎들을 치운다. 자리배치가 끝나면 물을 주고 또 잎사귀에도 뿌려주며 샤워를 시킨다
모두들 "고마워요, 시원해요" 소리 지르며 웃는다. 덕분에 나도 기분이 좋다
아버지께서는 거실에서 나의 손놀림을 바라보시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신다. 나무들이 행복해하는 걸 느끼시는 표정이다. 가끔 의견도 내신다. 꽃봉오리가 오른 군자란을 당신 보기에 좋은 곳으로 옮겨 달라고 하신다.
유난히 꽃과 개들을 좋아 하셔서 젊어서는 셰퍼드와 진돗개의 족보를 따져가며 사 오시도 했다. 아침이면 우리가 다녔던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가서 훈련시키셨다. 공을 던지며 물어오게 하기를 반복하신다. 덕분에 우리도 함께 뛰어다녔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어느 해 겨울 나는 금붕어 다섯 마리를 사가지고 친정에 갔다. 커다란 옹기 항아리 뚜껑에 수초 몇 개 넣고 금붕어를 넣었더니 활기차게 꼬리를 흔들며 좋아라 한다. 아버지께서도 흐뭇해하셨다
-고놈들 잘 노는구나 하신다. 정성껏 돌보시며 사랑을 주시는 모습에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친정에 간 당번(형제들)들도 모두 금붕어에 관심 집중이었다. 아버지가 데이케어센터에 다니시고 몸을 가누지 못하실 때에도 먼저 챙기는 것이 "금붕어 밥 줬냐"였다. 당신 틀니 챙기는 것은 잊으셔도 그것은 결코 잊지 않으셨다. 그러던 아버지께서 지난해 이른 봄, 좋아하시던 꽃들이 아직 피기도 전에 하느님 품에 안기셨다. 엄마가 어서 오라고 손짓하신 것 같다.
어제 산책 길에 산수유와 매화를 만났다. 이렇게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철이 되면, 유난히 꽃을 좋아하셨던 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 꽃들에서, 포근한 봄햇살에서 넉넉하게 우리를 지켜주시던 아버지의 사랑을 느낀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