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에서
부산을 떨며 핀란드로 가듯이 영양으로 떠난다. 영하의 날씨는 아닌데, 손이 시리다. 나의 반쪽이 원하는 버킷리스트에 인제의 자작나무 숲에 가서 산책하기가 있다. 사시사철 하얀색 수피를 가진 자작나무 숲이 가지는 신비를 체험하고 싶어 한다. 얼마 전에 우연히 영양에도 자작나무 숲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강원도 인제까지는 너무 멀고 경북 영양이라면 하루에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부푼 꿈을 안고 오늘 실천에 옮기려 한다. 장장 네 시간에 걸친 운전을 하면서. 11월 말의 7번 국도는 단풍도 지고 황량함, 그 자체다. 하지만 둘이 하는 나들이 길이라, 또 갈망하던 자작나무를 보러 가는 길이라 마냥 즐겁다. 7번 국도를 지나,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를 거쳐 영양군에 들어서니, 입암면의 선바위가 반기고 일월면의 아가자기 솟아있는 바위산이 지나가는 차창으로 들어온다.
영양 검마산 가는 길의 초입, 죽파리에 도착하니, 셔틀 전기차가 손님을 맞이한다.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무료셔틀 전기차가 12시 30분에 출발한다기에, 기다리는 동안 근처 카페에서 따뜻한 생강차로 몸을 녹인다. 시장끼가 살짝 도는 시간이지만 어쩔 수 없이, 빨리 하얀 나무를 영접하고파, 터덜터덜 소리 내는 전기차에 올라 비포장 길을 달리고 또 내려서 숲 길을 걸었다. 전기차로 십분, 도보로 삼십여분이 소요되어 도착한 자작나무 숲! 참 신비하고 아름답다. 데크 길에 들어서기 전에 하얀색 나무 군락이 시야에 먼저 들어온다.
아! 저기 자작나무가 보이네. 여느 낙엽진 나무와 다르게 잎으로 만든 옷을 벗은 나신의 자작나무에서 환한 빛이 주변을 밝게 드러낸다. 탄식이 절로 날 수밖에 없다. 자작나무 숲의 초입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찰칵찰칵 기념사진 찍기에 여념 없다. 누구나 멋진 인생 샷을 남기고픈 욕망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나도 반쪽이와 찰칵하며 흔적을 남긴다. 기억을 더듬을 날을 기다리며.
여기가 어디인가? 북유럽의 핀란드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이색 풍경이 있는 동화의 땅인가? 순백의 나무가 서로 경쟁하듯 하얀 피부를 자랑하며 하늘로 손을 뻗고 있다. 백색 나무의 끝자락을 가름하기엔 내 시야가 너무 멀다. 자작나무 뿌리부터 자세히 드려다 보니, 나무줄기에 온통 먹으로 수놓은 옹이의 그림이 이름난 화가의 작품처럼 아름답다. 그런가 하면, 연한 회백색 수피는 보일 듯 말 듯 속살 드러나는 실루엣처럼 흐릿한 윤곽만 드러내며 있는 듯 없는 듯 가늘게 가늘게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참으로 진기하고 신비하다. 나무의 껍질이 어떻게 이리도 얇을 수 있을까 경이롭기까지 하다. 질감을 느끼고 싶어 손으로 만져보니 너무나 매끈매끈하여 맞닿는 피부가 미끄러진다. 보드랍고 매끈하다는 표현이 적절할까 걱정스럽다.
옹이가 그린 그림! 자연이 만든 그림은 사람의 마음을 녹인다. 그림 속에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따스함이 모든 것을 감싸 안듯 하여 저절로 나의 모든 것을 맡기게 된다.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시간이 쌓여 형성된 나이테 모양의 옹이는 그 세월만큼이나 인고의 아름다움으로 드러나 감동을 주고 있다. 옹이 곁에는 아주 작은 미풍에도 실오라기처럼 나부끼는 수피의 부스러기가 빛에 반짝인다.
에메랄드보다 더 청아한 하늘에 손짓하고 있는 백색의 군상들을 보라. 참으로 경이롭지 않는가? 과히 그 풍광이 장관이다. 하늘은 더 쪽빛이고 자작나무는 더 하얗고 고운 피부라고 서로서로 자랑하는 듯 경쟁한다. 미끈하게 쭉 뻗은 자작나무들 사이사이 바람과 함께 산책하고 있는 나는, 아니 방문객들은 마치 선계에 와서 즐기는 듯이 마냥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마음은 심연의 숲에서 조용히 명상에 든다. 시간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갈 마음마저 사라졌다. 내일이 오지 않으면 좋겠다.
하지만 어쩌랴? 삶은 이 경이로운 순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일의 일상을 통해 자작나무 옹이의 나이테처럼 쌓여서 나타나는 것을.
돌아가는 길! 사랑하는 나의 반쪽과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 내려왔다. 정해진 시간에 출발하는 셔틀 전기차를 타기 위해 마음은 다급해진다. 서둘러 발길을 옮기며 타는 곳까지 왔다. 아쉽게도 정원이 차서, 30분 뒤에 배차된 다음 차를 타야 한다는 관리인의 안내를 받고 잠시 망설였다. 기다릴까 고민하다가 30여분이 소요되는 산책을 계속하기로 결정하고 산속 골짜기의 숲 길을 걸었다. 산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다. 춥다는 생각이 절로 나고, 허기도 함께 몰려온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거리에 반비례하여 무겁다. 한적한 시골이라 식당도 보이지 않는다, 따뜻한 곡차와 맛있는 음식이 아니더라도 추위를 피하고 배고픔을 달래줄 소중한 공간이 그립다.
마침내 영양 죽파리의 하얀 나무, 자작나무 숲 입구에 있는 셔틀 전기차 주차장에 다다른 시간은 오후 두 시가 넘어간다. 지친 몸을 달래줄 정갈하게 차려진 늦은 점심을 먹는다. 비빔밥이 꿀맛이다. 식당 아주머니의 정감 가는 미소와 친절은 덤이다. 반쪽이의 버킷리스트를 실천하고 돌아오는 길! 7번 국도는 시원하게 아래로 아래로 이어지고 자가용 차는 어둑해지는 시간까지 달리고 달려 남쪽 바다 가까운 집에 돌아왔다.
자작나무가 주는 이색적인 백색의 순결함이 일상으로 늘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2025. 11. 23. 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