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소소함을 찾아서 4

메밀꽃을 바라보며

by 산이

길을 가다가 길섶에 핀 이름 모를 꽃을 바라보듯이 물끄러미 보며 지나쳤던 보잘것없는 꽃으로만 여겨왔는데, 복잡한 도회생활에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을 떠올리니, 생각나는 꽃! 메밀꽃이다. 이효석 님의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소설 때문인가? 여름 끝자락에 한 번쯤 불러보고 싶은 꽃 이름이다. 예전엔 척박한 땅에 심어, 허기를 달래는 묵을 쒀 먹었던 구황작물일 뿐이었는데, 이제는 묵도 좋지만 꽃으로 마음을 달래는 순결함을 더하는 꽃이다.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것을 보러 강원도에 평창까지 갔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단다. 천년고찰 통도사, 그곳 산사의 암자에 가면 아기자기 엉겨 붙어 흰 솜뭉치 같은 그 꽃, 메밀꽃을 감상할 수 있다. 부산에서 3-4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라니, 기대된다. 가고 싶다고.

가끔 쉬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차를 몰고 드라이브 가는 코스 중에 무풍한송길이 있다. 수령은 알 수 없으나, 오랜 세월을 버티며 살았을 노송이 길게 늘어 선 걷기 편한 길이다. 아니 걷는 것만 좋은 것이 아니고 마음이 편해지고 근심이 사라지는 즐거운 길이다. 둘이 걸으면 더할 나위 없는 산책길이다. 통도사 일주문으로 가기 전에 나타나는 십여 리 되는 송림숲 길, 그곳의 이름이 춤추는 바람과 찬 송림이 있는 길이라는 뜻의 무풍한송길이다. 무풍한송길에서 일상의 평정심을 얻고 연인과 손을 잡으면, 내 손이 연인의 손인지 연인의 손이 내 손인지 분간할 길 없다. 연인과 내가 하나 되고, 바람과 송림이 하나 되니, 내가 금강송인 듯 빛이 난다. 여기 걷는 사람이나 금강송 솔잎 흔드는 바람이나 모두 너 나 할 것 없이 즐거움에 취해 피안의 춤을 추는 선계의 일원이다.

나의 마음은 지금 선계에 머물고 있는데, 마음을 이끄는 내 육신은 여전히 속세에 있으니, 산책 길에 소진한 에너지를 채우고픈 배고픔은 어찌할 수 없다. 통도사 절간식당에서 채개장으로 속세의 허기를 채우고 더 깊은 산속 암자로 들면, 산사의 풍광은 그저 한적한 시골일 뿐이다. 하지만 통도사 16 암자 중 미륵암 가는 길로 접어들어 굽이굽이 이어진 좁은 길을 따라가면 아하 어찌 여기에 저런 하면서 만나는 메밀밭이 나온다. 강원도 평창을 가지 않아도 되는 바로 그곳이다. 은은하게 밀려오는 풀 내음과 다르지 않지만 여리고 순한 향이 코를 자극하는 메밀 꽂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마치 푸른 잎사귀 사이사에 눈이 덮여 녹색과 흰색의 모자이크를 보는 것처럼 펼쳐진 벌판을 보는 장관이다. 멀리 산자락까지 하얀 물결이 출렁이고 메밀 향은 사방으로 퍼져 방문객의 마음마저 어린 시절로 향하게 순화시킨다. 아이가 되지 말래도 아이가 될 수밖에 없는 순수함을 자극한다.

보이는가? 저 멀리 메밀밭을 걷고 있는 두 사람을! 손을 잡지 않아도 마음이 동하는 듯이 보이지 않는가? 메밀밭이 와이파이 존이 되어 서로가 서로를 공유하여 공감을 나누는 사랑의 덩어리이다. 메밀꽃 가득한 자연의 품에 안겨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일상은 늘 소소하고 하잘 것 없는 일의 반복으로 단조롭지만, 메밀밭의 이 꽃들처럼 순백의 작은 솜털로 모이고 펼쳐져 마치 모든 생명을 포근하게 감싸 안은 것 같은 근원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 주기에 티끌 없이 맑고 순수하다. 내가 메밀꽃을 찾는 것은 봄꽃처럼 화사하고 밝은 꽃이라서가 아니고 소박하고 하늘거리며 흔들리는 약함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하얀 속살을 보이며 살랑살랑 거리는 그 순수함이 좋아서이다. 일상의 소소함을 찾는 이의 마음과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홀로는 약하나, 함께 소통하고 어우러지면 강하고 그래서 즐거움을 나누는 존재들이다. 메밀 꽂이 영글어, 또 묵이 되어 입 안에 들어와 담백함의 극을 느끼게 하듯이.


2025. 11. 19. 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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