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소소함을 찾아서 13

오후의 동네 카페 풍경 2025. 12. 18.

by 산이

커피 마시러 카페에 왔다.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의자에 몸을 맡기고 있다. 시야에 백발의 노부부가 보인다. 다정한 목소리로 소곤소곤 나누는 이야기 소리도 들린다. 알 수 없는 대화지만 참 정겨워 보인다. 한 세월 살면서 동고동락했을 노부부의 일상을 상상하면서 곱게곱게 사셨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이 겨울, 부는 바람이 차지 않고 훈훈한 바람이 되어 노부부가 더욱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가 시킨 커피가 나왔다. 뜨거울까 염려스러워 종이컵에 냉수를 가져와서 섞어 살짝 한 모금 마신다. 커피의 쓴맛이 그대로 입안을 자극한다. 신맛도, 고소함도 없는 쓴맛이 목을 타고 흐른다. 불에 탄 쓴 맛! 인생의 쓴 맛처럼 오래 입안에 남아 여운처럼 가시지 않는다. 누가 쓴 맛 뒤에 오는 고소함이 좋아서라고 했는가? 뜨거워서 맛을 느낄 수 없다. 향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원래 아메리카노의 맛이 시거나 고소한 맛을 담은 쓴 맛이라 알고 있기에 나의 뇌는 이미 그렇게 인지하는 듯하다. 쓴 맛 뒤에 오는 고소한 단 맛이라! 삶의 여정과 꼭 닮았다. 고진감래! 커피와 인생의 맛이 닮은 꼴이라니, 그래서 커피를 즐기는 건가? 지금 나도 일상의 무료함에서 오는 힘듦을 녹이는 쓰고도 고소한 아메니카노 한 잔으로 지친 몸을 달랜다.

여기는 전망 좋은, 뷰맛집이 아니다. 동네의 한적한 곳에 위치한 체인 커피집이다. 출입문 정면에 앉아 뚫린 창문으로 밖을 본다. 아파트 정문으로 자동차가 들어가는 모습도 보이고, 아파트 입구를 조경한 나무도 보인다. 겨울이라 낙엽은 떨어지고 마른 가지만 가엷게도 바람과 조우한다.

오후의 카페는 나이 든 어른들 세상이다. 셋 혹은 넷으로 그룹 지어,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이다. 젊은 날에는 치열하게 일상을 살면서 희로애락을 즐겼을 테지. 이제는 이선으로 물러나 지난 세월의 추억을 노래하며 지인을 만나고, 달콤한 혹은 쌉싸름하고 쓴 맛을 찾아 시간을 즐긴다. 이야기 꽃은 지칠 줄 모르고 시간은 어느새 저물어 간다. 빠르다고, 허망하다고 투정하며, 또 굽은 허리를 펴면서 헤어짐이 주는 빈자리를 아쉬워한다. 그렇다. 삶이 다 그런 거지. 여유를 즐기는 시간은 짧고 일하는 시간은 더디고 그런 거다. 그래서 아메리카노 커피의 첫맛이 쓰다. 음미하면 시기도 하고, 고소하기도 한데 말이다. 바쁘게 살 때는 쓴 맛만 느끼고, 여유가 생기면 쓴 맛을 음미하면서 신 맛, 고소한 맛! 다 느낀다. 인생도 살아 봐야 안다. 같은 이치니까.

다시 식어가는 커피를 한 모금한다. 이제는 독하게 쓴 맛이 가고 단맛이 입안의 뒤끝을 장식한다. 뜨거운 열에 감추어졌던 단 맛을 음미한다. 아주 찬 냉커피가 아니고 그냥 열이 조금 식은 커피이다. 가열차게 달구어진 나의 젊음이 가고, 약간의 온기가 남은 식은 커피처럼 나의 일상도 느릿느릿 쉬어가는 삶이다. 사실 몸의 에너지가 적게 작용한다는 말이지, 마음의 열정이 식은 것은 아니다. 생각할 여유가 더 많아 냉철하고 차분한 일상이다.

마지막 남은 식은 커피를 마신다. 카페에서 일어날 시간이 가깝다는 의미이다. 인생의 이선에 서서 사는 사람은 오라는 곳이 없어도 갈 곳은 많다. 남는 것이 시간이고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마음이 여유롭다. 카페 안에는 시간이 남아도는 어른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면서 비어 가고 있다. 이제 저녁이 되면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붐비겠지? 아마 그럴 거야. 나도 이제 자리를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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