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동 산복도로의 밤풍경 2025. 12. 20.
야경은 분명 낮의 풍경보다 아름답다. 민낯보다 화장한 얼굴이 이쁘듯이 말이다. 불빛이 도시의 구석구석 정리되지 않은 어설픈 어두운 민낯을 가리고, 색색 밝은 조명으로 화려하게 건물과 도로를 색조 화장으로 분칠 한다. 도시의 좋은 것만 보려고 한다면 밤이 좋다. 하지만 불빛 조명아래 숨겨진 삶의 진면목도 보고 싶다. 이쁘게 화장한 얼굴의 이면에 있는 마음 아픈 상처도 분명 자신의 것이기에 함께 좋아함이 옳다.
사진으로 보는 이 아름다운 야경이 산복도로의 어느 지점인지 알 수 없어도, 아니 알고 싶지도 않다. 그저 산복도로에서 보는 휘황찬란한 밤풍경으로 충분하다. 멀리 십자가 불빛이 붉게 빛나고, 위와 아래 도로를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트의 경관조명 불빛도 선명하다. 낮은 건물과 높은 건물에서 새어 나온 제각각의 불빛이 반영된 도시의 야경은 다채롭고 화려한데, 여기에 더해 빌딩과 교량의 경관조명까지 합해지니, 이곳의 밤풍경은 그야말로 환상의 세계를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조명의 불빛이 낡고 우중충한 도시의 미관을 삼키고 만다. 낮에 보는 깎아지른 계단도 숨기고 꺾어 돌아가는 골목길도 어둠이 먹었다. 불빛 뒤에 숨은 낡은 지붕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하늘 아래 밝고 화려한 불빛에 반사된 아름다운 광경일 뿐이다. 멀리 보이는 높은 빌딩의 조명은 밤의 환락을 더욱 부추긴다. 원근에 따라 펼쳐지는 조명은 마치 희뿌연 연기 같은 불빛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듯하다. 구름과 맞닿을 만큼 높은 빌딩의 불빛은 구름으로 향하는 통로처럼 연결되어 구름인지 불빛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낮의 모습은 과거의 세월이 말해주듯 산복도로가 처음 생겨날 때와 비슷한 외관으로 드러난다. 한집 두 집, 산을 깎아 집을 짓고 하루하루 살기 위해 짐보따리를 이고 지고 층층계단을 오르고 올랐던 꾸불꾸불한 골목길이 이제는 좁지만 그래도 포장이 되고, 난간이 있는 돌계단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옛 모습을 갖고 있다. 낡은 건물은 작게 생긴 땅 모양 그대로 층층이 개축된 채 세월의 얼룩과 함께 빛바랜 상태로 남아 있다. 구부정한 허리를 이제는 더 이상 펼 수도 없게 고정된 모습으로 일상을 살고 있는 노파를 보며 삶이 주는 고달픔과 시대의 아픔을 함께 기록한 역사를 읽는다. 밤에는 몰랐는데, 야경은 참 너무 찬란하고 좋았는데.
도시의 야경은 도시가 형성된 지형과 무관하지 않다. 조그마한 포구가 삼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대도시로 발전한 부산의 야경은 산과 바다가 만나 무너지고 메워지고 하면서 만든 구조물들의 화려한 밤옷처럼 빛난다. 그중에서 산복도로의 야경은 높고 낮은 지형의 등고선을 따라 삶의 고단함을 반영하며 만든 결과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피와 땀과 과거가 살아 숨 쉬는 어둠을 밝히는 밤풍경이다. 바다가 메워져 형성된 땅에는 고층빌딩의 불빛이 투자된 황금의 수량만큼 빛나고 그 너머에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교량도로의 경관이 이 시대 발전상을 상징하듯 번쩍번쩍 빛난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항구를 바라보면 하늘의 별이 내려와 춤을 추는 밤의 천국이 아닐까 하는 상상도 가능하다.
산복도로에서 보는 도시의 밤풍경은 참 아름답다. 하지만 산복도로에서 맞는 도시의 밤은 지나온 세월이 삶에 주는 무게보다 더 어둡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산복도로의 가로등 불빛은 멀리서 보는 야경으로 반짝일 뿐이다. 정작 밝아야 할 그곳의 산복도로는 어둡고, 또 굽은 노파의 등허리만큼 꼬불꼬불하고 좁은 길과, 가파른 계단길에 숨겨진 과거의 애환 등을 담아내고 있을 뿐 말없이 눈만 깜빡깜빡하는 듯 희미하다. 고지대라는 말만큼 고령의 주민만 떠나지 못해 남아 살고 젊은이는 어디로 갔는지 흘러가는 세월 속으로 사라졌다. 야경은 화려한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화려한지 알 수 없고 이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그저 모든 것이 덧없음이라 여겨져 눈시울만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