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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Feb 08. 2024

꿈은 포기하는 것

잘하는 것을 해야 했다.


나는 꿈이 많고 호기심이 많았다. 과학자, 기자, 정치인, 변호사, 사업가, 전문직 순으로 꿈이 변했다. 거창한 직업을 가지지 못했지만 삶에 큰 결핍은 없었고 되는대로 살았기에 꿈이 변한다는 것을 깊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꿈이 변한다는 것은 이루지 못한 것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나 꿈이 변했어.”라는 말은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의 변명에 불과했다. 나에게 꿈이 변했다는 건 ’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적당히 만만한 것‘으로 인생의 노선을 틀었다는 의미였다.


꿈이 자주 변하고 많은 성취가 없었던 것은 꿈에 대한 내 관점이 완전히 틀려먹은 것이 원인이었을 수도 있다. 어떤 책에서 읽었다. 꿈은 직업따위가 아니라 그 사람이 되고 싶은 인간상이라고 말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선생님, 강사, 교수와 같은 직업으로 인생의 폭을 좁히지 말고, 사람들을 가르치며 함께 성장하는 사람이라고 본인을 정의하고 그에 맞게 사는 것이 꿈을 이루며 사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실리콘벨리 대부가 전하는 생생한 MBA강의

피터 틸(페이팔 창업자)은 ‘제로투원’에서 청소년교육에 있어 다양한 직업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목적은 미래 교육에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앞으로의 미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는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인데 뷔페식으로 ‘뭐든 하면 돼’라고 교육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청소년들의 진로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교육의 최종적인 목적이 다양한 경험의 제공에 그치면 안 되고, 청소년들 각자의 특별함을 키워주는 교육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 피터틸의 생각이다.


다만 피터틸의 생각에 문제가 하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소년기든 중년이든 상관없이 인생의 대부분을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건 교육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건 호기심 많은 인간이라는 종족자체가 가지는 특징이다.


청소년들이 겪는 사춘기의 우울과 방황을 겪는다는 점에서 보면 중년에 접어드는 내가 청소년들과 공감을 나눌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30대 후반인 나는 늦은 사춘기를 겪고 있다.


나는 아직 내가 잘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 그저 다양한 가능성이란 허울 좋은 단어에 위로받고 있다. 과연 20대도, 30대도 아닌 이제 40대에 접어들 내가 다양한 가능성이 있기는 할까?


이 글을 보는 20대, 30대 분들은 작가의 늦은 사춘기를 보며 위로받으셔도 된다. 못난 어른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그들은 당신들의 빛나는 청춘을 언제나 그리워한다.


이제 나는 잘하는 것을 찾기보다 못하는 것을 포기할 나이다.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축소하며 소거법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뭐가 될지 모르지만 희망으로 가득 찬 청소년기의 사춘기가 부럽고 그립다. 하지만 하지 못 할 일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아가는 중년의 사춘기도 절망적이진 않다. 삶이 더 단순해지는 건 환영할 일이니까.


붉게 떠오르는 아침의 태양은 빛나는 오후의 화창함을 기대하게 한다.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저녁녘의 태양은 고요한 달빛에게 그 자리는 내어준다. 달빛조차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밤이 찾아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태초의 어둠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그렇게 태어나 그렇게 살다 그렇게 죽을 것이다.


어릴 적 죽음이 두려워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것으로 영원히 살고자 했던 철부지 꼬마 녀석은 엄마가 밥 먹으라는 소리에 집으로 돌아갔다. 그 자리를 좋은데 취직해서 친구들에게 뽐내려던 어른아이가 차지했지만 결혼하고 애를 낳더니 와이프에게 꽉 잡혀 사는지 통 연락이 안 된다. 늦은 저녁 회식을 마치고 술에 취해 퇴근하시는 우리 아버지는 이제 정년퇴직 후에 치킨집을 해야 하나 고민이 많으시다.


어찌 보면 ‘가능성의 축소’라는 말은 평범한 인생의 아름다움을 폄하하는 비난이 아닐까?


잘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야 했다. 그것이 제일 멋진 삶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살기 어려울 것이다. 잘하는 것을 하며 살기보다 못하는 것을 포기하며 살 것이다. 평범하지만 단순해질 것이고, 단순하면 평화로워질 것이다. 


이 생각까지 미치고 나니 주변에 많은 것들이 보인다.


나의 경우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아이들 웃음과 부모님의 주름이 보인다. 창문에 보이는 노을이 아름다웠다는 것도 먼지 쌓인 노트와 책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것도 보인다. 아내와 추억이 보관된 편지함도 보이고, 지키지 못한 목표들을 적은 공책들도 보인다. 모두 평범하지만 특별한 것들이다.


평범한 당신은 무엇이 보이는가?

내가 맞춰보겠다. 그건 분명 특별한 것일 것이다.


최고의 선택은 잘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다만 평범함에 좌절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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