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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Feb 13. 2024

네가 뭘 알아?

거꾸로 읽는 세계사와 살인자 O 난감을 보고

'나는 안다.'

'뭘?'

'어쨌든 안다.'

'그러니까 뭘?'


'내가 아는 것은 진짜 아는 것이 아니다.'는 거창한 인식론적 질문을 해보자는 것이 아니다. 평범하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를 질문해 보자는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고, 직장은 어디 어디를 다니고, 가족들의 이름은 무엇이고, 우리 집에 재산이 얼마인지 또 빚이 얼마인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오늘 아내의 기분이 왜 나빴고, 직장 상사는 왜 화를 냈는지, 친구는 왜 빌려간 돈을 갚지 않고 연락두절인지는 알지 못한다. 결국 우리는 인생에 별 도움이 안 되지만 간단한 것들은 잘 안다. 그러나 인생에 꼭 필요하지만 복잡한 것들은 잘 알지 못한다. 인생이 어려운 이유는 이렇게 간단하다.


우리는 모르는 일의 연속인 인생을 어찌어찌 잘 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출처:넷플릭스]


최근 방송된 넷플릭스 드라마 '살인자 O 난감'의 주인공 '이탕'은 자기도 모르게 살인자가 된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증거가 조작되거나 훼손되어 경찰의 수사망에서 제외되는 행운을 누린다.


"로또의 확률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이탕'의 대사 중


이탕은 극 중 두 가지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살인을 해도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는 것, 두 번째는 '스치기만 해도 범죄자를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이 두 능력을 바탕으로 이탕이 초보 살인범에서 정의 구현을 위한 자경단으로 성장하고 좌절하는 이야기가 살인자 O 난감의 큰 줄거리라 볼 수 있다.(최근 1년간 본 드라마 중 가장 재밌었다. 추천한다.)


극 초반부에 이탕이 우연히 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의 능력에 자기가 놀라 자빠지고, 살인은 계속되고 자포자기해도 포기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들이 이어지는 부분이 가장 흥미진진했다. 우리들의 일상도 이탕의 이야기처럼 극적이진 않더라도 놀랍고 흥미로운 사건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재미가 쏠쏠하다. 모르는 것을 알고 싶고, 알고 싶어 책을 봤는데 책 속에 생각지도 못한 답이 있었을 때 재미있다. 마치 '야 이런 게 있었네~'하는 보물 찾기에 성공했을 때 즐거움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떻게 하면 재밌는 글을 쓸 수 있을까?'에 답구하기 위해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보면 '글은 창작의 욕구가 샘솟을 때 폭풍처럼 몰아서 써야 한다.'거나 '자기가 잘 아는 분야를 쓰는 게 제일 좋다.'거나 '줄거리는 정해놓지 말고 상황과 인물만 설정해 놓고 쓰다 보면 자신이 작가이면서 최초의 독자로서 흥미진진하게 쓸 수 있다.'와 같은 답을 얻게 된다. 이것은 스티븐 킹이 마치 우리 집에 직접 와서 친절하게 내 질문에 답해주는 것과 같다. 이런 질의응답을 어디서 할 수 있겠는가? 책밖에 없다.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책을 읽는 즐거움이 가장 크지만, 우연히 읽다가 큰 깨달음을 얻는 경우도 많다. 최근 유시민 작가의 글에 심취해서 유작가의 책을 한 다발을 샀는데, 그중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으며 큰 깨달음이 있었다. 아마도 이 책을 중, 고등학교 때 우연히 주워 읽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최근 읽은 것이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른이 되고 나서 읽으니 이제 좀 읽을만하다. (출처:yes24)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유시민이 알려주는 '근, 현대 세계사 강의' 같은 책이다. 1차 세계대전부터 소련의 해체와 독일 통일까지 다양한 사건에 대해 간단하게 역사적 사실을 요약해 주고, 이에 더한 유시민의 해설이 곁들여져 술술 읽히는 책이다.


이 책은 내용뿐만 아니라 구성도 좋다. 러시아 혁명과 중국 공산혁명을 서로 비교하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여 구체제는 스스로 무너지며 구체제의 권력공백을 혁명이 메울 뿐이라는 점을 역설하는 부분이나, 히틀러에 의한 유대인 학살과 유대인이 저지른 팔레스타인 학살을 비교하여 역사에는 순수한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고 말하는 부분이 특히 좋았다.


그저 러시아 혁명은 레닌이 잘해서 일어났고, 중국 공산당 혁명은 마오쩌둥의 영웅적 업적이라는 식의 피상적인 역사지식이 얼마나 가벼운 지식이었는지, 히틀러의 참극으로 유대인을 피해자로만 보는 시각이 얼마나 편향된 시각인지, 이 책을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요즘 내가 얼마나 아는 것이 없는지, 그래서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반성하며 살아간다. 내가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는 것이 많아지면 오늘 아내가 왜 화가 났는지, 오늘 왜 상사에게 혼이 났는지, 돈 빌려간 친구는 왜 연락두절인지와 같은 인생에 중요한 문제들을 조금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모르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지 말자. 질문하고 답을 듣자. 묻는 것을 습관으로 만들자. 겸손하고 성숙한 어른이 되는 법이 이것밖에 더 있겠는가? 거창한 목표는 사람을 질리게 한다. 그러니 쉽게 생각하자.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는 것.'


이 것을 목표로 하자.


러시아 붉은 혁명은 구체제 스스로 무너져 성공한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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