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심탈레브, [행운에 속지 마라]
'귀인편향(歸因偏向)'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심리학적으로 인지적 편향이라는 말들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다. 잘못 생각하는 오류를 인지적 편향이라고 거칠게 정의하면 '귀인편향'도 인지적 편향의 일종이라 보면 된다.
여기서 '귀인(歸因)'이라는 단어가 중요한데, 쉽게 말해 인간은 뭐든지 원인을 찾으려 애쓴다는 말이다.
지하철에서 내 어깨를 치고 가는 사람에 대해 '저놈은 성질머리가 글러먹었어. 못된 심보 가지고 잘 살아보라지.'라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은 단지 화장실이 너무 급했던 것뿐일 수 있다.
이렇게 뭐든지 원인을 가져다 붙여서 해석하려는 경향이 '귀인(歸因)'이라면, '귀인편향(歸因偏向)'은 성공은 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실패는 내 탓이 아닌 외부요인 탓으로 돌리는 성향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귀인편향은 '불행을 남 탓으로 돌리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잘 안된 것은 남 탓이 우선이다. 그래야 심신이 평화롭다. 내가 산 주식이 떨어지는 이유는 '대통령 탓', '무능한 회사 경영진 탓', '승냥이들 같은 작전세력 탓'이지 않은가? 나는 한 번도 고점에 주식을 사본적이 없는 사람이다. 단지 내가 산 가격이 고점에 근접했을 뿐이다.
나심탈레브의 '행운에 속지 마라.'를 읽으며, 최근에 이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결혼이 두렵다는 친한 선배의 말이 생각났다. 나심탈레브에 따르면 불운은 통제 불가능한 것인데, 통제가능한 것으로 알아 삶이 괴롭다고 한다. 이를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대사에 적용하면 이혼이라는 불운은 내 인생에 발생할 수도 있고,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그냥 운인데, 미리 걱정하는 것은 멍청한 짓 아닐까?
'그냥 이혼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지만 형이 그러라는 법이 없으니 그냥 결혼해.'
이렇게 극단적 T성향의 인간처럼 말하진 않았다.
'형은 운이 좋으니까 그런 걱정하지 말고 지금 사귀는 분이랑 늦기 전에 결혼하셔.'라고 귀인편향이 흠뻑 담긴 말을 했다. 결혼 꿈나무에게 상처 주는 말은 삼가는 게 좋겠다 싶었다.
요즘 이혼율이 높다고 한다. 이혼율이라는 불분명한 통계수치는 언급하지 않더라도 매년 이혼건수만 따져보더라도 이혼이 아직도 심각한 사회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1990년대 초,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이혼은 5만~6만 건 수준이었는데,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계속 10만 건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혼건수가 정점을 찍고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줄어드는 혼인율을 생각해 보면 이혼의 자연감소 현상이 아닌지 의심된다.
그럼 주된 이혼 이유는 무엇일까? 공식적 통계조사가 최근까지 이루어진 건 없어 보이는데, 이건 뭐 부동의 1위가 정해져 있다. '성격차이'다. 점유율은 40% 이상으로 압도적이다.
이혼이라는 인생의 불행이 닥쳐올 때, 남 탓을 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성격차이'라고 쓰여 있지만 '네 탓'이라고 읽는 것이 꼭 이혼한 사람을 비난하는 것만은 아니다. 대인배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이혼사유에 '네 탓'이라고 적는 것을 비난한단 말인가? 모두 살아남으려고 그러는 것일 뿐이다.
나심탈레브는 '행운에 속지 마라.'에서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외부요인 탓을 하는 것을 보고 비꼬듯이 이렇게 말했다.
'이 과학자들은 자신의 실패를 '텐 시그마' 희귀 사건 탓으로 돌렸다. 자기 생각이 옳았는데 운이 없었다는 말이다. 왜 이런 반응을 보일까? 자존심을 지키면서 계속 역경을 이겨나가려면 그렇게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심탈레브, [행운에 속지 마라] p.299
나심탈레브의 이런 비꼬는 듯한 말투를 벗겨내고 이 말을 잘 살펴보면, '자존심', '역경', '이겨내기', '믿음' 같은 단어가 보인다. 여기서 나는 생각을 비틀어본다. '남 탓을 하는 것이 자존심 강한 자기 자신을 지키고, 본인에 닥친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기 위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남 탓'을 한다고 역경을 이겨낼 수는 없다. 도리어 '내 탓'을 생각하고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더 발전적이다. 하지만 인간은 단순한 동물이다. 지금 배가 고프면 뭔가를 먹고 싶고, 지금 졸리면 자고 싶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고로 시련이 닥쳤을 때 맨 처음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존본능이다. 이 것을 '부도덕하네', '의지가 박약하네', '머리가 비었네'라며 비난할 것은 아니다. 그저 인간의 약한 본성이 드러난 것일 뿐이다.
'남 탓'은 인간이면 누구나 한다. 다만 '남 탓'만하다 끝나면 정말 끝나니 '남 탓'으로 묵힌 감정이 좀 풀렸다면, 차분히 '내 탓'이 있나? 고 되물어볼 필요는 있다. 인간은 동물이지만 그래도 만물의 영장이 아니던가? 술이 취해 비틀거리며 넘어져도, 품위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게 인간이다.
'남 탓' 마음껏 하시라. 그렇게 마음이 풀리시면 된다.
(단, 너무 심하면 명예훼손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하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