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 카즈나리, [질문이 무기가 된다]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먼저다.
경영이나 자기 계발에 관련된 책을 읽다보면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대부분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데, 방법은 이렇다.
첫째, 중요도의 정도와 일이 급한 정도를 바탕으로 4개의 칸을 만들어 정리한다.
둘째, 중요하지 않은 문제는 하지 않는다.
셋째, 중요하면서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한다.
예를 들어 내가 애인이 있는 대학생이고,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다고 해보자. 중요한 일의 목록에는 ‘1)번 내일 생일인 연인의 생일 선물을 준비한다.’, ‘2)번 내일 시험인 '영문학의 이해' 전공서를 공부한다.’가 있다.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은 불쌍한 대학생은 시급한 정도를 따져 2)번 시험공부를 택한다.
왜? 틀렸다고 생각하시는가? 시급하면서 중요한 일 맞지 않은가?
자, 이제 결과를 보자. 위 대학생은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던 중 애인을 만났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대판 싸우게 된다. 왜냐? 생일선물을 샀는지 궁금해하는 애인의 질문에 우물쭈물거렸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애인은 선물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선물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자신의 생일을 우선순위로 생각하지 않았던 애인에게 실망하며 서로 다투게 된다. 결국 불쌍한 이 대학생은 시험도 망쳤고, 중요한 1번), 2번) 모두 해결하지 못했다.
대학생의 사례는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좀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일의 우선순위를 정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중요한 것, 중요하지 않은 것 따지는 것도 어렵지만 일의 시급성을 따질 때 애매함은 극에 달한다. 전쟁터에 있는 의사가 살릴 수 있는 환자와 살리지 못할 환자를 나눌 때 처절한 고뇌에 휩싸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할지 극도로 혼란스러운 경우를 종종 겪게 된다.
해답이 있을까?
답은 굉장히 간단하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쉬운 일과 지금 당장 할 수 없는 어려운 일로 나누면 된다.
우치다 카즈나리는 '질문이 무기가 된다.'에서 뉴욕의 중 범죄율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우리에게 '깨진 유리창 이론'으로 유명한 줄리아니 시장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처음부터 큰 걸음을 내디딜 필요는 없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해하기 쉽고 해결책을 내기 쉬운 작은 문제 쪽을 손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해결책이 제시되면 희망이 생기고 유권자나 부하 직원, 나아가 비판적이었던 사람들까지 말뿐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해 분명한 변화가 일어난다.' -[줄리아니의 리더십] 중-
줄리아니 시장은 뉴욕의 살인, 방화와 같은 중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 어려운 일이 아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주차위반 엄벌, 우범지역 낙서 지우기, 경범죄 단속강화와 같은 쉬운 일부터 시작했다. 작은 것들이 바뀌니 경찰과 시민들의 사기가 올랐고, 관광객들이 뉴욕을 안전한 곳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렇게 무질서에서 질서로 분위기가 바뀌고, 뉴욕의 중범죄율은 크게 줄었다.
우치다 카즈나리는 중요한 문제인지보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보스턴 컨설팅그룹 일본지사 대표 컨설턴트로서 오래 일했던 그는 일본의 많은 회사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일본 경영진들이 의욕도 있고, 능력도 있는데 너무 원대한 목표에 장기간 애를 쓰다 보니 회사를 변화시킬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은 회사를 컨설팅할 때 되도록 쉽고 빨리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설정하여 빠르게 해결에 착수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그러나 그 축복의 기운이 영원하리란 착각에 빠져 너무 큰 문제만 해결하려 노력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인간의 의지력은 한계가 있고, 우리가 사용하는 가장 귀중한 자원인 '시간'은 누구에게나 유한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세계사적으로 유래가 없는 경제발전 소위 '한강의 기적'을 이룩할 수 이유 중 하나는 우리 민족 특유의 성격 '빨리빨리'가 작동한 측면도 있지 않았을까? 원대한 목표와 계획은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할 일부터 해치워버리자.'는 결의로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은 아닐까?
개인에게 적용해도 같을 것이라 본다. 내가 추구하는 원대한 목표, 꿈, 계획 다 좋다. 그런 것 하나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은 인생에 꽤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지금 당장의 내 삶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오늘이 변해야 내일이 있고, 내일이 변해야 미래가 있다. 장기적 비전만 쫓다가는 평생 내 집 밖을 벗어나지 못한다. 세계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으면 일단 집 밖을 나와서 동네 산책이라도 하는 게 맞다. 침대 속에서 여행 유튜브만 보는 것은 대리만족일 따름이다.
이제 문제에 대한 '중요도, 시급성 표'에 얽매이지 말자.
중요하고 시급한 일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당신에게 주어져 있지 않은가?
바로 '당장 할 수 있는 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