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인문학 전공자의 세계에 대한 질문 — No. 10
서연은 2105년 서울의 "임종 시각 안내사"다.
그녀의 일은 사람들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무엇을 볼지 안내하는 것이다. 평생의 시선 데이터를 분석해, 그 사람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이미지를 찾아낸다. 그리고 임종 순간, 그것을 보여준다.
2087년부터 모든 인간은 출생과 동시에 시선 추적 임플란트를 이식받는다. 평생 무엇을 봤는지, 얼마나 오래 봤는지, 어떤 감정으로 봤는지. 모든 것이 기록된다.
서연의 취미는 20세기 음악 아카이브를 정리하는 것이다. 주말마다 국립 디지털 도서관에서 오래된 음원 파일을 복원한다.
오늘 아침, 그녀는 2019년 발매된 한 노래를 발견했다.
달을 바라보면 달빛이 되고
나무를 바라보면 나무가 되고
바다를 바라보면 바다가 된다
서연은 이 가사를 듣고 멈췄다.
68년 전에 쓰인 노래. 하지만 마치 자신의 일을 설명하는 것 같았다.
달을 바라보면 달빛이 된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어렸을 때 듣던 그 질문, "너는 커서 뭐가 될래?"는 사실 이런 뜻이 아니었을까?
"너는 무엇을 바라보면서 클 거니?"
서연은 노트에 적었다. "나는 무엇을 바라보며 사는가?"
[과학자의 노트]
신경가소성과 시각의 누적 효과에 대한 짧은 메모.
인간의 뇌는 평생 변한다. 특히 시각 피질은 뇌 전체의 약 30%를 차지한다.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가 뇌의 구조를 결정한다.
반복 노출의 법칙: 어떤 이미지를 반복해서 보면, 그것과 관련된 신경 회로가 강화된다. 화가는 색을 보는 뉴런이 발달하고, 건축가는 공간을 보는 뉴런이 발달한다.
아이에게 "무엇이 되고 싶니?"라고 묻는 것보다 중요한 질문이 있다:
"너는 무엇을 보며 자랄 것이니?"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본 것들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달을 바라보면 달빛이 된다는 것은 은유가 아니라 신경과학이다.
서연은 오후에 새로운 의뢰를 받았다.
[ 임종 시각 안내 의뢰서 ]
의뢰인: 윤지훈 (78세, 전 과학 커뮤니케이터)
예상 임종: 3일 이내
요청: 평생 시선 데이터 분석 후 마지막 이미지 추천
첨부: 평생 시선 기록 (1,440,288시간 분량)
서연은 윤지훈의 시선 데이터를 열었다.
78년의 삶. 280억 개의 시선 기록.
그녀는 AI에게 분석을 맡겼다. "이 사람이 가장 오래, 가장 자주, 가장 깊이 본 것은 무엇인가?"
[ 시선 패턴 분석 결과 ]
상위 5개 대상:
1. 하늘과 우주 관련 이미지 (누적 156,720시간 - 21.7%)
2. 아이들 얼굴 (누적 112,340시간 - 15.5%)
3. 로켓 및 우주선 모형/영상 (누적 98,650시간 - 13.6%)
4. 책 (누적 67,200시간 - 9.3%)
5. 가족 얼굴 (누적 54,100시간 - 7.5%)
특이사항:
- 7-18세: 밤하늘을 매일 관찰, 별 관련 책 집중
- 19-55세: 아이들 얼굴 + 우주 이미지를 교차 관찰
- 56-78세: 로켓 발사 영상 반복 시청, 밤하늘 응시 증가
서연은 패턴을 읽었다.
어린 윤지훈은 매일 밤 하늘을 봤다. 별을 세고, 별자리를 찾고, 우주를 상상했다. 그것이 그를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만들었다.
중년의 그는 아이들의 얼굴과 우주를 교차로 봤다. 아이들에게 로켓을 설명하면서, 그들의 눈빛이 반짝이는 순간을 봤다. 우주를 보는 아이들의 얼굴.
노년의 그는 다시 밤하늘만 봤다. 로켓 발사 영상을 반복해서 봤다. 처음 꿈꿨던 것을 되돌아보는 시간.
서연은 윤지훈을 만나러 갔다.
병원 침대에 누운 윤지훈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임종 시각 안내사 서연입니다."
윤지훈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제가... 마지막으로 뭘 봐야 할까요?"
서연은 준비한 자료를 꺼냈다. "선생님의 평생 시선을 분석했습니다. 선생님은 평생 우주와 아이들을 보셨어요. 특히 어릴 때는 밤하늘을 매일 관찰하셨죠."
"맞아요." 윤지훈이 웃었다. "어릴 때 우리 집 마당에서 매일 별을 봤어요. 아버지가 망원경을 사주셨거든요. 처음 토성의 고리를 봤을 때... 너무 감동해서 울었어요. 그때부터 우주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죠."
"그래서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되신 거군요."
"네. 40년간 아이들에게 로켓을 설명했어요.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별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그럴 때마다 아이들 눈이 반짝였어요. 그 눈빛이... 제가 본 가장 아름다운 우주였어요."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은퇴 후에는 아이들 얼굴보다 밤하늘과 로켓 발사 영상을 더 많이 보셨습니다."
"아이들을 못 만나니까... 외로웠죠. 그래서 다시 혼자 밤하늘을 보기 시작했어요. 어릴 때처럼. 그리고 로켓 발사 영상을 반복해서 봤어요. 인간이 우주로 날아오르는 순간. 그게... 여전히 경이로웠거든요."
서연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물었다.
"선생님, 제가 추천하는 마지막 이미지는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선생님이 처음 본 토성의 고리. 두 번째는 아이들이 로켓 모형을 보며 눈을 반짝이던 순간. 세 번째는 로켓 발사 장면입니다. 어떤 걸 선택하시겠어요?"
윤지훈은 오래 생각했다.
"세 개 다요." 그가 말했다. "토성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우주를 사랑하게 됐어요. 아이들 눈빛을 봤을 때, 나는 그 사랑을 나눴어요. 그리고 로켓이 날아오를 때, 나는 인간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걸 믿었어요. 세 개가... 다 나예요."
서연은 이해했다.
그녀는 이미지를 합성했다. 밤하늘에 토성이 떠 있고, 그 아래서 로켓이 발사되고, 그 빛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
3일 후, 윤지훈은 그 이미지를 보며 눈을 감았다.
밤하늘의 토성. 그 아래로 날아오르는 로켓. 그리고 그 광경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
그가 7살 때 망원경으로 처음 본 경이. 그가 40년간 아이들에게 전달한 꿈. 그가 믿었던 인간의 가능성.
그가 평생 본 것. 그가 되고 싶었던 것.
"너는 커서 뭐가 될래?"
그 질문은 사실 이런 뜻이었다.
"너는 무엇을 바라보며 클 거니?"
서연은 사무실로 돌아와 자신의 시선 데이터를 열었다.
38년의 기록. 그녀는 무엇을 봤을까?
[ 서연의 시선 패턴 분석 ]
상위 5개 대상:
1. 타인의 시선 데이터 (누적 89,400시간 - 26.9%)
2. 책 (누적 43,200시간 - 13.0%)
3. 음악 관련 자료 (누적 31,100시간 - 9.4%)
4. 사람 얼굴 (누적 28,900시간 - 8.7%)
5. 창밖 풍경 (누적 19,800시간 - 6.0%)
서연은 깨달았다.
그녀는 평생 "다른 사람이 무엇을 봤는지"를 봤다.
타인의 시선 데이터. 그들이 무엇을 보며 살았는지. 그것을 분석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고, 삶이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무엇이 된 걸까?
달을 바라보면 달빛이 되고,
나무를 바라보면 나무가 되고,
바다를 바라보면 바다가 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바라봤다.
그럼 나는... 관찰자가 된 것이다.
타인의 삶을 보는 사람. 그들이 무엇을 보며 살았는지, 무엇이 되었는지 읽어내는 사람.
나는 내가 원했던 것이 되었다.
서연은 노트를 펼쳤다.
“나는 무엇을 바라보며 사는가?”
답: 나는 타인의 시선을 바라본다.
그들이 평생 무엇을 봤는지, 무엇이 그들을 만들었는지. 그것을 읽어내는 것이 내 일이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너는 커서 뭐가 될래?"라는 질문은 잘못되었다. 우리는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본 것"이다.
건축가는 건물과 하늘을 본 사람이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우주와 아이들의 눈빛을 본 사람이다.
화가는 색을 본 사람이다.
음악가는 소리를 본 사람이다. (청각도 결국 뇌에서는 '이미지'가 된다)
그리고 나는? 타인의 시선을 본 사람이다.
달을 바라보면 달빛이 되듯이,
나는 타인의 삶을 바라보며, 그들의 의미를 읽어내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이 나의 정체성이다. 선택이 아니라, 시선의 누적이다.
서연은 창밖을 봤다.
2105년 서울의 밤. 수백만 개의 불빛.
저 불빛 하나하나 뒤에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지금 무언가를 보고 있다.
누군가는 화면을 본다. 누군가는 책을 본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본다.
그들이 무엇을 보느냐가, 그들이 무엇이 될지 결정한다.
서연은 다시 2019년 노래를 재생했다.
달을 바라보면 달빛이 되고
나무를 바라보면 나무가 되고
바다를 바라보면 바다가 된다
68년 전, 누군가 이 가사를 썼다. 그때는 시선 추적 기술도 없었다. 신경과학도 지금만큼 발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람은 알았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이 된다는 것을.
서연은 자신의 마지막 시선을 상상했다.
언젠가 그녀도 죽을 것이다. 그때 그녀는 무엇을 봐야 할까?
타인의 시선 데이터? 아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봐야 할 것은, 그녀가 도운 사람들의 얼굴이다.
윤지훈처럼, 마지막 순간 자신이 진짜 원했던 것을 본 사람들.
그들이 평화롭게 눈을 감던 순간들.
그것이 서연의 삶이 만든 것이다.
그녀는 타인의 시선을 보며, 그들이 자신의 시선을 찾도록 도왔다.
서연은 노트 마지막 페이지에 적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물었다.
"너는 커서 뭐가 될래?"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는 몰랐다.
하지만 이제 안다.
그 질문의 진짜 의미는:
"너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 거니?"
그리고 나의 답은:
나는 타인의 삶을 바라본다.
그들이 무엇을 보며 살았는지,
무엇이 그들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순간,
그들이 진짜 보고 싶었던 것을 보여준다.
달을 바라보면 달빛이 되듯이,
나는 타인을 바라보며 안내자가 되었다.
서연은 컴퓨터를 껐다.
그리고 창밖을 오래 바라봤다.
내일도 누군가의 마지막 시선을 안내할 것이다.
그들이 평생 본 것들 속에서, 진짜 의미를 찾아줄 것이다.
왜냐하면 서연은 안다.
우리는 우리가 본 것들의 총합이고,
마지막 시선이 전체 삶의 의미를 완성한다는 것을.
글 · 잡학도서관 모따모모
참고 : 이 노래는 가수 이상은의 '여름별'이라는 곡입니다. 한번 들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