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알고리즘의 오류

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인문학 전공자의 세계에 대한 질문 — No. 9

by 모따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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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은 2098년 서울에 있는 글로벌 가격 산정 시스템(GPS: Global Pricing System) 본부의 알고리즘 개발자다.


그의 팀이 만든 AI는 전 세계 모든 상품의 가격을 자동으로 계산한다. 원리는 간단하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을 기반으로, 상품에 투입된 노동 시간을 측정해 가격을 산정한다.


원자재 채굴 시간 + 운송 시간 + 가공 시간 + 판매 시간 = 가격.


완벽한 이론이었다. 2090년 시스템 가동 이후 8년간 세계 경제는 안정적이었다.


그런데 3개월 전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 오류 기록 - 2098.09.14 ]
시스템: GPS-CORE-v8.3
오류 유형: 가격 산정 이상

항목: 간호 서비스 (1시간)
산출 가격: $47
시장 균형가: $158
편차: +236%

오류: 알고리즘이 돌봄 노동 가격을 지속적으로 낮게 산정함


이준은 지난 3개월간 이 오류를 수정하려 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간호, 육아, 요양, 교육… 모든 돌봄 노동의 가격이 시장보다 낮게 계산됐다.


이론상으로는 맞다. 간호사가 1시간 일한다. 투입 노동 시간 = 1시간. 하지만 시장에서는 그 3배 가격을 지불한다.


왜일까?


모든 상품은 가격을 지니고 있다. 그 가격은 투입된 노동량으로 결정된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론으로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런데 왜 돌봄 노동만 예외인가?

혹시... 최초의 가격부터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과학자의 노트]

노동가치론과 그 한계에 대한 짧은 메모.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주장했다: 상품의 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 데 투입된 사회적 필요 노동 시간에 의해 결정된다.

이 이론은 공산품에는 잘 작동한다. 자동차를 만드는 데 1000시간이 걸린다면, 그 가격은 1000시간의 노동 가치를 반영한다.

하지만 서비스, 특히 돌봄 노동에는 문제가 생긴다.

간호사가 환자를 1시간 돌본다. 투입 노동 = 1시간. 하지만 그 1시간이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환자의 회복. 그리고 그 회복은 미래의 생산성을 만든다.

노동가치론의 맹점: 과거 투입만 측정하고, 미래 창출을 무시한다.

이준은 오류를 추적하기 위해 역사 데이터를 입력하기로 했다.


인류 최초의 거래 기록부터 현재까지.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AI에게 학습시키면, 오류의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고고학 데이터베이스에서 가장 오래된 "경제 활동" 기록을 검색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 고고학 데이터베이스 검색 결과 ]

기록 ID: TURKANA-2096-0847
연대: 약 기원전 150,000년
위치: 케냐 투르카나 분지
발견: 성인 남성 골격, 추정 연령 35-40세

주요 특징:
좌측 대퇴골 골절 후 완전 치유 흔적
치유 기간: 6-8주
함의: 회복 기간 동안 개체가 돌봄을 받았음


이준은 이 기록을 보고 멈췄다.


15만 년 전. 대퇴골이 부러진 남자. 그런데 뼈가 치유되었다.


그는 관련 논문을 찾아 읽었다. 그리고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의 인용구를 발견했다.


한 학생이 마거릿 미드에게 물었다.

"문명의 첫 징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미드는 대답했다.

"치유된 대퇴골입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다리가 부러지면, 당신은 죽습니다. 도망칠 수 없고, 물을 찾을 수 없고,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없습니다.

부러진 대퇴골이 치유되었다는 것은, 누군가 부상자 곁에 머물렀다는 증거입니다. 상처를 치료하고, 안전하게 지키고, 회복할 때까지 돌봤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돕는 것. 어려움을 겪고 있는 누군가를 돌보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 문명이 시작됩니다.


이준은 이 데이터를 AI에 입력했다.


부상자 1명. 돌봄 제공자 최소 1명. 기간 6-8주. 투입 노동: 먹을 것 제공, 보호, 간호.


대가는? 없음. 부상자는 노년이었다. 회복 후에도 갚을 수 없었다.


이준은 AI에게 물었다.


질의: 노동가치론 기반으로 이 돌봄 노동의 가격을 계산하시오.

AI 응답:
투입 노동: 336-504시간 (6-8주)
산출 가치: 0 (부상자가 대가 지불 불가)
계산 가격: 오류

시스템 주석: 거래가 교환 모델에 맞지 않음.
등가 가치 반환 없음.


이준은 다시 물었다.


질의: 교환이 아니라면, 이것은 어떤 거래인가?

AI 응답: 분석 중...
대안 모델 감지: 미래 가치 창출

제공된 돌봄은 즉각적 가치를 창출하지 않음.
대신 미래 상호 돌봄의 가능성을 창출함.

가치 = 노동 투입량이 아니라, 미래 돌봄 네트워크 확률


이준은 숨을 멈췄다.




AI가 계속 출력했다.


모든 역사 가격 재계산 중...

발견: 노동가치론은 불완전함

가격은 과거 노동 투입으로 결정되지 않음.
가격은 미래 돌봄 가능성으로 결정됨.

예시 1: 치유된 대퇴골, 기원전 150,000년
- 투입: 336-504시간의 돌봄 노동
- 미래 가치: 회복된 개체가 타인을 돌볼 수 있음
- 가격: 투입된 500시간이 아니라, 가능해진 무한한 미래 돌봄

예시 2: 간호사 임금, 2098년
- 투입: 1시간의 돌봄 노동
- 미래 가치: 환자 회복, 생산성 복귀, 가족 돌봄 가능
- 가격: 투입된 1시간이 아니라, 가능해진 수년의 삶과 돌봄

결론:
마르크스는 틀렸음.
가격은 과거 노동의 함수가 아님.
가격은 미래 돌봄의 함수임.


이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봤다.


AI가 발견한 것은 단순했지만 혁명적이었다.


우리는 가격을 과거로 설명하려 했다. 얼마나 많은 노동이 투입되었는가.


하지만 진짜 가격은 미래에 있었다. 이것이 얼마나 많은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가.


최초의 가격은 노동이 아니었다.
미래였다.

15만 년 전 누군가 부상자를 돌봤을 때,
그가 지불한 것은 500시간의 노동이 아니라
무한한 미래의 가능성이었다.


이준은 AI에게 마지막 질문을 했다.


질의: 그렇다면 올바른 가격 산정 알고리즘은 무엇인가?

AI 응답:
가격 = 과거 노동 × 미래 돌봄 승수

여기서 미래 돌봄 승수 =
(수혜자가 타인을 돌볼 확률) ×
(돌봄 네트워크의 예상 지속 기간) ×
(가능해진 삶의 질)

돌봄 노동의 경우:
승수 → ∞

왜냐하면 돌봄은 돌봄을 창조하기 때문.
한 번의 돌봄 행위가 무한한 미래의 돌봄을 가능하게 함.

이것이 노동가치론에서 돌봄 노동이
항상 저평가되었던 이유.

마르크스는 투입을 측정했음.
하지만 돌봄의 가치는 산출에 있음:
그것이 창조하는 미래.


이준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최초의 물건 가격에 투입된 노동은 뭘까?”

답: 질문이 잘못되었다.

최초의 가격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에게 매겨졌다. 그리고 그것은 투입 노동이 아니라 미래 가치로 결정되었다.

15만 년 전, 누군가 부상자를 돌봤다. 500시간의 노동. 마르크스라면 이것이 가격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가격은 달랐다.

그 부상자가 회복했다. 그리고 언젠가 다른 누군가를 돌봤다. 그 사람도 또 다른 누군가를 돌봤다.

15만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돌본다.

최초의 500시간이 만든 것은 15만 년 × 800억 명 × 무수한 돌봄의 순간들.

이것이 진짜 가격이다.

마르크스는 틀렸다. 가격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상품의 가격은 투입 노동이 아니라, 그것이 창출하는 미래 돌봄의 가능성이다.


이준은 GPS 시스템의 핵심 알고리즘을 수정했다.


[ 새 가격 산정 알고리즘 - GPS v9.0 ]

기존: 가격 = 노동 투입
신규: 가격 = 노동 투입 × 미래 돌봄 가능성

결과:
- 제조업 상품: 승수 ≈ 1.0-1.5
- 돌봄 서비스: 승수 ≈ 10.0-∞

간호사 임금: $47 → $158 ✓
교사 임금: $52 → $174 ✓
요양 서비스: $39 → $201 ✓

시스템 상태: 모든 이상 해결됨.
시장 균형 달성.


3개월간의 오류가 사라졌다.


돌봄 노동의 가격이 정상화되었다. 아니, 정상화가 아니다. 처음으로 제대로 계산되었다.


이준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커피숍에 들렀다.


커피 한 잔. 5달러.


예전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원두 재배 노동 + 운송 노동 + 로스팅 노동 + 추출 노동 = 5달러.


하지만 이제 안다.


이 5달러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이 커피를 마시고 내가 깨어있으면, 나는 오늘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 그 사람도 또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


15만 년 전 누군가 부상자에게 물을 건넸듯이.


이준은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경제학은 틀렸다. 가격을 과거로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가격은 미래다. 우리가 서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가능성.


15만 년 전 치유된 대퇴골이 증명한다.


최초의 가격은 노동량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준 미래였다.


그리고 그 미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글 ·잡학도서관 모따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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