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시작점

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인문학 전공자의 세계에 대한 질문 — No. 13

by 모따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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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은 2118년 제네바에 있는 '물질 영속성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이다.


그녀의 일은 우주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는 물질을 찾는 것이다. 어떤 것이 얼마나 오래 존재할 수 있는가. 영원에 가장 가까운 것은 무엇인가.


요즘 유진은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일상에서 "끝"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이다.


"회의 끝났어."


"이 프로젝트 끝나면..."


"오늘도 끝이네."


모든 것에 끝이 있다. 회의도, 프로젝트도, 하루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오늘 저녁, 연구실을 나서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에 끝이 있다면, 끝의 반대는 뭘까?

영원.

영원은 끝이 없다는 뜻이다. 그건 알겠다.

그런데... 영원의 시작은 어디일까?

세상에 영원한 것이 진짜 있다면, 그 영원은 언제 시작된 걸까?

아니, 더 근본적으로. 세상에 시작이 없는 것은 있을까?


유진은 멈춰 섰다.


어처구니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물질 영속성 연구원으로서, 이 질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과학자의 노트]

물질의 수명과 영속성에 대한 짧은 메모.

우주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는 것은 무엇인가?

후보 1: 원자
- 수소 원자는 안정적이다. 하지만 양성자 붕괴 이론에 따르면, 10³⁵년 후 붕괴한다.

후보 2: 블랙홀
- 호킹 복사로 증발한다. 태양 질량 블랙홀: 10⁶⁷년 후 소멸.

후보 3: 에너지
- 에너지 보존 법칙.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바뀐다. 하지만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결국 균일하게 분산된다. 열사(熱死).

후보 4: 정보
- 정보는 사라질 수 없다 (정보 보존의 법칙). 블랙홀 정보 역설이 이를 시사한다.

결론: 물질적으로 영원한 것은 없다. 하지만 정보는 영원할 수 있다.

유진은 다음 날 연구소에 출근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제목: "우주에서 진정으로 영원한 것은 존재하는가?"


그녀는 체계적으로 접근했다.


[ 연구 계획: 영속성 위계 분석 ]

1단계: 물질적 영속성
- 원자, 분자, 입자의 수명 측정

2단계: 에너지 영속성
- 에너지 보존과 분산 패턴 분석

3단계: 정보 영속성
- 정보 보존 법칙 검증

4단계: 시공간 영속성
- 우주 자체의 지속성 탐구

최종 목표: 진정한 영원의 조건 정의


3개월간의 연구 끝에, 유진은 결과를 정리했다.


[ 연구 결과 ]

1. 물질적 영속성: 없음
- 모든 입자는 결국 붕괴
- 양성자 수명: ~10³⁵년
- 블랙홀 수명: ~10⁶⁷년
- 우주 수명: ~10¹⁰⁰년 (열사 도달)

2. 에너지 영속성: 형태만 영속
- 에너지는 보존되지만 사용 가능성 상실
- 엔트로피 증가로 결국 균일 분산

3. 정보 영속성: 가능성 있음
- 정보는 파괴될 수 없음 (이론상)
- 블랙홀에 들어간 정보도 호킹 복사로 보존

4. 시공간 영속성: 불명확
- 우주가 영원히 팽창하는가?
- 아니면 순환하는가?
- 빅뱅 이전은?


유진은 결과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정보는 영원할 수 있다. 하지만 정보의 시작은 언제인가?


빅뱅? 그럼 빅뱅 이전은?




유진은 우주론 전문가인 동료 제임스를 찾아갔다.


"제임스, 영원의 시작점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제임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렸다.


"유진, 선형적 시간을 생각하면 모순이에요. 시작이 있으면 그건 영원이 아니죠. 하지만 순환적 시간을 생각하면 가능합니다."


그는 원을 그렸다.


"원의 둘레를 생각해보세요. 시작점이 어디죠?"


유진은 원을 바라봤다. "...어디에나 있을 수 있고, 어디에도 없을 수 있네요."


"맞아요. 원 위의 모든 점이 시작점이면서 동시에 시작점이 아니에요. 우주가 만약 순환한다면, 빅뱅은 시작이 아니라 순환의 한 지점일 뿐입니다."


제임스는 다른 그림을 그렸다. 나선.


"아니면 이런 구조일 수도 있어요. 나선. 반복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은. 각 순환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영원은 '시작 없는 것'이 아니라 '시작을 정의할 수 없는 것'이군요."


"정확해요. 선형적 사고로는 영원을 이해할 수 없어요. 영원은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으니까."


순환적 시간과 괴델의 우주에 대한 짧은 메모.

쿠르트 괴델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부터 "닫힌 시간 곡선"(Closed Timelike Curve)을 발견했다. 이론적으로 시간이 고리처럼 닫힐 수 있다.

만약 시간이 원형 구조라면:
- 시작과 끝이 같은 지점
- 모든 순간이 영원히 반복
- "시작"의 개념 자체가 무의미

이것이 니체의 "영원 회귀" 개념과 유사하다.

핵심: 진정한 영원은 시작점을 가질 수 없다. 시작점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영원이 아니다.

유진은 사무실로 돌아와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생각했다.


영원의 시작을 찾으려 한 것 자체가 잘못된 질문이었다.


영원은 시작이 없다. 시작이 있으면 영원이 아니다.


그런데 문득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우주에 시작이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지금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시작이 없다는 것은,
항상 존재해왔다는 뜻이니까.

그렇다면... 지금 내 주변에서
시작 없이 존재하는 것은 무엇일까?


유진은 주변을 둘러봤다.


책상. 컴퓨터. 커피잔. 모두 만들어진 것들이다. 시작이 있다.


공기. 빛. 중력. 이것들은? 빅뱅에서 시작됐다.


그럼 뭐가 있을까?


유진은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수학적 진리.

2+2=4는 언제 시작됐을까?
시작하지 않았다.
항상 참이었다.

원주율 π는 언제 생겼을까?
생기지 않았다.
항상 존재했다.

이것들은 시작 없는 영원이다.


유진은 흥분해서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세상에 시작 없는 것이 있는가?

답: 있다. 수학적 진리.

2+2=4는 우주가 생기기 전에도 참이었다.
우주가 사라진 후에도 참일 것이다.

원의 둘레와 지름의 비율은 항상 π였다.
누가 발견하기 전에도, 발견한 후에도.

이런 진리들은 "발명"된 게 아니라 "발견"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항상 존재했으니까.

이것이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다.
수학적 진리는 물질세계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유진은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렇다면 물리 법칙은 어떨까?


중력 법칙. F = G(m₁m₂)/r²


이 법칙은 언제 시작됐을까?


빅뱅 때? 아니다. 빅뱅도 이 법칙을 따라 일어났다.


그럼 언제?


시작이 없다.


[ 새로운 가설: 법칙의 영속성 ]

물질은 영원하지 않다. (양성자도 붕괴)
에너지는 영원하지 않다. (엔트로피 증가)
정보는 영원할 수 있다. (보존 법칙)

하지만 진정으로 영원한 것:

1. 수학적 진리
- 2+2=4, π, 황금비...
- 시작 없음, 끝 없음

2. 물리 법칙
- 중력, 전자기력, 핵력...
- 우주 이전부터 존재 (추정)

3. 논리 법칙
- 모순율, 동일률...
- 사고 이전부터 존재

공통점:
이것들은 물질세계와 독립적이다.
우주가 없어도 여전히 참이다.

결론:
진정한 영원은 물질이 아니라 구조다.


유진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멈췄다.


그녀는 자신의 원래 질문으로 돌아갔다.


“영원의 시작은 어디일까?”

답: 영원에는 시작이 없다.

시작이 있으면 그것은 영원이 아니다.

세상에 진정으로 영원한 것:
- 수학적 진리: 2+2=4는 항상 참이었고, 항상 참일 것이다
- 물리 법칙: F=ma는 우주 이전부터 존재했다 (추정)
- 논리 구조: A는 A다 (동일률)는 사고 이전부터 참이었다

이것들은 "시작"하지 않았다.
발견되기 전에도 존재했다.
우주가 생기기 전에도 참이었다.

역설:
우리는 "끝"을 경험한다. 회의의 끝, 하루의 끝, 인생의 끝.
그래서 모든 것에 시작과 끝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영원은 다른 차원에 있다.
시간 안에 있지 않다.
그래서 시작도, 끝도 없다.

수학적 진리는 시간 밖에 존재한다.
2+2=4는 어제도 참이었고, 오늘도 참이고, 내일도 참이다.
아니, "어제/오늘/내일"이라는 구분 자체가 의미 없다.
그것은 시간을 초월해 항상 참이다.

이것이 플라톤이 말한 영원의 세계다.


유진은 창밖을 봤다.


2118년 제네바의 저녁. 해가 지고 있었다.


이 석양도 끝날 것이다. 밤이 오고, 다시 아침이 온다.


모든 것이 시작하고 끝난다.


하지만 석양이 아름다운 이유는 변하지 않는다.


왜 아름다운가? 그 이유는 시간을 초월한다.


1만 년 전에도 아름다웠고, 1만 년 후에도 아름다울 것이다.


아름다움의 본질. 그것은 영원하다.


시작도 끝도 없다.


유진은 미소 지었다.


어처구니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답을 찾았다.


세상에 시작이 없는 것은 있는가?

답: 있다.

수학적 진리, 물리 법칙, 논리 구조, 아름다움의 본질.

이것들은 발명되지 않았다. 발견되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항상 존재했으니까.

물질은 시작되고 끝난다.
하지만 구조는 영원하다.

우주는 138억 년 전에 시작됐다.
하지만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

이것이 영원이다.
시작 없는 영원.

그리고 그 영원은 지금 여기에 있다.
내가 2+2=4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영원을 만진다.


유진은 보고서 제목을 수정했다.


"우주에서 진정으로 영원한 것은 존재하는가?"


→ "영원은 물질이 아니라 구조다"


그녀는 최종 결론을 적었다.


[ 최종 연구 결론 ]

질문: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는가?
답: 있다. 하지만 물질이 아니다.

영원한 것:
1. 수학적 진리 (2+2=4, π, 등)
2. 물리 법칙 (F=ma, E=mc², 등)
3. 논리 구조 (A=A, 모순율, 등)
4. 본질 (아름다움, 선함, 진리)

이것들의 공통점:
- 시간 밖에 존재
- 발견되는 것이지 발명되는 것이 아님
- 우주가 사라져도 여전히 참

영원의 시작점은?
없다. 진정한 영원은 시작하지 않았다.
항상 존재했다.

함의:
물질적 불멸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만드는 구조, 발견하는 진리,
그것은 시간을 초월할 수 있다.

우리는 유한하다.
하지만 우리가 만지는 진리는 영원하다.


유진은 컴퓨터를 껐다.


그리고 다시 창밖의 석양을 봤다.


이 석양은 끝날 것이다.


하지만 석양의 아름다움은 끝나지 않는다.


1만 년 전에도, 1만 년 후에도, 여전히 아름답다.


유진은 일어서며 생각했다.


나는 유한하다. 언젠가 끝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 진리는 영원하다.


시작도 끝도 없다.


그리고 그 영원을 만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인간이라는 유한한 존재가 가진, 가장 큰 특권이다.


글 · 잡학도서관 모따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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