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인문학 전공자의 세계에 대한 질문 — No. 14
수현은 2122년 서울의 '뉴럴링크 시각 프로토콜 연구소'에서 일한다.
그녀의 직함은 "VSP(Visual Share Protocol) 베타 테스터"다. 뉴럴링크를 통해 다른 사람의 시각을 공유하는 기술. 상용화 전 최종 테스트를 담당한다.
오늘 오후, 수현은 연구실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밖에 나무가 보였다. 초록색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렸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는 이 세상은... 진짜인가?
저 나무의 초록색. 정말 저렇게 생긴 건가?
아니면 내 뇌가 그렇게 해석한 것일까?
수현은 철학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떠올렸다.
사람의 관점은 그 사람이 살아온 경험, 문화, 생물학적 구조로 결정된다. 그렇다면...
내가 보는 세상과 다른 사람이 보는 세상은 다른가?
만약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다른 사람의 눈은... 정말 다른가?
수현은 자신의 일을 떠올렸다.
VSP. Visual Share Protocol. 다른 사람의 시각을 공유하는 기술.
그녀는 매일 이 기술을 테스트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기술적 안정성만 확인했다. 신호 손실, 지연 시간, 부작용.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보는 세상은 정말 다를까?"
[과학자의 노트]
뉴럴링크와 시각 공유 기술에 대한 짧은 메모.
뉴럴링크: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2020년대 일론 머스크가 개발 시작. 2100년대 상용화.
VSP(Visual Share Protocol): 뉴럴링크 기반 시각 공유 기술.
작동 원리:
1. 송신자의 시각 피질에서 신경 신호 추출
2. 신호를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
3. 수신자의 뉴럴링크로 전송
4. 수신자의 시각 피질에 신호 재현
결과: 수신자가 송신자의 시각을 "경험"
핵심 질문: 같은 장면을 봐도, 사람마다 다른 것을 "보는가"?
시각은 단순한 카메라가 아니다. 눈은 정보를 받고, 뇌가 "해석"한다. 해석 과정은 개인의 경험, 문화, 생물학적 차이에 따라 다르다.
수현은 동료 연구원 민준을 찾아갔다.
"민준, 우리 실험 하나 해볼래요?"
"무슨 실험?"
"서로의 시각을 교환해봐요. 같은 장면을 보면서."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겠네요. 해봅시다."
두 사람은 뉴럴링크를 활성화했다. 수현은 송신 모드, 민준은 수신 모드.
수현이 창밖 나무를 봤다.
"지금 보이는 거 설명해줄래요?" 수현이 물었다.
민준이 눈을 감고 수현의 시각을 받았다.
"나무가 보여요. 초록색 잎사귀. 바람에 흔들리고... 어? 이상한데?"
"뭐가요?"
"초록색이... 제가 평소에 보는 초록색이랑 달라요. 더... 선명한? 아니, 다른 느낌이에요."
수현은 놀랐다. "정말요? 같은 나무인데?"
"네. 분명 같은 나무인데, 색이 달라요."
이번엔 역할을 바꿨다. 민준이 송신, 수현이 수신.
수현은 눈을 감고 민준의 시각을 받았다.
그리고 숨을 멈췄다.
같은 나무였다. 하지만 완전히 달랐다.
초록색이 더 어두웠다. 아니, 색조 자체가 달랐다. 그리고 나무의 윤곽이 더 선명했다. 잎사귀 하나하나가 더 뚜렷했다.
수현이 눈을 떴다. "세상에... 완전히 다르네요."
"그죠?" 민준이 웃었다. "저도 놀랐어요."
수현은 더 많은 실험을 시작했다.
연구소의 다른 연구원들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같은 장면을 보면서 시각을 공유하는 실험.
첫 번째 피실험자: 지영 (색맹)
[ 실험 기록 #1 - 적록색맹 피실험자 ]
피실험자: 지영 (28세, 적록색맹)
대상: 빨간 사과
수현의 시각 → 지영:
"와... 이게 빨간색이에요? 이렇게 생긴 거였어요?"
"제가 보는 빨강은 갈색이랑 비슷한데, 이건 완전히 다르네요."
"평생 이걸 못 봤다니..."
지영의 시각 → 수현:
"아... 빨강과 초록이 거의 구분이 안 되네요."
"신호등을 어떻게 구분하죠?"
"이렇게 사는 게... 상상도 못 했어요."
수현은 충격을 받았다. 지영이 평생 본 세상이 이렇게 다를 줄은.
두 번째 피실험자: 하은 (공감각자)
[ 실험 기록 #2 - 공감각 피실험자 ]
피실험자: 하은 (32세, 색청 공감각 - 소리를 색으로 봄)
대상: 피아노 연주
하은의 시각 → 수현:
[음악이 시작되자 수현의 시야가 색으로 가득 찼다]
"이게... 뭐예요?"
"소리가 보여요. 파란색, 노란색, 보라색..."
"도 음이 빨간색이고, 솔 음이 파란색이에요."
"너무 아름다워요. 하지만 정신없어요."
부작용:
실험 종료 후 수현 두통 호소.
30분간 지속.
수현은 공감각자의 세계를 경험하고 나서 한동안 멍했다.
소리가 색으로 보인다. 평생 그렇게 살아온 하은. 그녀에게 세상은 얼마나 다를까.
세 번째 피실험자: 태민 (화가)
[ 실험 기록 #3 - 예술가 피실험자 ]
피실험자: 태민 (45세, 화가)
대상: 석양
태민의 시각 → 수현:
"와..."
"색이 이렇게 많아요?"
"저는 주황색만 보이는데, 태민 씨는 수십 가지 색조를 구분하네요."
"빨강에서 노랑으로 가는 그라데이션이 이렇게 섬세해요."
깨달음:
훈련된 눈은 더 많은 것을 본다.
같은 석양이지만, 예술가는 다른 세상을 본다.
수현은 실험 결과를 정리하며 깨달았다.
같은 세상을 보지만, 모두가 다른 세상을 본다.
색맹은 색을 덜 본다. 공감각자는 색을 더 본다. 예술가는 색을 깊게 본다.
누가 "진짜" 세상을 보는가?
답: 모두가 진짜 세상을 본다.
그리고 모두가 다른 진짜를 본다.
객관적 세계는 없다.
70억 개의 주관적 세계가 공존한다.
하지만 수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더 극단적인 실험을 계획했다.
네 번째 피실험자: 서준 (조현병 환자)
[ 윤리 위원회 경고 ]
실험 대상: 조현병 환자와의 시각 공유
위험도: 높음
예상 위험:
- 환각 경험으로 인한 심리적 충격
- 현실 감각 상실
- PTSD 가능성
권고: 실험 중지
수현의 응답: 진행
수현은 정신과 병동을 찾아갔다.
서준은 30대 남성. 10년째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 환청과 환각.
"제가 보는 세상을 정말 보고 싶으세요?" 서준이 물었다.
"네." 수현이 대답했다.
"후회할지도 몰라요."
"괜찮아요."
서준이 뉴럴링크를 활성화했다. 송신 모드.
수현은 눈을 감고 서준의 시각을 받았다.
그리고 비명을 질렀다.
[ 실험 기록 #4 - 응급 중단 ]
경과 시간: 12초
상태: 긴급 차단
수현의 보고:
"벽에서 얼굴이 나왔어요. 수십 개의 얼굴."
"그들이 저를 봤어요. 웃으면서."
"천장이 무너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안 무너졌어요."
"뭐가 진짜인지 모르겠어요."
부작용:
- 급성 불안 발작
- 3일간 악몽
- 현실감 저하 (1주일 지속)
서준의 코멘트:
"제가 매일 보는 겁니다. 이게 제 세상이에요."
수현은 1주일간 병가를 냈다.
서준의 세계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12초밖에 견디지 못했다.
하지만 서준은 10년째 그 세계에서 살고 있다.
수현은 깨달았다.
나는 서준의 세계를 "환각"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서준에게는 그게 현실이다.
내가 보는 나무가 진짜고,
서준이 보는 벽의 얼굴이 가짜라고 누가 정했을까?
그냥 다수가 비슷하게 보는 것을 "정상"이라고 부를 뿐이다.
서준의 세계는 틀린 게 아니다. 다를 뿐이다.
수현은 복귀 후 연구 보고서를 작성했다.
[ VSP 베타 테스트 최종 보고서 ]
결론: 기술적으로 안정적. 상용화 가능.
하지만 중대한 윤리적 문제 발견:
1. 정체성 혼란
- 다른 사람의 시각을 경험한 후, 자신의 시각에 대한 확신 저하
- "내가 보는 게 진짜인가?" 지속적 의문
2. 심리적 충격
- 극단적으로 다른 시각 경험 시 PTSD 위험
- 예: 조현병 환자, 중증 공감각자
3. 현실감 상실
- 여러 사람의 시각을 경험한 후, 객관적 현실에 대한 믿음 약화
- "진짜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에 대한 강박
4. 불평등 심화
- 시각 공유 기술 접근성 차이
- "더 나은" 시각을 가진 사람의 우월감
- 색맹, 시각장애인의 열등감 가능성
5. 사생활 침해
- 원하지 않는 시각 공유 강요 가능성
- "당신이 보는 걸 보여달라" 압박
권고사항:
- 상용화 전 충분한 윤리 검토 필요
- 사용자 심리 상담 의무화
- 극단적 시각 차이 경험에 대한 사전 경고
- 미성년자 사용 금지
- 정신질환자와의 공유 엄격 제한
수현은 보고서를 제출하고, 연구소장을 찾아갔다.
"이 기술... 상용화해야 할까요?" 수현이 물었다.
연구소장은 보고서를 읽고 오래 생각했다.
"어려운 질문이네요. 기술적으로는 완벽해요. 하지만 인간이 준비됐는지는..."
"저는 확신이 안 서요." 수현이 말했다. "다른 사람의 세계를 보는 건 아름답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험해요. 제 세계에 대한 확신이 흔들렸어요."
"그게 나쁜 건가요?"
"모르겠어요.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세계에서 사는 게 맞는지도 몰라요.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되, 직접 경험하지는 않는."
연구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감은 중요하지만, 경계도 필요하다는 거죠."
"네. 저는 서준의 세계를 12초 경험했어요. 그리고 1주일간 악몽을 꿨어요. 하지만 서준은 10년째 그 세계에서 살아요. 그게 그의 현실이에요."
"우리가 그의 세계를 '치료'해야 할까요, 아니면 '존중'해야 할까요?"
수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질리아(Qualia)와 주관적 경험의 문제에 대한 짧은 메모.
질리아: 주관적 경험의 질. "빨강을 보는 느낌", "고통의 느낌" 같은 1인칭 경험.
철학적 질문: 내가 보는 빨강과 당신이 보는 빨강이 같은가?
전통적으로 이 질문은 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주관적 경험에 접근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VSP 기술은 이 질문에 답을 준다:
아니다. 같지 않다.
같은 파장의 빛을 봐도, 사람마다 다른 "빨강"을 경험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
1. 객관적 현실은 없다 (또는 접근 불가능하다)
2. 우리는 각자의 주관적 세계에 갇혀 있다
3. 소통은 불완전하다 (우리는 같은 단어를 쓰지만 다른 경험을 한다)
윤리적 함의: "정상"이라는 것은 다수의 경험일 뿐,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
수현은 다시 창문 앞에 섰다.
같은 나무. 같은 초록색.
하지만 이제 안다. 이것은 "그녀의" 초록색이다.
민준이 보는 초록색은 다르다. 지영이 보는 초록색은 갈색에 가깝다. 하은은 초록색을 보며 동시에 소리를 듣는다. 태민은 수십 가지 초록 색조를 구분한다.
그리고 서준은... 나무에서 얼굴을 볼지도 모른다.
누가 진짜 나무를 볼까?
수현은 미소 지었다.
“내가 보는 세상은 진짜인가?”
답: 진짜다. 나에게는.
다른 사람이 보는 세상도 진짜다. 그들에게는.
VSP 기술로 나는 배웠다:
같은 세상을 보지만, 70억 개의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
색맹은 색이 적은 세상을 산다.
공감각자는 색이 넘치는 세상을 산다.
예술가는 색이 깊은 세상을 산다.
조현병 환자는 얼굴이 가득한 세상을 산다.
누구의 세상이 틀렸나? 아무도.
누구의 세상이 맞나? 모두.
우리는 각자의 세계에서 산다.
그리고 그 세계들은 서로 만날 수 없다.
VSP는 잠깐 다른 세계를 엿보게 해준다.
하지만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12초의 경험으로 나는 1주일 고통받았다.
하지만 서준은 10년째 그 세계에서 산다.
이것이 윤리적 딜레마다: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경험해서는 안 될 수도 있다.
공감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 한계를 인정하는 것도 공감이다.
수현은 최종 의견서를 작성했다.
[ VSP 상용화에 대한 최종 의견 ]
수현의 권고:
조건부 상용화.
허용 범위:
- 색맹 ↔ 정상 시각 (치료 목적)
- 예술가 ↔ 일반인 (교육 목적)
- 유사한 수준의 시각 간 공유
금지 범위:
- 정신질환자 시각 공유
- 극단적 시각 차이 경험
- 강제적 시각 공유
- 미성년자 사용
이유:
우리는 다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경험"해서는 안 될 세계도 있다.
VSP는 공감의 도구다.
하지만 공감에는 경계가 필요하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각자의 세계를 지켜야 한다.
2123년, VSP는 제한적으로 상용화되었다.
수현의 권고사항이 대부분 반영되었다.
하지만 수현 자신은 더 이상 VSP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세계로 돌아왔다.
창밖의 나무. 그녀만의 초록색.
이것으로 충분했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나무를 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산다.
하지만 같은 세상을 공유한다.
그 역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인간이 함께 사는 법이다.
글 · 잡학도서관 모따모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