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기록하는 법

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인문학 전공자의 세계에 대한 질문 — No. 15

by 모따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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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은 2125년 제네바의 '양자 현상 기록 연구소'에서 일한다.


그의 직함은 "극초단시간 포착 전문가"다. 양자 카메라로 10⁻⁴³초(플랑크 시간) 수준의 현상을 촬영한다. 우주에서 가장 짧은 시간을 기록하는 사람.


오늘 저녁, 지훈은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문화 다큐멘터리. 한 노시인의 인터뷰가 나왔다.


인터뷰어가 물었다. "시인님, 시는 언제를 쓰는 건가요? 과거, 현재, 미래?"


노시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시는, 그리고 모든 글은 과거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펜을 드는 순간, 그 생각은 이미 과거가 되니까요. 지금 제가 말하는 이 순간도, 말이 끝나면 과거입니다."


지훈은 리모컨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모든 글은 과거를 쓴다.

생각하는 순간과 기록하는 순간 사이에 시간차가 있으니까.

그럼... 이 생각도 지금 이미 과거구나.

나는 과거의 나를 기록하고 있다.


지훈은 자신의 일을 떠올렸다.


양자 카메라. 10⁻⁴³초를 포착한다. 우주에서 가장 빠른 카메라.


하지만 그것도 결국 과거를 찍는 거 아닌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 피사체는 이미 변했다. 10⁻⁴³초 후의 모습. 과거.


그럼... 현재를 기록하는 방법은 없는 걸까?

진짜 "지금 이 순간"을 포착할 수는 없는 걸까?


지훈은 다음 날 연구소에 출근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제목: "0초의 기록 - 현재 순간 포착 프로젝트"


[과학자의 노트]

시간과 기록의 물리학에 대한 짧은 메모.

기록이란 무엇인가? 정보를 고정하는 것.

하지만 정보 전달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빛의 속도: 3×10⁸ m/s (유한함)
신경 신호 속도: 약 100 m/s

따라서 "지금"을 인식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과거다.

예: 1m 앞의 물체를 본다.
빛이 물체에서 눈까지: 3×10⁻⁹초
눈에서 뇌까지: 약 0.01초
총 지연: 약 0.01초

우리가 "지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0.01초 전의 과거.

질문: 그럼 진짜 "현재"는 존재하는가?

지훈은 체계적으로 접근했다.


1단계: 일반 카메라. 셔터 속도 1/1000초. 촬영 순간과 이미지 사이 1밀리초 차이. 과거.


2단계: 고속 카메라. 1/100,000초. 10마이크로초 차이. 더 가까운 과거.


3단계: 펨토초 레이저 카메라. 10⁻¹⁵초. 전자의 움직임을 포착. 하지만 여전히 과거.


4단계: 양자 카메라. 10⁻⁴³초(플랑크 시간). 물리학의 한계. 이보다 짧은 시간은 의미 없음.


하지만 지훈은 깨달았다.


10⁻⁴³초도 "지나간" 시간이다. 여전히 과거다.




지훈은 양자역학 전문가인 동료 수아를 찾아갔다.


"수아, 현재를 기록할 방법이 없을까요?"


수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렸다.


"지훈, 양자역학에서 '현재'는 특별한 의미를 가져요."


그녀는 파동 모양을 그렸다.


"입자는 관측되기 전까지 파동함수로 존재해요. 모든 가능한 상태의 중첩. 이게 '현재'예요."


"그럼 그걸 기록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게 문제예요." 수아가 파동을 점으로 바꿨다. "관측하는 순간, 파동함수가 붕괴돼요. 하나의 확정된 상태로. 이게 '과거'가 되는 거예요."


지훈은 이해했다.


[과학자의 노트]

양자역학과 관측의 역설에 대한 짧은 메모.

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 원리: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

왜? 측정(관측)이 대상을 변화시키기 때문.

이중 슬릿 실험:
- 관측하지 않으면: 입자가 파동처럼 행동 (간섭 무늬)
- 관측하면: 입자가 입자처럼 행동 (두 개의 선)

슈뢰딩거의 고양이:
- 상자를 열기 전: 고양이는 살아있음+죽어있음 (중첩 상태) = 현재
- 상자를 연 순간: 고양이는 살아있음 OR 죽어있음 (확정) = 과거

핵심: 현재 = 관측되지 않은 상태. 기록 = 관측 = 현재의 파괴.

따라서 현재를 기록하려는 순간, 현재는 사라진다.

지훈은 실험을 설계했다.


[ 실험: 양자 중첩 상태 촬영 ]

목표: 파동함수 붕괴 이전의 "현재" 포착

방법:
1. 단일 광자를 이중 슬릿에 통과
2. 관측 없이 필름에 도달하게 함
3. 파동함수가 붕괴되지 않은 상태 기록 시도

예상 결과:
간섭 무늬 = 중첩 상태 = 현재

실제 결과:
간섭 무늬 확인됨.
하지만 필름에 기록된 순간, 이미 과거가 됨.

결론:
파동함수는 포착했지만,
"기록한" 순간 그것은 과거가 되었다.


지훈은 좌절했다.


설령 양자 중첩 상태를 포착해도, 그것을 "기록"하는 순간 과거가 된다.


왜냐하면 기록 = 고정 = 과거화이기 때문이다.


수아가 말했다. "지훈, 생각해봐요. '현재'의 정의가 뭘까요?"


"지금 이 순간?"


"맞아요. 하지만 '이 순간'은 얼마나 긴가요? 1초? 0.1초? 10⁻⁴³초?"


지훈은 멈췄다.


"현재는... 지속 시간이 0인 순간?"


"그렇죠. 수학적으로 현재는 시간축 위의 한 점이에요. 길이가 0. 하지만 길이가 0이면..."


"존재하지 않는 거네요."


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 사이의 경계일 뿐이에요. 두께가 없는 선. 이론적으로만 존재하죠."


현재는 기록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현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는 과거가 미래로 변하는 순간일 뿐,
그 자체로는 두께가 없다.

지훈은 연구실로 돌아와 오래 생각했다.


그는 노트를 펼쳤다.


“현재를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답: 없다.

현재는 기록할 수 없다.

이유 1: 물리적 한계
- 정보 전달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 광속도 유한하다
- 플랑크 시간보다 짧은 시간은 무의미하다
- 따라서 모든 기록은 최소한 10⁻⁴³초의 지연이 있다

이유 2: 양자역학적 한계
- 현재 = 관측되지 않은 중첩 상태
- 기록 = 관측 = 파동함수 붕괴
- 따라서 기록하는 순간 현재는 과거가 된다

이유 3: 수학적 한계
- 현재는 시간축 위의 한 점
- 길이가 0인 순간
- 존재하지만 두께가 없다
- 따라서 포착 불가능

결론:
기록 가능한 모든 것은 이미 과거다.


지훈은 시인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모든 글은 과거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맞았다. 글뿐만 아니라 모든 기록이 그렇다.


사진도, 영상도, 녹음도. 심지어 기억조차도.


우리가 "지금"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과거다.


그럼 현재는 어디에 있는가?



지훈은 최종 보고서를 작성했다.


[ 연구 보고서: 현재 기록의 불가능성 ]

연구 질문: 현재를 기록할 수 있는가?

결론: 불가능하다.

근거:

1. 물리적 불가능성
- 최소 10⁻⁴³초의 시간 지연 필연적
- 광속의 한계

2. 양자역학적 불가능성
- 관측 = 현재의 파괴
- 기록 가능한 것은 이미 확정된 과거

3. 철학적 통찰
- 현재는 두께가 0인 순간
- 과거와 미래의 경계일 뿐
- 경험 가능하지만 기록 불가능

함의:

모든 기록은 과거다.
글, 사진, 영상, 기억 모두.

하지만 이것이 기록의 무의미함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록의 본질을 드러낸다:
기록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느끼게 한다.


지훈은 보고서를 읽으며 깨달았다.


그는 노트에 다시 적었다.


시인이 시를 쓴다. 과거의 감정을 쓴다.
하지만 독자는 그 시를 읽으며 "지금" 느낀다.

내가 사진을 찍는다. 과거의 순간을 찍는다.
하지만 누군가 그 사진을 보며 "지금" 감동한다.

모든 기록은 과거를 담는다.
하지만 그 기록을 경험하는 순간은 현재다.

이것이 기록의 역설이다.

현재를 기록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의 기록을 통해 현재를 만들 수 있다.

시인의 과거가 독자의 현재가 된다.
사진가의 과거가 관람자의 현재가 된다.

기록의 목적은 현재를 포착하는 게 아니다.
미래의 누군가에게 현재를 선물하는 것이다.


지훈은 카메라를 들고 연구실 창밖을 찍었다.


석양이 지고 있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 석양은 과거가 되었다.


하지만 지훈은 알았다.


누군가 언젠가 이 사진을 볼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2125년의 석양이 그들의 "현재"가 될 것이다.


과거의 기록이 미래의 현재를 만든다.


이것이 기록의 의미다.


지훈은 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현재를 기록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현재를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을 과거로 만들어,
미래의 누군가에게 현재로 선물할 수 있다.

시인이 쓰는 것은 과거다.
하지만 독자가 읽는 것은 현재다.

나는 과거를 찍는다.
하지만 누군가는 현재로 본다.

이것이 기록이 가진 시간의 마술이다.

현재는 기록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를 통해 무한히 재생산할 수 있다.

모든 글은 과거를 쓴다.
하지만 모든 독서는 현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 현재의 경험이,
다시 누군가의 과거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의 현재가 된다.

현재는 기록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는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과거의 기록을 통해.


지훈은 프로젝트를 종료했다.


"0초의 기록"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는 더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기록의 목적은 현재를 고정하는 게 아니라, 현재를 전달하는 것이다.


과거로 만들어진 기록이, 미래에 현재로 되살아난다.


지훈은 노트를 덮었다.


그리고 창밖의 석양을 그냥 바라봤다.


기록하지 않고. 그냥 경험했다.


이것이 진짜 현재다.


기록할 수 없지만, 경험할 수 있는.


지나가지만, 영원히 지금인.


지훈은 미소 지었다.


시인의 말이 옳았다.


모든 글은 과거를 쓴다.


하지만 그 과거가 누군가의 현재가 될 때,


기록은 시간을 초월한다.


글 · 잡학도서관 모따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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