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바지 입었다고 마음도 꽃밭인줄

차라리 먹튀를 해

by 독거부인

김 여사는 구정을 앞두고 전투를 앞둔 장수의 마음으로 가족을 기다렸다. 그녀에게는 40대 아들 둘과 딸이 있었다. 다들 결혼을 했기에 중고등을 다니는 손자손녀들도 있다. 손자들에게는 당연 생물학적 엄마, 아빠도 있다. 흔히 그들을 '며느리'와 '사위'로 칭한다. 그녀와 머리카락 한 번 스치지 않은 완전한 남의 자식이다. 특히 '며느리'라 불리는 그들은 자신의 소중한 아들들이 절절매며 받들어 모시는 염치없는 존재다. 젊음과 시대적 혜택을 받은 터라 김 여사가 그 나이때에는 상상도 못했던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아들을 낳고 키운 김여사에게는 크게 고마워하지 않는다.


'내가 헛살았지. 헛살았어.'


그녀는 아들들이 언제 올지 확인하고 또 했다. 아들들은 30대까지만 해도 귀찮은 티도 내고, 한 소리 할 때도 많았건만 요즘은 김 여사의 길고 긴 넋두리를 덤덤히 듣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녀의 마음은 허전했다. 긴 세월 쌓이고 쌓인 것들을 자식들에게 전하려고 하지만 말을 하면 할 수록 마음 속은 회오리쳤다. 진정되지 않은 마음의 화살은 살갑지 않은 며느리와 버릇없는 손자들에게로 돌아갔다. 이 속상한 마음은 누군가의 탓이어야 했다. 비난과 원망이 에너지가 되었는지 김 여사는 다시 음식준비를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는 명절은 할머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BGM으로 깔린다. 주방에서 이런저런 지시를 할때 할머니는 평소보다 똑똑해 보이고 목소리에는 위엄이 있었다. 제사상이 차려지기까지 가족을 주도하는 사람은 할머니셨다. 사랑받던 손녀인 나는 할아버지 옆에 앉아 있다가 중간중간 차려지는 다과상을 차지하고는 했다. 그러나 또다른 손녀였던 내 동생은 늘 엄마 뒤를 따라다니다 할머니에게 퉁박을 받기만 했다. 동생은 지금도 차별에 대해 억울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할머니에게 나는 순둥이에 책만 보는 어리버리라 집안일은 하지도 못하는 손녀라고 했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나와 목욕을 다니고, 떡을 받아 가장 먼저 입안에 넣어주었으며, 항상 절에 가서 나를 위해 불공을 드리셨다.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나는 할머니의 이상형이었던거 같다. 할머니가 받고싶었던 존중과 애정을 나에게 주신거라 이해한다. 불공평한 일이지만 할머니는 본인의 입장에서 행동하신 것 뿐이다.


할머니는 학교를 다니지 못하셨다. 일본의 식민지 시절, 학교에 잠시 다니면서 일본어를 익혔고 일본의 공장으로 끌려가 일을 하셨다. 할머니의 청춘은 아름다운 사연도, 사랑받은 기억도 없이 암흑기로 남았다. 아이에서 노인으로 점프한 것과 다를바 없었다. 자식들이 장성하고 더이상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할 필요가 없이 여유가 생겼지만 할머니는 스스로를 위해 하고싶은 일이 없었다. 늘 자식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김치를 담그거나, 싱싱한 생선과 고기를 찾아 다니셨다.


나에게 할머니는 마녀였다.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뚝딱 차려내는 거대한 존재였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이제서야 할머니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할머니에게 자식이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해줄 대리이기도 하고,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해소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그녀에게는 가족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가족이 그녀 삶의 목적이면서 족쇄가 되는 모순된 삶을 길게도 살았다.


나와 할머니의 삶을 생각해 본다. 누군가에게는 무한한 사랑을 주었지만, 다른 이에게는 상처를 주었던 할머니는 끝내 본인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그랬다고... 나의 과거는 지나갔다. 어른들을 변화시키는 일은 나의 몫이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나이가 더 들고 나의 자손들이 모이는 명절이 된다면 나는 아이들과 농담대회를 하려고 한다. 가장 웃기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주는 상금을 걸어 두고, 명절 전에 공지를 할 것이다. 한 백만원쯤 거하게 걸어두고 누가 제일 웃기나 심판을 봐야지.


그런데...


지금은 바꿀 수 없다면 적정한 순간에 인사를 하자. 가족의 감정이 나에게 상처가 되는데 그걸 다 받아낼 필요는 없다. 나를 그 속에서 끄집어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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