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스만 감독님...

공감능력이 없는 지도자란

by 독거부인

2022년 카타르 월드컵때 나와 아이는 서울에서 한달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해 대학입학시험 성적이 예상보다 낮게 나왔던 아이는 무기력과 자책으로 힘들어 할 때였다. 코로나 기간동안 사춘기를 보내면서 아이는 많이 어려웠고, 나 역시 깊은 우울에 빠져 있었다. 무작정 아이를 데리고 집을 떠나 숙소를 정하고 낯선 용산에서 하루하루를 지내는 일은 어려웠다. 무엇보다 앞으로 대학을 진학하는 일이 불투명해진 아이는 길을 잃은 것마냥 멍한 눈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다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멍하니 있던 우리에게 카타르 월드컵 중계는 유일한 약속이었다. 그 날도 그런 기운 빠지는 하루였던 것 같다. 할 일도 없고, 다른 사람들도 다 보는 축구경기니까 우리도 볼까하는 정도였던 우리는 점점 목소리를 키워가며 한탄을 쏟아냈다. 지금은 희미해져 중간생략이 되었지만 마지막 골이 터져나왔을때 아이의 울음섞인 환호는 잊혀지지 않는다.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이기고야 말았던 그 순간, 나는 하늘에서 폭죽이 터지는 줄 알았다. 답답했던 우리의 삶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었던 그 순간. 아이와 나는 한없이 흘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오열하고야 말았다.


" 엄마, 나 다시 해볼게. 나도 할 수 있어."


이 뜬금없는 자기성찰에 웃음이 날 수도 있으련만, 나 역시 아이와 부둥켜 안고 한참을 울었더랬다. 엄마가 해 준 수많은 말보다 힘겹게 땀흘리던 선수들의 투지가 아이의 마음에 희망을 일깨워주었던 그 날은 우리 가족의 역사적 날로 남게 되었다. 다시 떠올리는 지금도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우리에게 월드컵이란 좌절할 것만 같은 순간에 남은 힘을 다해 날리는 슛이다.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한국 사람들은 우리만의 화이팅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 우리 국민의 마음에 클린스만 감독은 냉랭하면서도 시니컬한 태도로 자신만을 합리화하는 것으로 상처를 입혔다.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과연 모르는 것일까? 한 나라의 국가대표팀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서 그나라 국민, 물론 선수까지 포함해, 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는 것은 거액의 계약금에 포함되어 있다. 그에게는 한국이란 나라가 그의 커리어에 숫자로만 남겨질 지라도 한국 국민에게 그는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리더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감독님,

당신은 거액의 개런티를 받아 떠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겠지. 경기의 결과를 떠나 당신이 우리 선수들을 진정으로 아끼고 안타까워하지 않는 그 마음이 진정 안타깝습니다. 당신의 쏘리는 모든 책임을 떠맡으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그저 국민들과 선수들의 마음에 깊이 공감한다는 위로의 표현입니다. 당신의 편협하고 이기적인 마음에 진정 쏘리입니다.


그런데... 나 너무 흥분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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