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앨범의 쓸모

사랑을 받은 기억들

by 독거부인

" 내가 이랬다고? "


짜장면 옆에 생양파를 집어먹는 돌쟁이 아기 사진을 보며 아이가 어이없는듯 물었다. 지금은 생양파 냄새도 싫어하는 본인인지라 상상 못한 모습일거다. 그 옆에서 웃고 있는 나와 남편도 보인다.


" 드럽게 짜장이 온통 묻었네. 엄마는 이때 웃겼나봐?"

" 그럼, 니가 똥을 묻히고 있어도 우리는 웃겼어."

" 헐... 지금은 맨날 씻으라고 하면서. "


아이가 인생 바닥을 친다고 할 정도로 힘들때 나는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던 성장앨범을 꺼냈다. 아이가 태어났을 즈음 스튜디오 사진관에서 성장앨범을 만드는 것이 유행인지라 백일, 이백일, 돌까지 엄청난 사진들이 앨범으로 액자로, 심지어 외장 하드에 파일들로 남아있다.


코로나가 정점일때 아이의 사춘기도 정상을 치고 있었더랬다. 외로운 외국 살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자존감을 살리고 싶어도 잔소리만 늘어놓는 수 밖에.


이거라도 해보자 하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찍어놓은 사진을 함께 보기 시작했다. 사진의 아기를 보는 동안 나는 아이의 어릴적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쩜 그렇게 작고 예뻤는지...


그런데 아이는 자신의 모습보다 나와 남편과 다른 이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더 자세히 보았나보다. 사진 속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했는지를 묻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걸었을때 온 가족이 축하를 한 일, 낮밤이 바뀌어 울때마다 드라이브를 했던 얘기, 돌잔치를 외가와 친가에서 두 번 했던 사정 등등을 자세하게 얘기해 주었다.


아이가 태어났을때부터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으며, 아이의 모든 성장이 가족들의 기쁨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아이는 사진들을 차분히 넘겨보았다. 그리고 그 중 한 사진을 자신의 휴대폰에 저장했다.

나는 잠시 아이의 얼굴에 편안함이 어리는 것을 보았다.


누구나 자존감이 바닥에 철퍼덕하고 내팽겨지는 순간이 온다. 사실 자주 그런 일들이 발생한다. 나 역시 낯선 유럽의 거리에서 혼자만 남겨진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럴때 나를 위해 기도하던 누군가를 떠올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본다. 숨만 쉬어도 사랑받던 때가 있었음을 기억하며 나 자신을 사랑해 보려고 한다.


나의 아이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성장앨범을 꺼내 함께 보낸 그 밤, 아주 오래 아이와 대화를 했다. 그 날의 시간들은 모처럼 편안하고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았다.


지금 외로운 혹은 괴로운 어른 아이가 있다면 그들에게도 성장앨범을 내미는 누군가가 있기를 바란다. 사랑받았던 기억이 없다고 사랑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진 속에 나는 혼자이지만 카메라 뒤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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