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몰라도 불행하지는 않아

<교토 이야기 1>

by 용작가

수입발모제를 아침, 저녁으로 바르고 탈모에 좋다는 비싼 샴푸를 쓰면 뭘 하나. 머리카락을 뽑아내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면 일흔이 되기 전에 대머리가 될 터였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더니.


수북이 쌓인 머리카락을 보니 숱이 빠져 휑한 두피를 대놓고 쳐다보던 원장의 눈빛이 떠올랐다. 원장은 늘 내 나이를 들먹였다.

안 선생이 몇이더라?

물론 나이가 궁금한 것은 아니다.

단골로 드나드는 환자들과 연배가 비슷하지 않냐. 무릎 관절은 괜찮은 것이냐.

그는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을 하고는 했는데 요지는 뻔했다.

언제 그만둘 것이냐는 거다.


아무리 시골 병원이라지만 당신처럼 나이 많은 직원을 고용하는 곳은 없다, 게다가 전적으로 힘이 필요한 물리치료사로서는 말이다. 그러니 염치가 있다면 제 발로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이 원장이 하고 싶은 말이다.

원장의 의도는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하고 있다. 사실 이런 시골에서는 사람 구하기도 어려웠다. 원장이 내내 강조하는 힘 좋고 파릇파릇한 젊은이들은 낡고 허름한데다 죄다 노인들만 찾는 병원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알면서도 일부로 내 속을 긁고 싶어 저러는 거 아닌가 싶다. 아니면 젊은 여자와 재혼 후 자신의 나이를 잊은 건가. 내가 알기로는 원장은 일흔에 가까운 나이였다. 은근히 나이를 지적할 때마다 나도 묻고 싶었다.

원장님, 비아그라는 효과가 있나요?


오순 언니도 일을 하려면 젊어 보여야 한다고 했다. 원장이 날 아주 할망구로 본다니까. 앓은 소리를 하면 당연히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속이 망가진 건 어쩔 수 없지만 보이는 건 신경을 써야지. 옷도 차려입고 화장도 하란 말이지.

일을 얼굴로 하나, 평생 해오던 일이야,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이고.


말을 하면 뭐 해, 듣질 않으니. 잔소리가 아니고 충고야.


언니는 자신이 입던 옷들을 넘겨주곤 했는데 스타일이 나와 전혀 맞지 않았다.

비싼 거야, 네가 가진 것들보다는 훨씬 낫다니까.


나는 꽃무늬나 과감한 디자인은 싫어, 어울리지도 않고.

아무리 싫다고 해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보냈다. 철마다 헌옷수거함으로 가야 할 옷을 내게 보냈고 쌓인 옷들을 보면 누구에게인지 모를 분노가 쌓여갔다.


오순 언니의 별명은 안박사였다. 언니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모르는 것이 없다. 그만큼 자기주장이 강했고 뭐든 뜻대로 밀고나갔다. 말을 붙여봤자 손해였고 괜한 잔소리만 듣게 되는 식이다. 언니는 내가 혼자인 것을 아주 안쓰러워했다. 괜찮다고 여러 번 말 했는데도 믿지 않았다.


은순아, 너 행복하니?


언니가 물을 때면 행복이 뭘까 생각하고는 했다. 행복이라는 것이 마음에 있는 건지, 돈에 있는 건지, 사람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 글쎄, 내가 고개를 갸웃하면 언니는 안타깝다는 듯이 한숨을 뱉었다.

행복은 몰라도 불행하지는 않아. 울며불며 살지는 않거든.


그러니? 난 네가 짠하다.


언니는 행복해?


난 평생 행복했지.

지금도?


나도 지고 싶지 않아 언니의 속을 후벼 팠다. 솔직히 내 인생은 오순 언니보다는 나은 거 같았다. 그런데도 오순 언니는 나만 보면 혀를 끌끌 찼다.


대체 왜? 혼자라서?


여럿이 살면서 괴로운 것보다야 혼자 외로운 것이 낫지 않나?

요즈음은 오순 언니의 삶을 보며 위로를 받고 있다. 다른 이의 삶을 평가하며 위안을 받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것이 내 그릇이다. 난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다.


뽑힌 머리카락을 보며 한숨을 쉬는데 원장에게 나던 꼬질꼬질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마루까지 넘어왔다. 고개를 쑥 빼고 보니 은행나무 아래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미래가 대문 옆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쪼그려 앉지 말라고 은행나무 아래 의자를 두었는데 여전히 몸을 공처럼 만들고 고개만 들어 뻐끔거리고 있었다. 미래가 담배를 피우다 놀라며 꾸벅 인사했다.


쪼그려 앉지 말라니까.


이게 더 편해서.


교토는?


교토는 뭐 집구석에서 쉬고 있어요. 아직 다 낫질 않았어요.

교토는 미래가 키우는 고양이다.


다음 화 : 교토의 뒷다리는 어떻게 된 걸까?

작가의 이전글치열하게 살고 싶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