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했지만 나는 여전히 엄마와 함께 살았다.
“아이 낳고 공부해.”
그 말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삶을 바꾸는 선택이었다.
나는 아이를 낳고 곧바로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처음부터 함께 산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옆 동에 살며 아이를 봐주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양쪽집을 오가셨다.
어느 날 엄마가 말씀하셨다.
“가깝지만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조금은 힘드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
나는 너무 좋았다.
결혼 전처럼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엄마가 해주는 빨래를 입고
그리고 엄마가 항상 우리 딸과 함께해주셨다.
아이를 맡긴다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엄마였다.
그래서 나는 아무 걱정이 없었다.
엄마는 주중에는 우리 아이만을 돌보셨다.
새벽이면 나는 조용히 집을 나섰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시간,
도서관으로 향하는 나를 위해
엄마는 이미 깨어 계셨다.
그리고 밤이 깊어 내가 돌아올 때까지
엄마는 우리 딸과 함께 우리 가족의 집을 지키고 계셨다.
나는 하루 종일 공부를 했고
엄마는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했다.
그렇게 엄마는 내가 없는 시간 동안
우리 아이의 엄마가 되어 주셨다.
24시간. 주 5일.
그 시간 위에서 나는 공부만 했다.
엄마는 매일 내 가방 속에 도시락을 넣어 주셨다.
김치와 야채를 넣어 만든 작은 꼬마김밥,
닭가슴살, 그리고 과일.
나의 임용 도시락.
그 도시락을 싸시며 우리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아마도 나의 합격을 조용히 기도하셨겠지.
아이가 한 살이 되던 해,
나는 처음 시험을 보러 갔다.
우리 아이는 11월에 태어났지만
나의 임용시험 때문에 돌잔치를 제때 하지 못했다.
그 시간도 엄마는 아무 말 없이 함께 견뎌주셨다.
시험을 보러 가던 아침마다
나는 잠든 아이를 한 번 바라보고
엄마와 짧게 포옹을 나눴다.
“잘 보고 와. 우리 딸 파이팅!!”
그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마음이 담겨 있었는지
그때는 다 알지 못했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시험장으로 향했다.
그 시간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한 번, 두 번…그리고 아홉 번.
나는 합격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공부를 했고, 엄마는 아이를 예쁘게 귀하게 키워주셨다.
남편은 말없이 그 시간을 버텨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며
하나의 시간을 만들어 갔다.
나는 그 시간 속에서
참 많이 편했고,
참 많이 행복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편안함이 누군가의 몫이었다는 것을.
그 조용한 헌신 위에 내 시간이 놓여 있었다는 것을.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린다.
새벽 공기, 조용한 집, 잠든 아이의 숨소리,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도시락을 싸시던 우리 엄마의 뒷모습.
나는 그때의 엄마를 이제야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더 많은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14년이라는 시간을
한 집에서 함께 살았다.
나는 이제야 묻는다.
그 시간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나는 이제야 안다.
그 시간은 내 시간이 아니었다.
엄마가 나를 위해 조용히 건네준
엄마의 삶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