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렀다.
IMF라는 시간을 지나 우리 가족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나는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남동생과 여동생이 아직 학생이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학원으로 향했다.
돌아보면 나는 참 부족한 학생이었다.
전공서적을 깊이 공부해 본 적도 없이
그저 주변의 도움으로 졸업을 해낸 학생.
그런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
처음에는 낯설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일이 참 좋았다.
20대의 젊은 여자 선생님은~
30~40대 남자 선생님들이 가득한 대형 특목학원에서
아이들과 웃고,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하루를 채워가는 그 시간이
정말 정신없이 바빴지만 행복했다.
그러다 문득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똘똘한 아이들에게 더 많은 수학적 지식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오전에는 학부 수업을 청강하고,
저녁에는 학원 파트일과 대학원 수업을 병행하며
바쁘고 고된 일정이었지만 그 시간 또한
내게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학식을 여유롭게 먹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수업 속에서도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마치 대학생이 다시 된 것처럼.
그렇게 또 배우는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씩 ‘선생님’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 남편을 만났다.
우리 남편은 참 신기한 사람이었다.
교육학을 배운 적도 없으면서
내가 대학원 수업에서 들은 내용을 이야기하면
그 내용을 더 쉽게 풀어 나에게 다시 설명해 주었다.
수업이 끝난 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이
정말~ 좋았다.
어느 날 남편이 묻는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일하면서 공부하는 일…
다시는 안 할 거예요.”
잠시 후 남편이 다시 물었다.
남편의 청혼이었다.
그 말은 내 인생을 떠받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렇게 나는 결혼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엄마가 나를 불렀다.
잠시 나를 바라보던 엄마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뚝이야.~
엄마가 너 고3 때 뒷바라지도 제대로 못 해줬잖아.”
이번에는 엄마가 해줄게.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남편과 나이차이가 많았고,
공부를 하겠다는 딸이 혹여나 아이를 미루고
결혼생활을 할까 봐.
더욱이 쉬운 시험이 아니니~
엄마도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엄마가 나에게 하신 말씀은
단순한 도움이 아니었다.
엄마의 시간을, 엄마의 삶을
나에게 내어주겠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조용히 덧붙였다.
“너도 알잖니.
엄마가 아빠 사업이 어려워졌을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IMF라는 시간.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으로 나갔는지.
엄마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단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나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울었다.
그날 이후 나의 임용은 시작되었다.
아이를 낳고 나는 바로 책상 앞에 앉았다.
아이 유치원 가기 전까지는
합격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시간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아이는 유치원에 들어갔고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나는 여전히 합격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나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있었고,
남편이 있었고,
그리고
나를 기다리는 아이가 있었다.
우리는 그 시간 속에서
서로의 삶을 조금씩 내어주며
함께 버텨내고 있었다.
그 선택은 결국
우리를 다시 한 집으로 묶어 놓는다.
엄마와, 그리고
우리 가족이 함께
살게 되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