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IMF가 우리 집에도 찾아왔다

by 뚝이샘

IMF와 함께 우리 집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아빠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어느 날, 우리 집에 빨간 딱지가 붙었다.

그때의 나는 그 종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집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는 것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아빠는 사업 실패 이후 많이 무기력해 보이셨다.


집에 계시는 시간이 많아졌고
엄마와 다투는 날도 잦아졌다.


그럴 때면 나는 동생들과 함께
방 안에서 몸을 웅키리고 있었다.

방문 너머로 들려오는 어른들의 낮은 목소리.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괜히 소리를 내면 무언가 더 크게 무너질 것 같아서.

그렇게 동생들과 가만히 숨죽이고 있던 날들이 많았다.

그 시절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매일같이 IMF 이야기가 나왔다.

외환 위기로 가정이 무너지고,
이혼하는 부부들의 이야기,
집을 떠나는 엄마들의 이야기.

어린 마음에 나는 그 뉴스가 무서웠다.

혹시 우리 엄마도 우리를 두고 떠나는 건 아닐까.

괜히 엄마 얼굴을 오래 바라보던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대신 우리 가족을 위해 일을 하러 집 밖으로 나가셨다.

“엄마도 이제 일을 해야 할 것 같아.”


그 말과 함께 엄마는 처음으로 세상으로 나갔다.

엄마가 일을 시작하면서 우리 집의 풍경도 조금씩 달라졌다.

늘 집에 계시던 엄마가 아침이면 일을 하러 나가셨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예전에는 엄마가 있던 집이었는데,
어느 날부터는 엄마가 없는 집이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엄마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동생들을 챙기고 집을 지키는 일.

지금 생각하면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의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언니, 누나 역할을 해내려고 애썼던 것 같다.



내 기억에 아직도 선명한 장면이 하나 있다.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막내 동생이
여섯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막내 동생 목에 집 열쇠를 걸어 주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다.

그 어린 아이가 혼자 문을 열고 집에 들어와야 한다는 사실이
엄마에게는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이었을까.


엄마가 있던 집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따뜻한 밥 냄새와 엄마의 향기로 가득했다.

그 집은 늘 살아 있는 집 같았다.

하지만 엄마가 일을 하러 간 뒤의 집은
조용했고 어딘가 텅 빈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우리 삼 남매는 그때부터

조금씩 서로를 더 챙기며 특별한 삼남매가 되어갔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서.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엄마의 두려움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까지 마쳤다.

임용시험에 아홉 번 떨어지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80여 곳에 이력서를 보내던 그 시간,
그 시간이 얼마나 두렵고, 무섭고
자괴감이 들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평생 집에서 가족을 돌보며 살았던 사람이다.

단 한 번도 세상 밖에서 일을 해 본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가 IMF라는 거대한 위기 속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세상으로 나갔다.

얼마나 두렵고
얼마나 무서웠을까.

엄마는 우리 삼 남매를 위해 일을 시작했다.

아침 9시에 나가
저녁 6시에 돌아오는 일.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우리와 저녁을 함께하기 위해
그 시간을 선택했을 것이다.

엄마는 우리 곁을 떠난 것이 아니라
우리 곁을 지키기 위해
세상으로 나간 사람이었다.


그때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엄마가 얼마나 큰 용기를 내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시간이
우리 가족을
조금 더 단단하게,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엄마와 우리 삼 남매는
IMF라는 긴 시간을 서로를 붙잡으며 지나왔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내가 결혼을 앞두게 되었을 때,

엄마는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내게 한 마디를 건넨다.

그 말은 내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게 된다.

“아이 낳고 공부해.
엄마가 키워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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