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14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by 뚝이샘

엄마가 나를 위해 건네준, 엄마의 삶.

나는 그 시간을 14년 동안 함께 살았다.


나의 한 시간은
온전한 한 시간이 아니었다.

엄마의 한 시간이었고, 내 딸의 한 시간이었고, 남편의 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을 허투루 살 수 없었다.

… 그렇게 믿으며 살았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안다.

나는 그 시간을 끝내 온전히 미친 듯이 열심히 살아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서 합격을 못한 듯하다.


나의 임용 공부는 버티는 일이었다.

알파벳도 모르는 아이가 대학 원서를 읽는 느낌.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도 다음 날이면
처음 보는 글처럼 낯설었다.

오늘 외운 내용이 내일이면 통째로 사라지고,

나는 같은 페이지를 며칠째 넘기지 못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초수였으니까.

아무도 나에게 기대하지 않았고, 나도 나를 몰랐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숨이 조여왔다.

책상 위 달력의 날짜는 한 장씩 사라지는데,

내 실력은 그 자리에 멈춰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엄마와 함께 사는 삶이 편했다.

그래서 아이를 엄마에게 온전히 맡겼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엄마는 이미 주방에 계셨다.

김이 올라오는 밥솥, 도마 위에 올려진 반찬들,
작은 아이 숟가락.


나는 그 옆을 스쳐 지나가며 가방을 챙겼다.

아이의 눈을 제대로 마주 보지 못한 채.

“엄마 다녀올게.”

아이를 꼼꼼히 살피지도 못하고~

그 말이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다.


평일에는 엄마가 아이를 키웠고,

주말이면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시댁으로 갔다.

나는 그 사이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합격을 그 어느 해보다 바랐던 때에는~

나는 결국 아이와 떨어져 지냈다.


서울대 도서관.

형광등 불빛 아래

사람들 사이에 앉아 하루 종일 문제만 풀었다.

밤이 되면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고,
도서관은 조용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영상 하나.

“엄마~ 사랑해!! 파이팅…”


그 한마디에 나는 숨을 참고 있다가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영상.

작은 아이가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서 있었다.

그리고 시작한다~

“인절미가 시집간데요~
팥고물과 콩고물로 화장을 하고…”

또박또박, 틀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목소리.

중간에 잠깐 멈췄다가 다시 시작하는 숨.

엄마에게 보여주기 위해 얼마나 연습했을까.



그 작은 아이가 혼자 서서
몇 번을 다시 불렀을까.

나는 그 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했다.

눈물이 먼저 흘러서.



그래서 다시 눌렀다.

그리고 또, 다시.

영상은 똑같은데
나는 매번 다르게 울었다.

보고 싶어서, 미안해서,


그리고 그 아이의 시간이 내 곁에 없다는 걸 알아서.

그 밤들은 늘 비슷했다.

영상 하나를 보고, 울고, 다시 보고, 또 울고.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나는 합격하지 못했다.



엄마는 점점 지쳐갔다.

주방에서 서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말수가 줄어들었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조금만 더…”

그 말 하나로 모든 시간을 붙잡고 있었다.



어느 날은 책을 펴놓고 한 글자도 읽지 못한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만두고 싶었다.


정말로. 하지만

내 딸을 떠올렸다.

그 아이의 영상 속 웃음이 나를 다시 붙잡았다.

그래서 버텼다.


그리고 결국, 나는 그 긴 시간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였다.

엄마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나는 이제 내 딸의 엄마로 살아가려 했고,

엄마는 여전히 나의 엄마이자 내 딸의 엄마로 살고 계셨다.

우리 집에는 세 명의 여자가 있었다.


엄마, 나, 그리고 내 딸.


그리고 우리 집에는 한 명의 아빠와 세 명의 딸이 있었다.

아빠는 우리 남편. 세 딸은 우리 엄마, 나, 그리고 우리 딸.

이상하리만큼 그렇게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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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다.

아이와 내가 함께 웃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어나자

엄마의 표정이 조금씩 달라졌다.

엄마가 말씀하셨다.

“딸…네 딸이 엄마인 너를 찾으면
나는 그렇게 서운하더라.”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엄마, 나도 그랬어.

내 딸이 아프면 엄마인 나를 먼저 찾아야 하는데,

할머니를 먼저 찾으면 나도 서운했어.”


… 이게
무슨 상황일까. 우리 딸을 사이에 두고

엄마와 나는 서로 밀고 당기고 있었다.

웃기면서도, 참 마음 아픈 일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14년 동안 내 딸을
엄마 막내딸처럼 키우셨다.

우리에게 준 사랑보다 더 많은 사랑을 주고,

더 귀하게 우리 딸을 키워주셨다.

그래서 아마~그 서운함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역시 오랜 시간

엄마에게 맡겨 두었던 내 딸을

이제 다시 내 품으로 데려와
엄마로 살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엄마에게 더 미안했고, 더 죄송했다.

아이와 나 사이에 이야기가 많아질수록,

엄마와 나는 점점 더 서로를 조심하게 되다.


나는 엄마의 눈치를 보고,
남편의 눈치를 보고,
딸의 눈치까지 보며

그 집의 가운데에서 숨이 턱턱 막히는 날들이 많아졌다.



누구 하나 잘못한 사람은 없었지만,

누구 하나 편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내가 임용고시라는 세상에 있었을 때는~

나만 힘들면 되니 참으로 편했는데... 하는 생각도 했었다.



나는 한때 엄마와는 평생 이렇게 살 줄 알았다.

엄마도, 나도, 우리 딸도 이대로 한집의 시간이 계속될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세상에는

'절대'라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엄마와 함께 14년을 살았고,

결국 각자의 집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엄마가 이사를 가던 날,

나는 그제야 알았다.

같이 사는 것보다 떨어져 사는 일이
더 마음 아플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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