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이사 가던 날

by 뚝이샘

엄마와 여러 번 분리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엄마는 격하게 반대하셨다.

“나는 뚝이 너랑 평생 살 줄 알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엄마가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혼자 지내는 거 너무 싫어…”


그 말 끝이 조금 떨렸다.

“난… 너만 믿고 살았는데.”

그리고 아주 작게,

“서운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도 엄마의 그 마음을
다 받아낼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그날도

나는 그저 듣고만 있었다.

모든 일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닌가 보다.


그래서 우리는 끼익 끼익 소리를 내는 낡은 톱니바퀴처럼

각자의 자리를 겨우 맞추며 살아가고 있었다.

엄마의 서운함을 내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같이 살 때보다

떨어져 지내는 지금,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더 크게 밀려왔다.



나는 정말 나쁜 딸이었다.

엄마는 이사 날짜를 정하셨다.

그리고 말없이 짐을 정리하기 시작하셨다.


14년...


집 안 곳곳에는 엄마의 시간이 쌓여 있었다.

부엌 한쪽, 베란다 구석,
서랍 깊은 곳까지.

엄마의 물건이 아닌 곳이 없었다.



엄마는 그걸 하나씩 꺼내셨다.

소리도 없이, 티도 내지 않고.

나는 그 모습을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엄마, 필요한 건 다 가져가세요.
걱정하지 마시고요.”



괜히 밝게 말했지만 그 말이 엄마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을지도 모른다.


베란다 한편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짐.

그걸 볼 때마다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이었다.

말로는 ‘메어진다’고 하지만 그날의 마음은

그 말로도 다 담기지 않았다.



엄마는 그 많은 짐을 싸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무슨 마음으로
그 시간을 견디고 계셨을까.



이삿날 아침,

엄마 방의 물건들이 하나씩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침대, 이불, 작은 서랍장, 화분...



그 방이 비어갈수록

내 마음도 같이 비어갔다.

정말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엄마의 새로운 집.

짐을 옮기고, 물건들은 각자 제자리를 잡았지만

그곳은 그냥 허전했다.

그냥 텅 빈 느낌이었다.



이곳에서 우리 엄마는 혼자 지내야 한다.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엄마 혼자 밥은 드실까…”
“혼자 있다가 쓰러지시면 어떡하지…”



그동안은 막연했던 걱정들이

이제는 현실처럼 다가왔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우리 엄마.

나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눈이 살포시 내리던

2025년 12월의 어느 날,

우리는 그렇게 분리를 했다.

엄마가 없는 집도,
엄마가 새로 들어간 집도

둘 다 낯설고, 차갑고, 조용했다.

따뜻한 온기는 아직 어디에도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엄마 집에 남았다.

“여보, 나 오늘 엄마 집에서 자고 갈게.”

그 말을 하면서~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아.

나에게도 이제~친정이 생겼구나.

그날 밤 엄마와 나는 같이 잠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시간이 이상하게 따뜻했다.



그리고 다음 날,

엄마가 말했다.

“뚝이야, 자고 가줘서 고맙다.”


잠시 멈췄다가 엄마가 덧붙였다.

“많이 서운했는데…

이렇게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그 말이 가슴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엄마는 나에게 5만 원을 쥐여주셨다.

“가면서 주유해라.”



그리고 우리 딸에게도

“할머니 집 자주 놀러 와.
가면서 엄마랑 맛있는 거 사 먹어.”

또 5만 원.


나는 그 돈을 받으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학 이후로 처음 받아보는 용돈이었다.

그날 나는 다시 딸이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날 밤~

엄마와, 나 그리고 우리 딸.

셋이 함께 앉아 있던 그 작은 집에서

나는 느꼈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를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우리는

같이 사는 시간을 끝내고,

각자의 집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엄마가 없는 집에서 처음으로
혼자 밥을 차리던 날,

나는 숟가락을 들고 한참을 먹지 못했다.


그 식탁에는 늘 계시던 우리 엄마가 없었고,

그 빈자리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한 숟갈을 뜨는데,

그냥 눈물이 났다.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차려지던 그 한 끼가

사실은 엄마의 시간이었고,

엄마의 하루였고,

엄마의 삶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 것 같아서.

그날, 나는 밥을 먹다가 울었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엄마가 없는 집에서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나는 한 번도 엄마 없이
살아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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