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우리 딸은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찾는 아이였다.
생각하는 방식도, 말투도, 기질도 아빠를 꼭 빼닮아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아빠에게 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정말 힘들면
조용히 엄마에게 온다.
여학생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 선이
가시처럼 마음을 건드리는 날,
학교 생활이 조금 버거운 날,
그렇게 조금 힘이 드는 날이면
말없이 내 옆에 와 앉는다.
그 모습을 보면 말을 하지 않아도 안다.
아, 오늘 이 아이의 마음이 많이 흔들렸구나.
한참을 이야기하던 딸이 문득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엄마는 어땠어?
엄마도… 다 겪어본 거지?”
그 말에 오랫동안 닫아두었던 나의 어린 시절이 천천히 열렸다.
중학교까지의 나는 웃음 많고 외향적인 아이였다.
하지만 비평준화 지역에서
소위 명문고에 진학한 순간 모든 것이 무너졌다.
작은 마을에서 늘 상위권이던 나는
초반부터 적응에 실패했고 성적은 빠르게 떨어졌다.
그때부터 나는 말수가 적고 조용한 아이가 되었다.
중학교 친구들은 여전히 나를 “활발한 아이, 적극적인 아이”로 기억하지만
몇 안 되는 고등학교 친구들은 나를 “아주 조용한 아이”로 기억한다.
그만큼 나는 그 시절의 나를 아무에게도 꺼내놓지 못한 채
그저 버티기만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까지 움츠릴 이유는 없었는데
그때의 나는 방법을 몰랐다.
위로받는 법도, 도움을 요청하는 법도.
그래서 오늘, 우리 딸이 힘들다 말하는 이 순간
나는 솔직한 나의 이야기를 건넨다.
엄마도 흔들렸고, 엄마도 적응이 어려웠고,
엄마도 그냥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고.
그러자 딸이 말했다.
“엄마는… 진짜 다 겪어봤구나.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야.”
나는 딸에게 말한다.
“딸~. 하루하루 잘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넌 이미 대단한 거야.
학교 가기 싫은 날 그래도 학교 가는 용기,
학교 가고 싶은 날 더 힘내서 학교 가는 마음.
그거면 충분해.”
딸의 얼굴에 천천히 안심이 번져갔다.
평소엔 아빠를 찾던 아이가
가장 힘든 순간엔 엄마를 찾는 이유.
그것은 엄마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흔들렸던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오랜 임용 이야기가
나의 숨겨두었던 흔들림의 경험이
지금 딸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고맙다.
흔들림을 숨기지 않고 꺼내놓는 딸.
그리고 그런 딸 곁에
그 마음을 항상 받아주는 엄마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 딸은 든든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 오래된 흔들림이
우리 딸에게 위로가 될 수 있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