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린 성적, 흔들리지 않은 아이

by 뚝이샘

올초, 딸이 발레를 그만두며 처음으로 마음을 길게 열어 보인 날이 있었다.
그때 나는 아이가 사랑을 내려놓는 법을 배우는 모습을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엄마, 발레 할 때
타고난 애들 보며 많이 속상했어.
연습 안 되는 날은 진짜 답답해서 눈물이 났고…

근데도 알지?
나 매일 발톱이 빠지도록 연습했잖아.
마음을 붙들고 버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엄마도 알고 있지?”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말은 투정이 아니라,
사랑했지만 끝내 붙잡을 수 없었던 것을
스스로 놓아야 했던 사람의 고백이었다.


딸은 말을 이어갔다.

“딱 이맘때다.

작년 12월부터 학교 안 가고 나 홀로 동계훈련했잖아.

2월까지 진짜 딱 3개월 다른 것 아무것도 안 하고,

레슨하고 학원 가고, 운동만 했지.

진짜 시간을 아끼고 아껴서 책정도만 보고.

정말 하루 종일 발레랑 개인 운동만 했어.
학원 문을 내가 열고 닫을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실력이 내가 바라는 만큼은 안 오르더라.
그게 너무 속상했어.

근데 엄마…
그 안에서 ‘버티는 법’을 배운 것 같아.
포기하고 싶은 날에도 조금만 더 해보자고 스스로를 붙잡는 힘.”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아이의 마음 한가운데에는
이미 단단한 줄기가 하나 자라나고 있음을 느꼈다.


어찌어찌 여름방학이 되기 전에 발레를 정리하고,

아이는 잠시 스스로의 시간을 보내더니~

공부를 열심히 해 보겠다고 했다.

발레로는 1등을 못했지만~

공부만큼은 1등을 해 보겠다고...


그렇게 스스로 자기주도학습을 한 아이.

오늘은 딸의 중학교 첫 시험날이었다.

중학교 들어와서 첫 시험.

그것도 첫날이 수학 시험.

지난 한 주 동안 아이와 함께 스파르타로 달렸다.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본격적으로 발레를 하면서

가장 염려했던 부분이 수학 연산이었는데^^

엄마가 수학 선생님인데 연산이 우리 딸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발레로 다져진 멘탈과 체력으로

어찌어찌 일주일간 시험 범위를 마무리했고

오늘 그 시험이 개봉박두.


엄마인 나는 내가 임용 볼 때보다 더 떨렸다.

오후 1시가 넘어가니 전화가 온다.

“엄마, 수학 70점 겨우 넘겼어…”


나는 아이가 많이 속상할까 걱정이 되었는데~
그런데 딸은 의외로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근데 엄마, 나 잘했지?

이 정도면 선방이지.

그리고 엄마 시험 성적이 내가 아니야.
내가 70점은 아니지.
난… 그냥 나야.”


그 말이 내 마음을 멈춰 세웠다.
점수 앞에서 흔들릴 나이에 자기 자신을 더 먼저 바라보는 아이.


나는 살며시 물었다.

“딸, 속상하지는 않아?”

딸은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웃으며 답했다.

“조금은 속상해. 그런데 괜찮아.
내가 못한 걸 알았으니 이제 방법을 찾아서 다음에 더 잘하면 되니까.”


우리 딸의 멘탈이 놀랍다.

이런 멘탈을 지닌 아이~

어느 집 딸인지.^^

발레를 버티던 그 시간들이

이 아이를 이렇게 단단하게 만들었구나.
이제는 점수보다 마음을 먼저 살피는 사람으로 자라나고 있구나.


시험이 끝나면 우린 함께 이번 경험을 돌아볼 것이다.
배운 것들도, 아쉬웠던 부분도
엄마와 딸의 속도로 천천히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벌써 마음 한구석이 따뜻했다.

흔들린 건 성적이었지만, 흔들리지 않은 건
단단한 아이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이
무엇보다도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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