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오늘의 화재는 통분이었습니다

by 뚝이샘

지난 주말 내내 딸과 마주 앉아 수학을 했다.
중1 딸의 첫 지필 평가~



올 초까지만 해도 운동에 온 마음을 쏟던 아이라

학업 리듬이 늦게 잡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문해력이 좋아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문제를 펼치니
곳곳에서 연산 구멍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솔직히 이런 생각이 스쳤다.
'엄마가 수학 선생님인데…
우리 딸의 구멍을 너무 늦게 알았구나.'


나조차도 우리 딸의 실력을
괜스레 더 높게 평가했던 것이다.
부모의 믿음이 때때로
아이를 너무 ‘앞으로’만 보고 있게 하는 법이다.


늦은 새벽까지 공부를 이어가겠다고 마음먹은 딸은
아빠에게 데리러 와 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그 문자를 읽는 순간,
피곤함보다 웃음이 먼저 찾아왔다.


“아빠, 저는 OO이예요.
발등에 불 떨어졌어요.
핸드폰 껐으니 이 번호(엄마인 내 번호^^)로 전화 주세요.
새벽 2시까지 화재진압하다 갈게요. 사랑해요.”


단순한 귀가 요청이
딸의 손을 거치면 이렇게 사랑스러운 재난 문자가 된다.

수학 문제 몇 개가 곧 ‘출동 사유’가 되는 상상력.
힘든 밤이었지만, 아이 덕분에 마음이 참 말랑해졌다.


그 ‘화재 현장’이라 불리던 통분은
결국 그 새벽, 우리 모녀에게 잡혀주었다.

흩어지던 개념을 다시 데려오고,
허술했던 부분을 차근차근 메우며
아이의 눈빛이 조금씩 밝아졌다.


그리고 나는 그날,
시험이 가진 순기능을 다시 배웠다.
시험은 아이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부모가 반드시 다시 들여다봐야 할 곳을
빛처럼 비춰주는 존재라는 것.


늦은 새벽까지
수학 책 위에 드리워진 스탠드 불빛.
그 속에서 아이도, 나도
조금 더 단단해졌다.

웃기고, 귀엽고,
조금은 뭉클했던
우리 모녀의 기말 대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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