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딸의 첫 지필평가.
그동안 수없이 많은 학생들의 시험을 지도해 왔지만,
정작 내 아이가 처음으로 혼자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무겁고, 깊고, 벅찼다.
나는 이번 시험에선
딸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알고 있는 공부법,
내가 수십 년 동안 다져온 노하우,
효율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들…
그 모든 것을 목구멍 끝까지 삼켰다.
왜냐면, 내가 알려주는 순간
아이는 결국 ‘엄마만큼’ 만 하게될지 모른다는 사실이
어느 날 문득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의 한계를
내 경험으로 규정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방식이 아이의 방식이 되고,
엄마의 틀이 아이를 감싸버리는 일이
이번 첫 시험부터 일어나지 않길 바랐다.
무엇보다 중학교 첫 지필평가는
스스로 부딪혀 봐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끝까지 붙잡고 있는 힘.
공부 안되는 마음을 다잡고 책상으로 돌아오는 힘.
서툰 계획표를 다시 고쳐 쓰는 경험.
시간이 부족해 발을 동동 구르는 감각까지.
이 모든 것은 누가 알려줘서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겪어내야 비로소 자기 것이 된다.
그래서 나는 딸의 옆에서 조용히 함께만 있었다.
문제 풀다가 멈춰 있는 어깨를 지켜보며,
도와달라는 눈빛에도 웃음으로 답하며,
내 방식이 아니라 아이의 속도를 지켜보는 연습을 했다.
사실, ‘가르치지 않는 선택’은
아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가만히 지켜보는 일,
그 침묵과 기다림이 얼마나 큰 용기인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딸은 혼자서 조금씩 길을 찾기 시작했다.
오래 걸려도 다시 도전했고,
실수해도 금세 지우고 다시 써 내려갔다.
도와주지 않아도 버티는 힘이
아이 안에 이미 자라나고 있었다.
결국 나는 깨달았다.
시험에서 얻는 건 점수가 아니라
“스스로 해냈다”는 경험이 주는 자기 신뢰라는 걸.
아이는 첫 시험에서 마킹 실수도 했다.
논술형 답안을 쓰다 종이 치는 경험도 했다.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을까~
얼마나 초조했을까~
얼마나 속상했을까~
하지만 지금 해야 하는 경험이다.
경험하고 반추하면서 다음에는 그러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내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스스로 찾기 어렵다면 함께 찾아줘야 한다.
그 과정을 나도 이번에 제대로 깨달았다.
나는 평소에도 우리 아이를 가르치지 않지만
시험을 앞두고 더욱 가르치지 않았다.
대신, 뒤에서 마음으로 가장 크게 응원했다.
아이의 가능성을 내 방식으로 좁히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 둘 모두에게
가장 깊은 성장으로 돌아왔다.
아이와 2주가량 함께 있으면서 투덕거리기도 하고,
얼싸안기도 하고,
어르고 달래기도 하면서 아이와 함께한 시간이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뜻깊은 시간으로 남은 듯하다.
이제 이번 주말에 시험 피드백을 하기로 했으니~
피드백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하다.
"딸~ 시험 보느라 정말 수고했다.
오늘 친구들하고 실컷 놀고,
엄마랑 주말에 2차로 또 놀자.
엄마가 진짜 진짜 많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