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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들려준 놀라운 일

by 장유연

한여름 뜨거운 날,

친구 생일을 핑계 삼아 오랜만에 모임을 가졌다.


더운 날엔 보양식이 제격이라는 만장일치 의견으로

외곽에 있는 백숙 맛집을 예약했다.

삼복이 모두 지난 탓인지 식당은 한적했고,

능이버섯과 전복, 각종 한약재가 들어간 담백한

오리 백숙은 지친 몸을 풀어주는 듯했다.

식사 끝에 나온 시원한 수정과를 마시며

우리는 서로의 근황을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는

내게 조금 충격이었다.

친구는 시골 은행에서 오래 근무해온 사람이다.

상냥한 성격 덕에 어르신들과 잘 어울리는 그는

의외로 주민등록번호가 없거나,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글은 몰라도,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사람이 있다고?’

순간, 믿기지 않았다.


친구가 겪은 한 사례는 이랬다.



고객에게 전화로

직접 은행을 방문해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고 안내했더니,

그 고객은 화를 내며 억지를 부렸다고 한다.

"당신들 잘못으로 나를 이렇게 불편하게 만든 것 아니오!

담당자가 어떻게 하든 알아서 하시요."


목소리를 높이며 전화를 끊을 기세였다는 것이다.

한참의 설득 끝에 다음 날 은행을 찾아온 사람은

건장한 6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고 했다.

친구는 서류를 건네며 체크 후 서명을 부탁했는데,

남성은 펜을 든 채 한참을 머뭇거렸고

주위를 살피며

아주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가… 글을 몰라서요."

그 순간 친구는 전날 그가 왜 그토록

화를 내며 버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은행에 와서 서류를 작성하라’는 말이

얼마나 두렵고 버겁게 들렸을까.

친구는 그가 최대한 무안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남성은 전날 일을

미안해하며 진심으로 사과했고,

친구는 "괜찮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다 듣고

나는 문득 부끄러워졌다.

사실 나 역시 친구 얘기를 들으며 이렇게 생각했었다.

‘시간 내서 은행에 잠깐 들르면 될 걸,

왜 저렇게 화를 내는 거지?’


하지만 그건 온전히 내 시선으로만 본 것이다.

그 사람의 사정을 모른 채,

내 기준으로만 속단해 버린 것이었다.


우리는 흔히,

상대의 말과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땐

‘내가 모르는 사정이 저 사람에게 있겠지’ 라는

그 가능성을 먼저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았다.

우리는 보이는 단편만으로 남을 쉽게 평가하고

심지어 다 안다고 착각하며 판단해버린다.

하지만 그 이면엔

내가 보지 못한 결핍과 사정,

말로 꺼내지 못한 사연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처럼

상대의 것을 받아서 반응하려는 순간,

내가 ‘부정적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 자신이

먼저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 뒤, 살짝 시선을 옮겨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스토리’로 바꿔 보는 것이다.


근거 없는

감정에 흔들리기 보다는

이성으로 바라보려는

마음가짐과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것은 결국, 내 해석에서 시작된다.




그 작은 물꼬 하나가

상대도, 그리고 나 자신도

조금 더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할 것이다.




<작은 에피소드>

친구 은행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아들이 보낸 돈을 찾으러 오셨다.

“우리 아들이 이 은행으로 돈을 보냈다 해서 찾으러 왔는데…”

“네, 통장과 도장 가지고 오시고 비밀번호를 아셔야 합니다.”

“아니, 장롱에 가만 놔둔 통장이 돈이랑 뭔 상관이고!

우리 아가 돈을 여기로 보냈다 카는데,

그 돈만 주면 되지."

귀엽게 역정을 내시던 할머니의 모습은

듣는 우리까지 웃게 만들었다.


때로는 이렇게 웃음을 주는 오해도 있지만,

그 안에도 우리가 쉽게 보지 못하는

삶의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모른다.




* 사진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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