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가장 불편했던 건, 나였다

by 장유연

여행에서 가장 불편했던 순간은

풍경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그 사실을 분명히 마주한 건

동생과 조카들과 함께한 유럽 여행의

마지막 일정에서였다.


여행에서 드러난 내 모습은

여행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원래 있었지만

일상 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나였다.

나는 그동안 가려져 있던 나를

여행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이달 초, 여자 넷이서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여행했다.

수도 위주의 일정이었고

관광객이 많이 찾는 코스를 중심으로 한 자유여행이었다.


명소들이 비교적 가까이 모여 있어

걷는 시간이 많았다.

많이 걸어도 크게 힘들지 않은 나를 보며

아직 체력이 괜찮다는 생각에

혼자서 은근히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여행을 이끈 건 조카였다.

이미 먼저 현지에 들어가 있었고

우리는 큰 틀만 공유한 채 움직였다.

여행 방식의 차이는

일정이 이어질수록 드러났다.




돌아오기 전날,

파리 외곽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찾았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

입장은 순조로웠다.


입장하자마자

미리 봐 두었던 유튜브 추천대로

입구 오른쪽 ‘거울의 방’부터 관람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코스는 역방향이었다.


다른 건물로 이동하려다 보니

어느새 출구 앞에 서 있었다.

그때 조카가 말했다.

“여긴 마지막 출구라, 나가면 다시 못 들어와.”


하지만 나는

들어올 때부터

‘둘러보고 나왔다가

다른 건물로 이동하면 되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출구 앞 직원의 제스처에 이끌려

그대로 밖으로 나와버렸다.


출구 밖에는

다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없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이미 짜증이 올라와 있었다.

나와 동생은 한참을 돌아다녀보았지만

결국 방법을 찾지 못했다.


베르사이유 궁전 관람은

그렇게 시작과 동시에 끝났다.


동절기라 무료로 개방된 정원도

바람이 불고 마음이 가라앉아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 선택 하나로

여행의 한 장면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그 순간이 자주 떠올랐다.

왜 나는 조카의 말을 흘려들었을까.

왜 이미 내 판단을 먼저 내려놓았을까.


돌아보면 나는 종종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기보다

미리 결론을 정해두곤 했다.

특히 나보다 어린 사람들 앞에서

그런 태도가 더 잦았다.

이번 여행은

그 습관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 이후

소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듣는 태도가 먼저라는 것.

말의 내용보다

그 앞에 놓인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것.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곧바로 말로 옮기기보다

한 번쯤 멈춰 거르는 연습,

내 입장이 아니라

상대의 위치에서 다시 바라보는 연습이

지금의 나에게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행을 통해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은

나는 생각보다 예민한 사람이면서도

결정의 순간에는

쉽게 물러서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더 고민해볼 수 있는 순간에도

나는 판단을 미루거나 흘려보냈다.

그 선택은 조용히 후회로 남았다.


그 태도 안에는

지침과 배려가 섞여 있었지만

동시에 책임을 잠시 내려놓으려는 마음도

있었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이번 여행은

고쳐야 할 나를 발견했다기보다

다스리며 함께 가야 할 나를 만났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완벽한 선택보다는

한 번 더 묻고,

한 번 더 듣고,

한 번 더 멈춰보는 것.


이번 여행에서 만난 나는

편안하지 않았지만,

그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여행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여행은 끝났지만

그 불편했던 순간 덕분에

나는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고

그 이해는

앞으로의 선택을 천천히 바꿔갈 것이다.



* 사진출처(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