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의 일이다.
회사에서 후임자와 인수인계를 하던 짧은 시간,
나는 내가 배워온 방식들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
그녀는 서른 초반의 미혼 여성으로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영어 강사와 과외를 병행했고
여러 분야의 자격증도 갖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꽤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처럼 보였다.
업무 인수인계를 하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교육에 대해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강사와 과외를 하며 느낀 부모들의 교육 방식의 모순,
지식 위주의 교육보다
아이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인성이라는 이야기.
아이들이 바뀌려면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가 먼저 달라져야 하고,
특히 아버지의 역할이
아이들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녀는 자기 기준이 분명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인수인계가 시작된 지 4일째 되던 날,
그녀에게서 출근을 할 수 없다는 문자가 왔다.
상사의 마인드와 소통 방식이
자기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 역시 쉽게 말을 더할 수 없었다.
전날 상사와 그녀가 나눈 대화 이후,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퇴근 전, 걱정되는 마음에
웃으며 이런 말을 건넸었다.
“자기 관점에서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에도
그 안에 우리가 받아들이고
배울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요.”
그 말이 떠올랐는지
그녀는 출근하지 못하겠다는 문자에
이런 말을 덧붙여 보내왔다.
“저는 사회에서 배운다면
긍정적인 것, 좋은 모습들 속에서
배우고 깨닫고 싶어요.
부정적이고 안 좋은 모습을 보며
배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문장은
이상하게도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았다.
과연
긍정적이고 좋은 것들 속에서만 배운다면
우리는 배워야 할 것들을 모두 배울 수 있을까.
사실 그 상사의 업무지시는
내게 늘 퍼즐 조각을 맞추는 일처럼 느껴졌다.
알아듣기 어려웠고, 답답해 가슴이 막히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상사 역시
내가 이해를 잘 못한다며 답답해했으니
이 일은 누군가의 일방적인 잘못이나 틀림은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지금 나는 내 기준과
다른 세계를 마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상황에서 내가 배울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지금 상대를 바르게 대하고 있는 걸까.
상대를 대하는 내 태도는 어떤 상태인가.
내 내면은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
혹시 나도 그동안
누군가를 이렇게 대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이런 질문을 거듭하다 보면
상대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조금씩 힘을 잃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나를 먼저 살펴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감정도 차분해졌다.
부정적인 모습들을 마주하고
그 안에서 내가 얻을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넘어가는 과정 속에서
나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가 부정적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어쩌면
우리를 가장 단단하게 성장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질문들은
각자의 삶에서
자기만의 답을 천천히 찾아가게 돕는
하나의 도구가 되어주고 있다.
* 사진출처(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