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남긴 뜻밖의 힘

by 장유연

퇴근길에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다가

문득 오래전 기억 하나가 함께 떠올랐다.


어린 시절

잠깐 서비스 업종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다.


내가 맡은 일은 비교적 한가한 편이었지만

현장 쪽은 늘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작은 일이었지만

도와달라는 요청이 오면

가끔 현장 일을 거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일을 잘 아는 것도 아니었고

괜히 나서서 도왔다가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탁이 있을 때만 조심스럽게 도왔다.


어느 날이었다.


잠깐 한가하게 앉아 있던 순간

사장님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갑자기 큰소리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저쪽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일이 없으면 같이 도와야지.

왜 그렇게 눈치 없게 앉아 있어!”


그 말을 시작으로

마치 화풀이를 하듯

몇 마디의 날선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때

현장에서 일하던 분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사장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 이 친구 그냥 가만히 있었던 거 아닙니다.

저희가 도움 필요할 때 요청하면

와서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장님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가버렸다.


잠시 뒤

그분이 나에게 물었다.


“아까 그 말 들으면서

넌 어떻게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렇게 가만히 있을 수 있었니?”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는

깊이 생각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저 그 상황에서

굳이 변명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한 가지 생각이 남는다.


상대의 분노 앞에서

침묵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 상황을

내 입장만이 아니라

상대의 자리에서

바라보려 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누군가의 말에 즉각 반응하지 않는 태도는

때로 어떤 말보다도 더 강한 힘을 가진다.


그 순간 나는

상대와 싸우지 않았고

내 감정을 지키는 쪽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지금 그 장면을 떠올리며

나는 한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순간의 분노가

내 감정을 지배하도록 두지 않는 힘.


어쩌면 살아가면서

조금씩 길러가야 할 것은

바로 그런 힘인지도 모른다.



* 사진출처(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