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나는 늘 상대를 탓했다.
회사 회의 자리에서의 일이다.
나는 일정 조율에 대해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며칠 뒤,
나는 기존 방식을 비판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의 해석을 거친 말은
처음의 결을 잃고
다른 온도로 전달되고 있었다.
설명하려는 순간
나는 이미 방어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때 마음 한편이 서늘해졌다.
왜 내 말은 늘 다른 모양으로 돌아오는 걸까.
회사에는
나와 결이 많이 다른 동료가 한 명 있다.
같은 말을 들어도 받아들이는 방향이
서로 다르다는 걸, 나는 자주 느낀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녀와의 대화는 때때로
시간을 건너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돌아온다.
그럴 때면
직접 말해주었다면 오해는 줄어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이런 장면은
사람만 바뀔 뿐
낯설지 않게 반복되어 왔다.
그때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우리는 왜 비슷한 장면을
다른 인물과 다른 장소에서 계속 경험하게 될까.
반복은
아직 이해하지 못한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랫동안
내 논리가 더 분명하다는 확신 속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름을 인정한다고 말하면서도
기준은 늘 내 쪽에 두고 있었다.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이미 상대를 틀린 자리에 놓고 있다.
나는 내가 옳은 것처럼
상대는 상대의 기준 안에서 옳다.
그렇다면 우리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이 사실을 모를 때
다른 사람은 스트레스가 되고
피하고 싶은 존재가 된다.
그러나 다름을 인정하기 시작하면
관계는 갈등이 아니라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된다.
왜 저렇게 말할까.
왜 저렇게 해석할까.
비난 대신 관찰을 선택하면
처음에는 낯설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해되지 않던 부분에 맥락이 생긴다.
불편함은 조금씩 풀린다.
어쩌면
내가 상대의 모순이라 여긴 부분은
내 안에도 있는 모습일지 모른다.
그래서 더 예민하게 보이고
그래서 더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환경은 설명 없이도
나를 비추는 방식으로 말을 건넨다.
나는 그 말을
불편함으로만 들을 것인지,
성장의 단서로 받아들일 것인지
이제는 조금 고민해 보려 한다.
* 사진출처(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