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비보다 적은 금액으로 12년 묵은 집을 새 집처럼

전문가의 힘을 빌려 한 봄맞이 집 정리... 집이 다시 태어났다

by 박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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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를 떠나 시골로 이사 온 지 12년. 외동아들을 키우며 쌓인 물건들로 집은 창고가 되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정리할 수 없어 전문 업체를 불렀다. 여섯 명의 작업자가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집 안팎을 정리했다. 아이 장난감부터 오래된 피아노까지 과감히 버렸다. 이사비용보다 적은 비용으로 12년 묵은 집이 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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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에서 살면서 동과 동 사이로 보이는 작은 하늘이 싫었다. 계절이 변하는 것을 단지 내 벚꽃나무의 사계절로만 겨우 알아차려야 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염증이 났다. 그래서 남편과 상의 끝에 시골로 이사를 온 지 어느덧 12년 차에 접어든다.




그 사이 다섯 살이던 아이는 중학교 3학년, 16살이 되었다. 이사를 가지 않고 12년을 살다 보니 집안 곳곳에 쌓인 묵은 짐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가 클 때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몇 번씩 정리를 해왔지만 쌓인 물건은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특히 어린이집에서 받아 온 아들의 꼬꼬마 시절 만들기는 버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외동아들이라 모든 것이 소중했다. 시골 주택에 살다 보니 지인들과 가족들이 준 물건도 참 많았다. "아이가 다 컸다"며 보내온 미술용품, 음악 시간에 쓸 악기, 사용하지 않는다며 맡겨놓은 캠핑 장비들까지, 필요한지 아닌지 고민할 틈도 없이 우리 집으로 밀려들었다.





▲일단 꺼내고 봅시다 전문가는 달랐다. 먼저 꺼낸 후에 버릴 건 버리고 꼭 필요한 물건만 넣으셨다. ⓒ 박수정





주는 마음이 고마워 하나둘 받아두다 보니 보일러실 겸 창고는 그야말로 물건의 무덤이 되었다.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 철제 선반을 두 개나 들여놓았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꼴이었다. 남편은 퇴근 후 체력이 바닥나 집 안에서 에너지가 빠져나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주말에도 캠핑을 가기엔 집이 주택이라 마당에서 놀면 되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또 한 해가 지나며 물건은 늘어만 갔다.




어린 시절 농사를 짓는 부모님과 살면서 부자로 살진 않았지만 가난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도 왜인지 자꾸만 물건을 쟁여놓는 습관이 생겼다. 안락해야 할 집은 어느새 짐에 둘러싸인 공간이 되었다. 혼자 치우려니 답이 나오지 않았다. 버릴 물건을 분류하다 보면 결국 다시 옷장과 찬장으로 되돌려 넣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동생이 도와줘도, 정리수납을 잘하는 친구가 와도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




결국 모르는 사람, 그것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검색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업체가 있었다. 1톤 트럭 한 대에 실릴 만큼의 폐기물을 모조리 처리해준다는 안내였다. 처음엔 "우리 손으로 버리기 힘든 물건 몇 가지만 도와달라"는 마음이었지만 욕심이 조금 생겼다. 마당에 우후죽순으로 자란 나무도 가지치기가 필요했고, 집 안 정리도 함께 요청했다.




약속한 날짜, 18일이 바로 그날이었다. 아침 8시가 되기도 전에 여섯 분이 도착했다. 집 안을 맡을 여성 세 분, 마당과 바깥을 맡을 남성 세 분이었다. 아들 등교를 도와준 뒤 본격적으로 정리를 시작했다.




창고 담당자는 모든 물건을 바깥으로 빼기 시작했다. 아이 손때 묻은 장난감부터 바람 빠진 자전거까지, 온갖 물건이 주차장으로 나왔다. 이렇게 많은 것을 쌓아두고 살았나 싶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모르는 분들 앞이라 더 과감해질 수 있었다. 버릴지 말지를 1초 만에 결정하며 일을 빠르게 진행했다.




주방에서 또 나를 불렀다. 돌잔치에서 받은 기념품 수건과 컵들이었다. 다시 쓸 일이 없는 물건들. 나는 고민 없이 버릴 것을 골랐고, 쓸 만한 것들은 한 통에 모았다. 마당에서는 오래된 어린이 수영장 덮개와 미끄럼틀이 나왔다. 먼지와 거미줄은 말할 것도 없었고, 일부는 삭아 가루처럼 부슬부슬 떨어졌다. 이런 걸 끼고 살았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오면서도 지금이라도 정리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식사 바닥에 앉아서 식사를 했다. 죄송했지만 그분들은 일상이라며 괜찮다고 하셨다. ⓒ 박수정







이곳저곳 불려 다니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읍내에서 해장국을 포장해 와 거실 바닥에 둘러앉아 함께 먹었다.




"이렇게 집 청소를 하니 버릴 것들이 생각보다 많네요."




그러자 작업자 한 분이 웃으며 말했다.




"사모님,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니더. 집에서는 우리도 엉망입니다. 열심히 일 하셔서 돈 버시고, 가끔 저희를 불러 주이소."




그 말에 모두 함께 웃었다. 아이스크림과 커피로 후식을 나누고 오후 작업을 이어갔다.




한나절이 지나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매일 이 일을 하는 분들이 존경스러웠다. 예순이 넘은 연세에도 능숙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멋지기까지 했다. 남성 작업자들은 나무 가지 한 트럭을 처리하고 돌아와 폐기물들을 트럭에 싣느라 분주했다. 오전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꼬박 하루를 집에서 보내며 집을 비워냈다.






▲잘 가라 피아노야 친정아버지가 사 주신 중고 피아노. 쓰지 않았지만 버릴 때는 죄스러웠다. ⓒ 박수정





가장 고민이 컸던 건 거실 한 자리를 차지하던 피아노였다. 아들이 초등 3학년 콩쿠르에서 준대상을 받은 뒤 중고로 구매한 피아노였다. 그 후 학년 대상을 한 번 더 받고는 더 이상 건드리지 않았다. 버리기엔 아깝고, 주자니 운반비가 부담됐고, 중고 판매도 쉽지 않았다. 결국 폐기 스티커를 붙여 버렸다. 친정아버지가 사주라고 준 돈으로 산 피아노라 마음이 무거웠지만, 버리고 나니 거실이 넓어졌다. 지금은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몇 트럭을 버렸는지 모르겠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 ⓒ 박수정





그날 정리에는 꽤 많은 비용이 들었다. 그러나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일을 전문가의 손으로 해결할 수 있었고, 12년 묵은 집이 새 집처럼 변했다. 집이 짐처럼 여겨지지 않고 가족의 행복을 품는 공간으로 되살아났다. 이사를 가진 않았지만 이사비용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집이 바뀌었다.






▲깨끗해진 공간 선반이 남을 줄 몰랐다. ⓒ 박수정




▲깨끗해요 넓어진 공간이 어색하다 ⓒ 박수정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가족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 집이 이렇게 넓었어?"


"엄마, 진짜 새 집 같다!"



아들과 남편은 여기저기 둘러보며 연신 감탄했다. 대청소를 마치고 나니 마음의 먼지도 털어낸 듯했다. 봄을 맞아 집이 다시 숨 쉬기 시작했다. 어수선한 공간 속에서 답답함을 느끼던 시간은 끝났고, 우리는 오래 살던 집에서 '두 번째 첫날'을 맞이했다.






덧붙이는 글 | 정리는 단순히 물건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오래 붙잡고 있던 시간을 내려놓는 과정이었다. 이사 없이도 집이 새집처럼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꽤 많은 비용이 들었지만, 물건 사이에서 답답함을 느끼던 일상에 숨통이 트이며 마음까지 정돈되는 경험을 했다. 집은 다시 가족이 함께 머무는 따뜻한 공간이 되었고, 앞으로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가벼워지는 집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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