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비벼 먹었다, 마음이 환해졌다

봄동이 알려준 계절의 신호

by 박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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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비켜서고 봄이 조용히 문턱을 넘어왔다. 볕이 조금 따뜻해지면 몸이 먼저 알아채고 깨어나는 법이다. "아, 봄이 오네" 싶은 순간이 있는데, 내게는 지난 주말이 그랬다.



▲한 상 가득 봄날의 기운이알록달록 눈으로 먼저 먹는 봄동 비빔밥 ⓒ 박수정




공동체에서 봉사 활동을 마치고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 봄동 비빔밥이 등장한 것이다. 그릇을 보는 순간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그냥 밥이 아니라, 봄을 먹는 거다. 뷔페식으로 줄을 서 있는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자꾸 빨라졌다.



"얼른 먹고 싶은데…"



한 칸이라도 더 줄어들기를 바라며 맛을 상상했다. 사르르 무쳐지는 봄동 겉절이를 보는 순간 이미 반쯤 먹은 기분이었다. 풋풋한 초록 기운이 다소 썰렁했던 식당 안으로 금세 퍼졌다.





▲봄동 겉절이최소한의 재료로 만드는 봄의 향연 ⓒ 박수정




봄동은 얇고 부드럽다. 양념만 있으면 바로 무칠 수 있고 따로 절일 필요가 없어 누구나 손쉽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요즘 SNS에서도 '봄동 비빔밥'이 유행이다. 얼마 전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 열풍이 잦아들고, 식탁 위에는 다시 초록의 계절이 올라오는 중이다. 무엇보다 값이 착하다. 두쫀쿠 하나는 4천 대부터 다양하지만 봄동 한 덩이는 2천 원 남짓. 계절의 기쁨치고는 참으로 가성비 좋은 편이다.




▲한 그릇에 담은 봄환절기의 나른함을 책임져 준 봄동비빔밥 ⓒ 박수정




우리는 곤드레 나물밥에 봄동을 올려 먹었지만, 사실 더 단순해도 충분하다. 뜨끈한 흰 쌀밥에 갓 무친 봄동 한 줌, 노릇한 계란 프라이 하나, 마지막에 참기름 한 방울. 그 순간 퍼지는 향은 말 그대로 한 끼의 위로다. '오늘은 이거면 된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달래장비빔밥 양념으로 달래장이 빠지면 섭섭하지 ⓒ 박수정




함께 나온 음식들도 훌륭했다. 진짜 식당에서 사 온 것 같은 감자탕도 있었지만, 유독 손이 가지 않았다. 이유는 한 입 떠먹는 순간 알았다. 쑥 된장국의 알싸한 향이 먼저 모든 감각을 깨웠기 때문이다. 쑥은 언제 먹어도 봄을 데려오는 재주가 있다. 풋마늘순 고추장 무침은 달짝지근하면서도 싱그러워 자꾸 손이 갔다.



봄동은 비타민 C와 식이섬유가 풍부해 환절기에 처지기 쉬운 몸을 가볍게 일으킨다. 그러니 이 계절에 더 어울릴 수밖에 없다. 한 그릇 먹고 나면 괜히 기운이 나는 이유가 있다. 봄을 비벼 넣은 것 같은 느낌이 자연스럽게 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친구에게 말했다.



"오늘은 정말 봄 한 그릇 먹고 온 기분이야."



친구가 웃으며 답했다.



"그럼 마음도 좀 환해졌겠다."



봄동 비빔밥에 쑥국이라니, 정말 환상의 조합이었다. 봄은 늘 그렇게 온다. 조용히, 스며들 듯, 입안에서 먼저 깨어나는 계절처럼. 그래서 이번에도 나는 한 그릇 앞에 앉아 봄을 천천히 맛보았다. 이 계절의 비빔밥은 이제 음식을 넘어 작은 신호처럼 느껴진다. 다시 걸어도 된다는,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는 조용한 표시 같다.



그렇게 나는, 봄을 한 그릇에 비벼 먹었다.




덧붙이는 글 | 봄은 늘 먼저 입 안에서 깨어나는 것 같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순간을 음식에서 발견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제철 음식을 통해 계절을 천천히 느끼는 시간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보낸다. 앞으로도 일상의 장면들을 꾸준히 기록하며 더 좋은 글로 찾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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