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은흥해도서관 개관 1년... 상처를 품은 마을의 회복 이야기
"이대로 끝인가 보다."
2017년 11월 15일, 그날 나는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땅이 울렸다. 단순히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집이 통째로 들썩였고, 발밑에서 올라오는 진동은 몸을 그대로 밀어 올리는 듯했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2017년 포항 지진이 발생한 날, 나는 남편과 함께 급히 아이를 데리러 나갔다. 당시 일곱 살이던 아들은 병설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는 이미 전교생이 대피해 있었다. 아이들은 놀란 얼굴로 모여 있었고, 어른들 역시 상황을 가늠하지 못한 채 서성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여진은 계속됐다. 우리는 식탁 아래로 몸을 숨겼다가 다시 나오는 일을 반복했다.
그날의 공포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몸에 새겨지는 감각이었다. 결국 우리는 그날 밤, 멀리 인천 영종도에 있는 여동생 집으로 향했다. 다음 날은 수능이었다. 하지만 시험은 일주일 연기됐다.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도시 전체가 멈춰 선 듯한 시간이었다.
내가 사는 포항 북구 흥해읍은 그날 이후 크게 달라졌다. 특히 피해가 컸던 대성아파트는 한동안 뉴스의 중심에 섰다. 집 안에서 공을 굴리면 한쪽으로 굴러갈 정도였다고 한다. 기울어진 건물, 갈라진 벽, 떠나야 했던 사람들. 많은 주민들이 평생 살던 터전을 떠났다. 대피소 생활을 견디기도 했고, 새로운 동네로 이주하기도 했다.
작은 읍내였던 흥해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가던 시기도 있었다. 우리 집은 진앙지에서 불과 1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다행히 주택이었기에 아파트처럼 큰 피해는 없었지만, 그날의 공포는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마당에 있던 강아지도 놀라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짖어댔다. 사람도, 동물도 모두 같은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대성아파트는 결국 철거됐다. 그리고 2025년 3월 18일, 그 자리에 새로운 공간이 들어섰다. 바로 포은흥해도서관이다. 음악을 콘셉트로 한 이 도서관은 지상 3층 규모로 조성됐다.
1층에는 어린이 자료실과 이야기방, 강당 등이 있어 아이들과 가족 단위 방문객이 머물기 좋다. 2층은 멀티미디어와 음악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실로 구성되어 있어 강의와 문화 활동이 이루어진다. 3층에는 일반자료실과 문학자료실, 그리고 조용히 책을 읽거나 공부할 수 있는 휴게 공간이 마련돼 있다. 카페를 연상시키는 따뜻한 인테리어와 개방감 있는 구조 덕분에, 이곳은 이제 포항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었다.
도서관은 오후 10시까지 문을 연다. 퇴근 후에도 불이 켜진 공간에서 책을 읽고 공부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한때는 어둡고 버려진 공간이었던 그 자리가, 이제는 밤을 밝히는 장소가 되었다.
도서관이 개관한 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생각해 보면,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사람은 어쩌면 나일지도 모른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대상으로 도서관에서 책 관련 강의를 하기 때문에 집에서 차로 3분을 가면 도서관이 나오고, 도서관에서 또 걸어서 3분이면 일터에 닿는다. 나는 이곳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때로는 강의를 준비한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겪은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었구나.'
지진은 많은 것을 무너뜨렸다. 집을, 일상을,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하지만 그 자리에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사람들이 다시 모이고, 머물고, 서로의 시간을 나누는 곳.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공포가 있다. 작은 흔들림에도 가슴이 먼저 반응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자리에 다시 서 있다.
무너진 자리 위에 세워진 도서관에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그리고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지역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