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둘과 고창 1박 2일

황윤석도서관부터 구시포 해수욕장, 청보리밭까지... 봄 기운 가득한 풍경

by 박수정


https://omn.kr/2hpa1



중3 둘과 고창 1박 2일, 정말 많은 걸 얻었습니다


포항에서 출발해 전북 고창으로 향한 1박 2일 여행기. 중학교 3학년 자녀를 둔 엄마들이 황윤석도서관을 시작으로 작은 책방, 구시포해수욕장 갯벌, 고인돌박물관, 청보리밭, 미당 서정주 문학관을 둘러봤다. 백합 칼국수 한 그릇, 갯벌 위 맨발, 책방 주인의 기억 속에서 여행자는 "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가고 있었던 것"...


▲벚꽃이 만개한 황윤석도서관/ 아름다운 외관과 벚꽃이 어우러진 도서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임영주





"여행은 계획을 세우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 말이 이렇게 실감 날 줄은 몰랐다. 지난 4일, 나는 포항을 떠나 전북 고창으로 향했다. 출발의 계기는 단순했다.



"고창에 멋진 도서관이 생겼대."



책을 사랑하는 지인의 한마디가 우리를 길 위로 불러냈다. 우리는 같은 학년 아이를 둔 엄마들이다. 초등학교 6년 내내 한 반이었던 아이들은 어느덧 중학교 3학년이 되었고, 여전히 함께 어울린다. 자연스럽게 이번 여행 역시 아이들과 동행하게 됐다.



'이 도시, 괜찮다'는 문장이 떠올랐다



오후 1시 출발. 아침까지 쏟아지던 비는 거짓말처럼 멎었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었고, 우리는 "날씨요정 있음"이라며 웃었다. 내비게이션은 3시간 30분이라는 소요 시간을 알려줬지만, 엄마 둘의 수다는 그 시간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2층 벽면까지 책으로 가득서까래와 책의 조화가 어우러진 실내가 웅장하게 느껴진다 ⓒ 박수정



도착은 오후 4시 반. 폐관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한 시간 남짓이었다. 서둘러 들어선 황윤석도서관은 기대보다 더 웅장하고 조용했다. 높은 층고, 온화한 빛, 책에 몰두한 사람들. 낯설면서 묘하게 편안한 풍경이었다. 마음 속에 단박에 한 문장이 들어왔다.



'이 도시, 괜찮다.'



이어 들른 작은 책방에서는 반가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몇 년 전 스쳐 갔던 나를 책방 주인이 기억해 준 것이다. 책에 사인을 받으며 우리는 독자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연결되는 감각을 느꼈다.



저녁은 순두부찌개와 청국장으로 따뜻하게 마무리했다. 숙소는 벚꽃 축제가 한창이었다. 꽃잎 아래서 하루의 페이지를 덮었다.



다음 날 아침, 햇살이 먼저 우리를 깨웠다. 공기는 한결 부드러웠고, 봄은 더 가까워져 있었다. 아침은 차 안에서 빵과 커피로 간단히 해결했다. 전날 못 본 풍경을 다시 눈에 담으며 달렸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여기서 살아도 참 좋겠다.'



산과 들과 바다가 함께 있는 도시, 단번에 속도를 늦춰도 괜찮을 것 같은 곳이었다.




▲구시포 해수욕장/ 쌀쌀한 날씨에 옷깃을 여미게 되었다. 조개를 캐는 가족들은 벌써 여름이 왔나보다 ⓒ 박수정



우리는 구시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동해와 달리 끝없이 펼쳐진 갯벌이 우리를 맞았다. 지인은 전라도도, 갯벌도 처음이었다. 우리는 아이들처럼 신발을 버리며 뻘 밭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조개를 캐고 있었고, 바구니에는 작은 게와 조개가 가득했다. 차가운 바람에도 꿋꿋한 그 모습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끝없는 초록의 물결


점심은 바닷가 식당에서 먹은 백합 칼국수였다. 기다림 끝의 한 숟가락이 온몸을 데웠다. 결국 2인분을 더 추가했고, 바닥이 보일 때까지 먹었다. 든든한 한 끼가 다시 길을 열어주었다.




▲백합칼국수/ 점심으로 뜨끈한 백합칼국수를 먹었다. 맛집의 정석, 줄을 서서 기다린 후에 입장을 했는데 가히 명성에 맞게 맛있었다 ⓒ 박수정/



고창 고인돌박물관은 예상보다 깊은 울림을 주었다. 선사시대의 삶과 고인돌의 규모를 보며, 인간의 시간이 얼마나 단단하게 이어져 왔는지 새삼 느꼈다. 그리고 이어진 곳은 청보리밭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초록의 물결은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마지막으로 들른 미당 서정주 문학관에서는 희미한 과거의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신혼 시절 남편과 왔던 장면이 조형물을 보는 순간 되살아났다. 아이들에게 시인을 설명했지만, 사춘기 둘은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그 모습마저 웃음이 났다.




▲청보리밭/ 싱그러운 청보리밭을 걷노라니 근심과 걱정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 박수정




오후 2시 반, 다시 포항으로 향했다. 도착은 6시 반. 길지 않은 여행이었지만 마음은 오래 찰랑거렸다. 타 지역으로 떠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시간도, 여유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분명히 말했다. "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가고 있었던 것"이라고.



돌아오는 차 안, 아이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봄의 기운, 낯선 풍경, 그리고 다시 살아갈 힘. 짧은 1박 2일. 우리는 그 안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삶이 조금 버거워지면, 나는 다시 길을 떠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짧은 여행이었지만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기운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한 여행이라 더 의미가 깊었다.




#고창여행#벚꽃여행#전북여행#황윤석도서관#구시포해수욕장

작가의 이전글포항 지진으로 철거된 아파트, 그 자리에 들어선 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