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승호의 시 <역마살>을 읽고
스무 살이 갓 넘었을 무렵, 엄마를 따라 점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한 해 신수도 볼 겸 해서 갔던 대나무가 꽂혀 있는 집이었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긴장이 되었다. 다소 무서워보이는 얼굴의 무속인이 한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그 보다 몇 배는 더 무서운 얼굴을 한 황금색의 동상이 뒷편에 여러 개 배치가 되어 있었다.
분위기 자체로 압도되어 대문 입구의 대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엄마는 두 손을 모으고 무릎까지 꿇은 자세였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앉아 있으려고 했지만 속으로는 떨고 있었다.
"올 해 우리 식구들 운세가 어떤지 좀 봐주시소. 잘 부탁합니데이" 하고 엄마는 치성을 드리듯이 무거운 입을 뗐다.
텔레비전에서 봤던 것처럼 엽전 서너 개를 상 위에 던졌고 왼손에는 은색 방울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휘파람까지 불면서 점괘를 보던 그분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접신이 신통치 않았는지 다시한번 휘파람을 불더니
"아들 하나 있지? 역마살이 있어. 우리나라가 좁다고 나오네. 비행기를 많이 탈 거야."
이 말은 지금까지 정말 또렷하게 머릿속에 박혀 있는 말이다.
"그래요? 그럼 좋은 겁니까? 나쁜 겁니까?"
엄마가 놀라서 물었다.
"현수막을 걸고 빵빠레(팡파르)를 울리고 말도 타고 할거야."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까 점을 보시는 분들은 일단 반말을 하신다 ㅎㅎㅎ)
아무튼 그렇게 말을 했다.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시는 할아버지가 지금 그렇다고 말씀을 하시네. 나는 할아버지 말을 대신 전해주는 거야"라고 하셨다.)
현재 나의 남동생은 미국에 살고 있다.지난 8월까지 네덜란드에 살다가 갔다. 회사의 주재원으로 간 것이다. 이거... 그렇다면 그분이 맞았다고 해야 하는... 거지? ㅎㅎㅎ 아무튼 이런 걸 두고 용하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야는 어떻습니까? 잘 좀 봐 주이소."
드디어 나의 차례였다. 나는 엄마한테 애꿎은 짜증을 냈다. 괜찮으니 안 봐도 된다고 하면서.
나의 점괘는 다소 쉽게 나왔다. 앞에 했던 일련의 행동들의 축소판 정도로 하더니,
"큰 딸인가? 얘도 역마살이 좀 있네. 남동생보다는 아니지만."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상황이다.
그날의 경험은 내 머릿속에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 정도로 강렬한 인상이었나 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역마살이 있어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나? 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아!!!
그때 무속인이 역마살이 무엇인지도 얘기해줬다. 역마... 사주팔자에 말이 여러 마리 있다는 거라고 했다. 남동생은 말이 5마리쯤 있고 나는 두 어 마리 있다며 ㅎㅎㅎㅎ
오늘 갑자기 최승호 시인의 '역마살'을 읽으니 그때가 생각이 났다. 마지막 행, "탄자니아의 햇빛과 흙냄새와 바람을 또 그리워한다." 이 부분에서 입이 떡 벌어지며 이 시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나... 지금도... 이 밤에... 시동을 걸고 싶다는 ㅎㅎㅎ ^^
(참고로 우리 엄마는 넌지시 우리 가족의 운세를 다 봤고, 겨우 5만원을 내밀었을 때 그 무속인은 아주 인상이 좋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