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같은 아침/제 25회 재생백일장 입상(글제 : 폭염)
"빠빠 빠빠빰 빠빠라 밤밤 빰빰빰~’
새벽부터 세찬 군악대의 나팔이 울린다. 해도 뜨지 않은 6시 30분, 5분 간격으로 온 집안을 시끄럽게 깨운다. 소음이 따로 없다.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이 맞춰놓은 알람이다. 그 시간에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끄지도 않고 계속 잔다. 송곳처럼 날카롭게 울려대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엉덩이를 때려보고 등짝을 후려져 봐도 죽은 듯이 자는 모습이 약이 오를 지경이다.
“이제 안 깨울테니 걸어서 가던지 자전거를 타고 가던지 알아서 해!”
“알았어. 알았다고. 일어나면 될 거 아니야.”
뭘 잘했다고 있는대로 짜증을 내며 8시가 다 되어 겨울 일어나 주신다.
지구온난화의 현주소가 우리 집이다. 사랑과 정성, 1000일간의 눈 마주침은 온데간데 없다. 그저 올 여름의 지루한 폭염이, 웃음소리 끊이지 않던 내 터전을 시샘한다. 초대장을 보낸 적도 없는데 염치없이 도착해서 모자(母子)간의 행복을 갈라 놓고 있다.
얼마전부터 가슴 한 곳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예전과 달리 소리를 지르고 있다. 얼음물을 먹어봐도 도무지 열기가 식지 않는다.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갱년기 증세일 수도 있다고 한다.
원하는 대로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나도 쉰 살을 목전에 두고 있다. 택시의 할증시간이 풀리는 새벽 4시에 자도 괜찮았다. 하루 5개 이상의 수업을 하고도 피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영양제 없이는 눈꺼풀이 떨리고 카페인 음료는 물처럼 마셔댄다. 마라탕이며 불닭 볶음면을 누가, 왜 먹는지 몰랐다. 그런데 관심조차 없었던 음식들을 주기적으로 흡입하고 있다.
대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이었다. 친구들과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 삐삐가 울렿다. 공중전화를 찾아가서 음성 메시지를 확인했다.
“느그 엄마, 요즘 갱년기인지 기분이 영 별로드라. 밥도 안 먹고 밤에 잠도 못 잔다. 느그가 자주 전화도 하고 좀 챙겨라.”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이 수화기 너머 그대로 전해졌다. 그 후 우리 삼남매가 엄마를 어떻게 챙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갱년기라는 것이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몰라서 도움을 드리지 못하고 넘어갔던 것 같다.
폭염에는 에어컨이 처방전이다. 누진세를 지불하더라도 전기요금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아이스르림, 냉면도 도움이 된다. 우리 집에 와 있는 사춘기와 갱년기에도 오아시스가 필요하다. 이제 곧 대기중인 ‘중 2병’과 ‘오(吾)춘기’를 겪고 있는 남편까지 합세했다. 조용히, 그러나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나의 애정어린 그것까지.
해가 지고 텃밭에 물을 줬다. 고추며 상추, 석류나무와 아로니아가 목을 축인다. 생기를 잃었던 잎들이 탱글탱글하게 살아난다. ‘머지 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향하여’ 장마보다 더 지루한 터널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을 하려고 폭염이 우리 집으로도 왔을 것이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가 이토록 내 마음에 와 닿은 적이 없다.
어느덧 여름이 가고 이불을 끌어당기게 되는 가을이 되었다. 오늘 아침에도 나팔소리가 아들 방에서 울렸다.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왜 이렇게 이른 시간에 알람을 맞춰 놓은 거야? 끄지도 않고 계속 자고 있는 너도 참 대단하다. 얼른 일어나! 오늘 토요 방과후 있는 날이잖아. 학교 안 가니?”
“알았어, 알았다고. 일어나고 있어. 아침부터 잔소리 좀 그만해. 1절만 해 제발!”
듣기 좋은 노래도 아닌데 2절을 넘어 돌림노래를 할 뻔 했다. 아들의 말이 나를 웃게 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봄날처럼 맑게 웃었다. 감당할 수 있는 폭염의 날을 기대해 보며 아들을 대신해서 알람을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