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기엔 너무 맛있는데요.
(송고한 원고가 채택이 되어 기사로 나왔다.)
28일 오전에 김장을 하러 친정에 다녀왔다. 집에서 친정까지는 50분 거리인데, 신호등 하나 없는 산길을 달리다 보면 경상북도 수목원이 나타나고 늦가을 단풍길이 펼쳐진다. 김장을 하러 가는 길이었지만 올해의 마지막 단풍, 아니 정확히는 도로 양옆에 무리지어 나뒹구는 낙엽들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낙엽이 눈처럼 흩날렸고, 그 풍경을 충분히 담아 오듯 달렸다.
아마 다음에 친정에 가면 눈이 내려 있을 것이다. 그다음은 새싹이 돋고, 또다시 무더위와 초록이 돌아올 것이다. 이렇게 한 해는 지나간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생각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지만, 해마다 세월이 더 빠르다는 사실 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나도 이제는 시력이 예전 같지 않아 자주 침침하고, 기억은 흐려지고, 피로는 쉽게 찾아오고, 회복은 점점 느려진다. 어쩌면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도로에서 바람 결 따라 아무렇지 않게 나부끼던 낙엽을 보며 그런 생각들이 연달아 흘러나왔다.
엄마는 원래 이번 주 일요일에 김장을 하자고 하셨다. 주말에 스케줄을 비워놓고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제(27일) 갑자기 전화가 와서 배추를 절였다고 했다. 올해는 배추가 제대로 자라지 않아서 절임 배추를 산다고 하셔서 고생을 좀 덜으실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배추를 직접 절이셨다고 하니 잔소리부터 나왔다. 두 분 다 이제 몸도 많이 불편하신데 그 고생을 하셨다니 속이 상했다.
오늘 아침, 평소보다 중학생 아들의 등교는 한 시간이 빨랐다. 그래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씻고는 곧장 학교를 간다고 차에 오르는 모습이 의젓해 보였다. 이른 시간이라 서리와 이슬로 마당에 세워 둔 차는 물기 제거가 시급했다. 이참에 걸레를 가지고 와서 세차를 하는 마음으로 실컷 닦았더니 꽤 깨끗했다. 교문에 내려주자 마자 곧장 달려갔더니 친정에 도착한 시간이 8시 30분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 시간은 겨우 교문을 통과하는 때였다.
본격적으로 배추에 양념을 버무리기 전에 한 포기만 섞어서 먹었다. 더 가감할 것 없는, '따봉'이었다.
엄마는 나와 아버지를 위한 아침 식사 준비를 해 주셨다. 엄마는 나중에 드신다고 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엄마표 따뜻한 밥상이었다. 갈치도 굽고 고등어를 넣은 시래기 찌개도 호호 불어서 야무지게 먹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총무로 임하고 계신 동창회의 앨범 만드는 작업을 도와드렸다. 나는 사진과 문구를 편집하고 아버지는 해당 사진에 날짜와 주요 글귀를 불러 주셨다. 그렇게 한참만에 8장의 사진첩을 완성하고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동생이 컬러프린트와 마스킹테이프로 예쁘게 작업해서 보내준다고 했다.
여동생은 올해 2월에 인천으로 이사를 가 버려서 김장하러 오지를 못했다. 남동생 내외는 아이들과 네덜란드에 살다가 여름부터 미국에 살고 있으니 올 수가 없다. 대신 전화로 안부를 전했다.
밥상을 물리고 나는 어제 미리 샀던 고무장갑을 끼고 작업복으로 환복도 마쳤다. 엄마와 나는 버무리고 아버지는 배추를 옮겨 주셨다. 배추가 없다더니 사지도 않고 어떻게 구했냐니까 아는 댁에서 40포기를 무료로 주셨단다. 아이고 감사해라. 돈을 드렸지만 한사코 만류하시다가 결국은 엄마 손으로 돌아왔단다. 대신 나중에 식사를 대접하기로 하셨단다. 역시 정이 철철 넘치는 고향 마을이다.
이번의 김치는 모든 면에서 만점이었다. 짜지도 않고 맵지도 않았다. 배추도 적당히 절여져서 버무리기에 그만이었다. 작년까지는 너무 많이 절여서 포기가 주먹만큼 작았는데 올해는 적당했다. 우리집은 생갈치를 갈아서 넣는다. 비릴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1년을 두고 먹어도 깊은 맛이 들면 들었지 전혀 이질감이 없다(제피, 산초가루도 넣는다).
주변의 언니들 말로는 다른 건 몰라도 김치와 장류 담그는 법은 친정엄마께 꼭 배워두라고 했는데... 나는 그렇게 하면 슬픈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일부러 배우지 않고 있다. 이 말 뜻을 이해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학원의 선생님인 나는, 오후 1시 40분부터 첫 수업을 하는데 다른 날 보강을 하고 김장을 더 도와드리고 와야 하나? 그 생각을 했다. 생각보다 빨리 진행이 되어서 시간에 맞추어 학원으로 도착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은 두 상자는 엄마와 아버지, 두 분이 하시기로 했다. 나는 일부러 두 통을 들고 왔다. 우리 집에는 김치 냉장고가 없다. 그래서 한 통씩 친정에서 갖다 먹고 떨어지면 다시 가서 가져온다. 이번에는 지인들과 나눠 먹고 싶어서 더 가져온 것이다. 친척 오빠한테 한 무더기, 친한 미용사 언니한테 한 봉지, 피아노 원장 선생님께도 드리고, 빵식이 친구네도 드렸다.
통은 훅훅 줄었지만 마음만은 꽉 찼다. 그리고 학원에서 시험 대비로 공부하는 중학생들과 함께 저녁으로 맛있게 먹었다. 김장은 절대로 만만하게 볼 음식이 아니다.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며칠이나 걸리는 중노동이다.
아버지 입에서 '내년부터는 하지 말자'는 말이 나온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어떡하나? 우리집 김치가 제일 맛있는 것을... 고춧가루, 마늘, 파... 농산물은 죄다 우리 밭에서 나온 것이다. 엄마와 아버지의 수고로움으로 편하게 김치를 먹을 수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있다.
올해 김치는 대 성공이다. 한동안 다른 반찬은 생각나지도 않을 예정이다. 두 분, 몸살이 안 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