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린 정일근 시인의 시로 백일장에서 수상 . 나도 그런글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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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자주 가는 집 근처 도서관에서 정일근 시인의 시집을 읽고 필사를 했다. 내가 정일근 시인을 알게 된 것은 포항 지진이 있던 지난 2017년였다. 고3 학생들이 모의고사를 치고 온 날, 국어영역(당시에는 언어영역, 나는 학원 국어 강사였는데 마침 그날은 과외를 하는 날이었다) 풀이를 해 주는 시간에 문학 지문애서 낯선 시인의 낯선 시를 보았다. 그게 바로 정일근 시인의 '어머니의 그륵'이었다.
어머니의 그륵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 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 있도록 불러 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수업을 하는 강사이기에 무슨 지문을 가져오더라도 해석과 풀이를 해줘야 한다. 나는 그날 그 시를 처음 봤다. 찬찬히 읽으며 해석을 하다가 두어 군데 행에서 울컥 하고 눈물이 터졌다. 아이들은(남학생들) 전혀 공감을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선생님이 갑자기 목소리를 떨면서 눈가에 눈물까지 맺혔으니 더욱 의아했을 터.
분명 처음 보는 시였는데 내용을 따라 읽다보니 그냥 슬펐다. 시골에 계신 친정엄마도 생각나고 마치 내 얘기 같기도 하고 그랬다. 그때부터 나는 정일근 시인이 괜히 친근하게 여겨졌고 수업을 할 때 시가 나오면 늘 반갑고 애잔했다. 만난 적도 없고 시인의 시를 많이 접한 것도 아닌데 내 마음을 다독여준 것 같아 종종 빚을 지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다가 올해 9월, 경주에서 열리는 '제 52회 신라한글 백일장'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날의 글제는 <신라문화제>와 <한글>이었다. 너무도 원초적인 제목이라 막막했다. 백일장의 이름을 그대로 따와서 글제로 만들었다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둘 중 어떤 제목으로 산문을 적을까 고민하다가 택한 것이 <한글>이었다. 무슨 내용으로 적어야 할지 선뜻 원고지에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시인의 시가 생각이 났고 그 내용과 친정엄마와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글을 적었다.
주어진 시간을 꽉 채워서 그저 정성껏 쓰면서도 기분은 좋았다. 언젠가 한번은 '어머니의 그륵'을 써 먹을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바로 그날이었다. 미련없이 다 쓰고 제출을 했다. 백일장 수상 여부를 당일날 알려주는 것이 놀라웠다. 점심을 먹고 기다리고 볼 일을 보고 있을 때 문자가 왔다. '백일장에 입상하셨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기분좋은 설렘으로 내가 받을 상이 무엇일지 상상하며 시상식장(경주 문협 사무실, 예술의 전당)으로 갔다. 속으로는 '제발 너무 일찍은 나를 부르지 마시오~' 하는 마음 뿐이었다. 그러면 장려나 가작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상들도 모두 귀하지만 사람인지라 욕심이 났다.
장려를 지나 가작에도 내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이제 남은 상은 우수상과 장원이었다. 드디어 우수상에 내 이름이 불려졌다.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너무 기뻤다. 뒷 자리에 서 있다가 수상을 하러 나가는 그 10여 미터의 길이 길게 느껴졌다. 노랗고 멋진 케이스에 담긴 우수상과 소정의 상금을 받았다.
이로써 나는 정일근 시인에게 빚을 갚은 느낌이었다. 내가 시인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드렸다기보다는 그분의 작품을 늘 품고 살았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일화를 시인께서 알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괜히 당당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문학을 참 좋아한다. 많이 읽어서 좋아하는 것보다 내 가슴에 울리는 하나의 단어나 문장을 발견하는 것을 즐긴다. 또 그런 날은 으레 지인들에게 나의 감동을 그대로 전하며 메시지로 보내주는 편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감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런 내가 이제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전자책부터 발행해 볼 요량으로 말도 안 되는 내용이지만 초고를 써 놓은 상황이다. 비록 퇴고의 문을 아직 두드리지는 못했지만 마음의 준비가 되면 그 험난한 길을 걸어볼 생각이다.
언젠가 나의 글을 통해 단 사람이라도 감정이 동요되거나 울림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 욕심이 생겼다. 정일근 시인의 시를 읽으며 내가 받은 감동이 시간이 흘러 백일장으로 이어진 것 같이 말이다. 좋은 시와 작품을 읽고 필사를 하며 문학에 대한 소양을 계속 키워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