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만한 위로와 응원을 해 주는, 꽤 괜찮은 책

『쓸 만한 인간』(박정민)

by 박수정


요즘 내 일상은 온통 핑크빛이다. 예고도 없이 불쑥,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배우이자 작가인 박정민, 그가 내 삶의 경계선을 넘어 깊숙이 침투해 버렸다.


2025년 11월 19일에 청룡영화제를 했다고 한다. 나는 티비를 보지 않았으므로 알지 못했다. 그 후에 유튜브에 알고리즘이 계속 뜨는 박정민과 화사의 영상을 별스럽지 않게 넘겼다. 한번도 누르지 않았는데도 영상은 자꾸 올라왔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11월의 끝자락에서 무심코 누른 짧은 영상 하나가 내 삶의 시계를 멈춰 세웠다. 그날 이후 내 머릿속은 온통 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빈틈이 없다. 시간이 벌써 보름이 지났는데도 나는 여전히 박정민에게서 못 헤어나오고 있다.


영상을 처음 클릭했을 때 박정민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 화사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객석에 앉아서 왼손을 턱에 괴고 무대를 응시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의 옅은 미소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마음을 빼앗겼다. 그리고 무대 한켠에서 화사가 노래하는 모습을 옅은 미소를 띠며 유심히 바라보는 그 장면에서 내 음은 완전히 빼앗겨 버렸다. 언어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하고도 강렬한 이끌림이었다. 단순히 가슴이 '쿵~' 내려앉거나 단전이 ‘찌릿’ 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처음 느낌은 “아~ 이래서 지금 인기가 있나 보네.” 하는 정도였다. 오른쪽 얼굴이 카메라에 계속 잡혔는데 그 표정이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기다리는 사람 자체였다. 보는 내가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흐드러진 벚꽃 잎이 연분홍빛 비가 되어 내리는 봄날 같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세상의 모든 다정함을 끌어모은 듯한 그의 표정은 보는 내내 내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했다.


둘만의 데이트를 준비하는 사랑하는 연인 같았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하는 3개월 정도 된 연인의 모습처럼 보였다. 여자친구가 사랑스러워서 뭐든지 다 받아줄 수 있는 서너 살 많은 남자친구 정도로 설정하면 좋을 것 같다.


참으로 구체적으로도 상상해보는 내 모습이 너무 웃기다. 그런데 나는 지금 이 글을 새벽 1시 14분에 쓰고 있는데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다. 오히려 설레고 심장도 조금 빨리 뛰고 있다. 기분 좋은 호르몬이 온몸을 한 차례 정화해 주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영상 속 그를 수백 번도 더 만나는 동안, 새벽 3시 이전엔 도저히 잠들 수 없는 밤들이 이어졌다. 열정적인 집필 끝에 야심 차게 계획했던 첫 에세이의 퇴고 작업도 그의 마력 앞에 잠시 멈춰 섰다.


내 인생의 첫 에세이를 쓰고 호기롭게 퇴고를 하려고 책을 읽고 또 읽으며 글을 썼다. 나의 열정이라는 것은 불같은 집중력과 추진력이다. 11월 5일부터 21일까지 글을 완성하고 열흘쯤 묵혔다가 12월이 되자마자 파일을 열려고 했다. 최소 7차례 수정작업을 거치고 신문사 편집장을 했다는 지인과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지인에게도 보여주기로 했다. 프린트도 해서 체크를 하고 손을 본 후에 12월 24일에 전자책으로 발행하려고 했는데 이 모든 게 잠잠이 쉬고 있다.

박정민과 함께 하는 동안 내 글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물론 허비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너무 행복했기, 아니 행복하기 때문이다. 수업을 하다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가끔씩 졸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한번은 초 2 윤준이에게 꾸벅하고 눈을 감다가 걸린 적도 있다. (매일 하루 3~4시간만 자다보니 ㅜㅜ)


자동적으로 재생되고 있는 박정민의 영상과 화사의 굿굿바이 노래로 하루가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다.


사실 내게 박정민은 배우보다 작가로 먼저 각인된 사람이었다. 산문집 『쓸 만한 인간』을 읽으며 혼자 킥킥대던 기억이 선명하다. 에세이를 즐기지 않던 내 취향을 단숨에 뒤집어버린, 그야말로 '물건' 같은 책이었다.


첫 장부터 재미있었다. 혼자서 키득키득 거리면서 읽었다. 나는 원래 책을 많이 읽거나 빨리 읽는 편이 아닌데 그 책은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에세이 분야를 절대적으로 선호하는 편이 아니었는데도 그 책은 예외였다.


연예인이 쓴 책으로는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를 베스트로 꼽고 몇 번 읽은 적이 있다. 너무 좋아서 나중에는 구매까지 했을만큼 마음 속의 1등이었다. 그 순위를 단숨에 뒤집어 놓은 것이 『쓸 만한 인간』이었고 지인들에게 추천을 많이 했다. 그렇게 박정민은 내게 배우보다는 작가였다.


그 후에 본 것이 <그것만이 내 세상> <시동> 이런 식이었다. 그때도 연기를 잘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내 마음 속 원픽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청룡영화제 영상을 보고 보름이 지나도록(지금은 한 달이 넘어가고 있다ㅠㅠ 큰일이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중이다.


파도 파도 무슨 영상이 이토록 많은지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생각하는 것도 멋있고 글씨도 예쁘다. 성격도 확고하고 사상마저 마음에 든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한 책임감과 해야 할 당위성을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입꼬리가 자동적으로 올라간다. ㅎㅎ 무엇보다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우면서도 배울 점이라고 생각한다.


박정민은 이렇게나 열심히 사는데 나는 도대체 이 시간까지 무얼하고 있나 싶어서 화면을 끄려고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책 더미는 무너져 내리고 루틴은 깨졌지만, 그의 성실함과 엉뚱함은 무기력했던 내 하루에 단비가 되어주었다. 스며드는 정도가 아니라 게릴라성 폭우처럼 나를 흠뻑 적시고 있지만, 이 소중한 감정마저 글의 동력으로 삼으려 한다.


딱 하나만 영상을 보고 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돌아서면 새벽 3시가 되어있으니 참으로 낭패다. 마감일을 정하지 않고 일들을 하고 있으니 더 진척이 없다. 미치겠고 환장하겠다.


일주일 정도 영상을 봤을 때 ‘내가 이 배우를 좋아하나보다’하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는 혼잣말로 ‘귀엽다’라면서 웃고 있는 나. 중증이다. 아이고야~~


다행히 오늘은 도서관에 가서 반납을 해야 하는 책들을 바쁘게 읽었다. 할 일은 해 가면서 영상을 봐도 봐야 하건만 내 삶을 완전히 잠식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의 성실함과 엉뚱함이 나를 웃게 한다. 한동안 무기력했던 하루하루에 단비처럼 다가온 박정민. 스며들면 좋으련만 동남아의 스콜처럼 너무 흠뻑 적시고 있다. 그 와중에 일도 하고 가정도 돌보고는 있지만 이번의 증상은 꽤나 심각하다.


얼른 이 감정에서 빠져 나가고 싶은 마음과 계속 머물러 있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고 있다. 이런 증상은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것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없다. 허나 내가 박정민을 좋아한다고 해서 해야 할 일을 미루면서까지 빠져 있으면 안된다.


퇴고는 사실 엄두가 안 나기 때문에 잠시 미뤄두고, 어떤 주제가 되었던간에 글을 써야 한다. 연말이라 모임도 많고 일상이 조금 망가질 수 있다. 그래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서 취미생활을 해야 한다.


폭풍 같은 마음을 글로 쏟아내고 나니 비로소 생각이 정리된다. 이 설레는 감정을 바탕으로, 내일부터는 다시 작가의 루틴으로 돌아가 성실하게 살아가 보려 한다.


이 소중한 감정은 잘 지켜가면서 말이다. (2025.12.15. 1시 45분)




지금은 2026년 1월 1일, 낮 12시 45분. 나는 카페 창가에 앉아 이 글을 다시 읽고, 마무리를 하고 있다. 처음에 이 글을 쓰고나서 일기로 간직 했다. 조금 쑥스럽지만 일기장에만 갇혀 있던 이 글을 세상 밖으로 꺼내기로 했다. 단숨에 써 내려간 투박하고 솔직한 문장들이 지금의 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더욱 소중한 마음을 담은 글이다.


달력이 바뀌고 보름이 흘렀어도, 내 삶의 궤적은 여전히 박정민이라는 중력에 붙들려 있다. 글을 고치기는커녕, 영상을 무한 재생하며 바보처럼 웃고 있는 내 모습에 헛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의 중력에 붙들려 바보처럼 웃는 시간이 즐거우면서도, 이제는 작가로서의 자제력을 발휘해야 할 때임을 안다. 비록 마음 따로 몸 따로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행복한 건 마음 둘 곳이 생겼다는 점이다. 덕분에 자잘한 스트레스와 걱정들이 씻겨 내려갔고, 정신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한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아마 정신적으로는 아주 건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은 한해를 설계하고 멋진 삶을 위해 청사진을 그려볼 예정이다. 부디 계획한 하루를 잘 살기를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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