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
밀라노에 온 지도 벌써 사 개월이 지났다. 밀라노에서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는 이것도 해야지, 저것도 해야지 그랬었는데 계획한 대로 모든 걸 다 하진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계획하지 못한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났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더 행복한 일이 많았다.
이제 곧 밀라노를 떠나서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간다. 바르셀로나는 학교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지내는 타지라면 밀라노는 이모네, 할머니 댁처럼 친척 집 같은 느낌이다. 아무래도 가족처럼 마음 써주는 같이 지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 덕분에 나는 여기서도 여전히 잘 버티고 있다. 나도 곁에 있는 이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사람일까? 뭘 해줄 수 없을지라도 늘 생각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무튼, 밀라노를 떠나기 전에 밀라노 음식을 대표하는 밀라네제 리소토는 꼭 먹어야지.
향신료 사프란을 넣은 리소토인데 이제는 향신료가 보급형처럼 저렴하게 잘 나와서 가정식으로도 종종 자주 먹는다. 사프란을 넣은 이 황금색 리소토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밀라네제 리소토에 얽힌 유명한 유래가 하나 있다
1754년 유명한 미술가이자 유리공인 발레리오 (Valerio della Fiandra)가 이끄는 팀이 밀라노의 고딕 양식 성당의 창문 데커레이션을 맡게 되었다. 그 팀원 중에 한 청년의 별명이 사프라노였는데 스테인드글라스 색감을 낼 때 항상 사프란을 넣었기 때문이다. 그 청년과 발레리오의 딸이 같은 해 9월 8일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장난기 많은 발레리오 팀원들이 결혼식 날 몰래 피로연 식당에 들어가서는 하객들 음식으로 나갈 리소토에다가 사프란을 잔뜩 쏟아 넣었다. 리소토가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아주 예쁜 황금빛으로 변했고 그 음식을 받은 하객들 포함 신랑, 신부 그리고 발레리오까지 예상치 못한 리소토 색깔에 전부 깜짝 놀랐다.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며 발레리오가 노발대발하는 와중에 하객들 몇 명이 호기심으로 리소토 맛을 봤고 맛있다고 난리가 나서 하객들 전부 리소토 바닥까지 다 긁어먹었다고 한다. 그 후 몇 년 뒤 1829년에 이 레시피가 '리소토 알라 밀라네제'라는 이름으로 요리책에 등장했다. 1981년에는 유명한 이탈리아 셰프 Gualtiero Marchesi가 황금 파편을 조금 첨가해서 귀족 음식의 시그니처로 이 요리를 재탄생시켰다. 지금은 (황금 파편 없이) 구내식당에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자주 나오는 밀라노의 시그니처 음식이 되었다.
사프란은 수 세기 동안 비싸고 섬세하고 풍부한 향신료로 각광받아왔었기에 나도 그 맛이 정말 궁금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대체 이게 무슨 맛이지? 그랬었다. 뭔가 화학품 맛이 난다고 할까? 그런데 이 맛이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생각난다. 이탈리아의 평양냉면인가. 점심때 간단하게 가정용 사프란으로 밀라네제 리소토, 사프란 리소토를 해 먹기로 했다.
먼저 소프리또를 만들기 위해서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다진 양파를 좋은 냄새가 날 때까지 볶는다. 그 와중에 야채 스톡을 넣고 육수를 만든다. 이제 리소토용 쌀을 넣고 소프리또와 함께 볶는다. 어느 정도 쌀이 투명해지면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을 넣고 볶는다.
이것이 리소토용으로 나오는 사프란이다. 저 노란 종이 안에 샤프란 가루들이 들어있다. 화이트 와인이 거의 안 보일 정도로 다 날아가면 사프란을 넣어준다. 저 빨간색 가루가 사프란이다.
사프란이 쌀알 하나하나에 골고루 섞이면 이제 끓여놓은 육수를 한 국자씩 추가해서 끓여준다. 쌀이 거의 다 익으면 리소토 완성이다. 다 요리된 밀라네제 리소토, 황금빛 사프란 리소토!
사프란 가루만 있으면 금방 쉽게 뚝딱 만들 수 있는 밀라네제 리소토!
밀라노에서의 시간도 사프란처럼 값지고 황금빛으로 기억될 것이다.
모두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Buon Appeti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