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하면서 살 수 있을까?
항상 드라마의 어떤 씬에서 악당이나 주인공의 잔인한 성격을 보여주는 장면은 주로 피가 그득한 스테이크를 물컹물컹 씹어 먹는다던가 닭다리를 잡고 우적우적 씹어먹는 장면으로 보여준다.
그럴 때면 가끔 나는 징그러운 장면을 상쇄시키고자 저 스테이크가 당근이면 어떨까? 아니면 브로콜리? 이런 상상을 한다.
나의 채식 도전은 1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성인이 된 후부터 근 15년간을 다이어터로 나를 굶기다 찌우다 하며 살아왔다. 그중 하나 채식 다이어트가 있었고 한번 시도해 볼까 하는 마음에 당시 남자친구에게 채식을 해보려 한다 했더니 "코끼리도 풀만 먹어"라는 좌절감을 안겨줬다.
첫 번째 좌절을 맞았지만 종종 채식에 관한 책도 읽고 다큐멘터리도 보면서 채식이라는 씨앗을 마음에 심어 두고 종종 물도 줬다. 내가 있었던 프랑스나 스페인에서는 채식하는 친구가 많이 없었지만 그래도 종종 채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아주 간혹 가는 식당에서 채식 메뉴가 있으면 시켜 먹어보기도 했다. 지금 사는 네덜란드에서는 채식주의자도 많고 채식옵션, 채식식당도 많다. 보통은 유제품과 우유까지 먹는 채식이 제일 보편적인 것 같다 (낙농업 국가라 그럴 수도..) c최근에는 정부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정책으로 낙농업의 대규모 제제를 시작해 농부들이 파업을 하기도 했다. (https://www.bbc.com/news/world-europe-62335287). 학교에서 하는 행사에서도 고기는 찾아보기 힘들고 고기가 나와도 물고기, 생선이 제공된다. 가장 쇼킹했던 채식선언은 프랑스에서 만난 폴란드 친구였다.
자기는 이제 칼로 죽일 때 소리 지르며 발버둥 치는 모든 것들을 먹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채식을 해볼까라는 생각에 휘발유를 부은 것은 전범선 작가의 '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라는 책이다. 이 책은 몇 달이 지나도록 생각이 났다. 남편에게 책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자기도 사실 고기가 조금 소화가 안된다고 했다. 50년을 다이어트에 매진한 남편의 이모는 혈액형 다이어트 마니아인데 이번 겨울 이탈리아에 갔을 때 우리 같은 A형은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며 연설하셨다.
거창하게 채식!!!!! 이렇게 시작하면 나가떨어질 것이 분명하므로 우리는 페스코부터 다시 해보기로 했다.
우리의 룰은 이렇다.
1. 눈이 있는 것을 먹지 말 것
2. 한 끼는 완전한 채식을 할 것
3. 외국에 (한국이나 네덜란드가 아닌 다른 나라)에 가면 뭐든 먹을 것
4. 설탕으로 고기를 대체하지 않을 것
조금씩 조금씩 당근 먹는 악당이 되어가 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