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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득여사 Jul 05. 2024

"친구들하고 잘 놀았어? 밥은?"

# 엄마에게 딸이 요즘 하는 말, 엄마가 딸에게 예전에 했던 말

퇴근 루틴.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의 목소리가 낭랑하면 안심이 된다. 혹시 조금이라도 힘이 

없거나 목소리가 맑지 않으실 때는 마음이 노심초사가 된다. 삼년 전 엄마는 넘어지시면서 한쪽 다리를 다치셨다. 혼자 지내시는 데다 팔순이 지나셨고 몸은 3XL이시다보니 거동이 쉽지 않았다. 주말마다 차로 한 시간을 달려 엄마에게 다녀오는 것이 이제 일상이 되었다. 


다행히 엄마의 긍정적인 성격 덕분에 느리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계신다. 한 발 한 발 디디고 걷기가 어려운 상태였으나, 현재는 뒤뚱뒤뚱(엄마 표현) 하시지만 느리게 걸으실 수 있다. 지팡이는 필수. 아파트가 아닌 단독이라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이 또한 엄마에게는 일상의 재활치료가 되었다(2층 계단을 오르고 내리셔야 하니).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는다고 엄마는 신기하게도 계단을 뒷걸음질로 잘 내려가신다. 두 팔로 계단 난간을 꽉 붙들고서 말이다. 엄마의 팔 근육과 다리 근육은 나보다 월등하다.   



다치시기 전의 엄마의 일상의 가장 큰 낙은 매일 아침 걸어서 이십 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사우나에 다녀오시는 것이었다. 사교성이 좋은 엄마는 사우나 친구들과 맛난 것도 사 드시고 재미나게 시간을 보내셨다. 


7년전 아빠가 돌아가시고 혼자 생활하시는 엄마가 혹여, 외롭지는 않으실지 독립적으로 살기가 가능하실 지 걱정이 되었었다. 그때도 엄마는 나의 우려와는 달리 혼자 살기에 꽤 적응을 잘 하셨고, 오히려 모든 숙제를 다 하고 난 학생처럼 홀가분 해 보이셨다.  


엄마가 자가재활을 시작하시면서 스스로 만드신 신념은 ‘거북이처럼 느리게 하지만 쉬지 않고’이다. 처음에는 안방에서 거실까지 걸어 나오시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거북이 엄마는 ‘엉금 엉금! 느릿 느릿!’ 한 걸음 씩 걷기를 계속 하셨다. 집안에서의 워밍업이 몇 달,  뒷걸음질로 계단 내려오고 오르기 몇 달, 대문에서 십여미터 까지 걷기 몇 달 그리고 다리를 다치신 지 1년 만에 엄마 집 근처 놀이터(거리로는 40여미터쯤)까지 걸어가시기 성공!!

그리고는 비가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매일 놀이터로 가셔서 걷기 연습을 하셨다. 



엄마의 사교성 좋고 긍정적인 성격은 놀이터에서도 빛을 발했다. 서울의 단독 밀집 주거 지역이라 동네에 노인정도 없는 터라, 놀이터는 자연스럽게 ‘야외 노인정화’ 되어 있었다. 

어느새 엄마는 놀이터의 터줏대감 이자, 안방 마님이 되었다. ‘왕벌’이라는 별명까지 갖게 되셨다. 엄마의 체격 때문에 붙여 진 별명인 줄 만 알았는데, 엄마가 놀이터에 나오신 뒤로 동네 노인 분들이 하루가 다르게 많이 들 모이시게 되셔서 붙여 진 것이란다. 

빛나는 왕관에 가장 큰 날개를 달고 위풍당당하게 꿀벌들 가운데 앉아 있는 엄마를 상상하니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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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주 주말에 엄마네 가면, 엄마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시느라 신이나신다. 어떤 날은 엄마 얼굴이 피곤 해 보이고 푸석푸석 해 보이다가도 놀이터 이야기 보따리를 한 참 풀고 나면 얼굴이 바뀌신다. 어느새 피부는 촉촉해지고 생기가 도는 것이다. 

엄마는 이야기를 어찌나 재미나게 하시는지, 재연배우로 프로급이시다. 


그래서,

나는 매일 퇴근 할때 마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꼭 묻는 말!


“엄마, 놀이터 재미 있게 다녀오셨어?”

“친구들분들 다 나오셨어?”

“식사는 잘 드셨어?”


‘친구들과 잘 놀았니?’ ‘밥은 잘 먹었니?’ 

내가 어릴 때 엄마에게 수 도 없이 들어 왔던 말, 

내가 우리 딸에게 수 도 없이 했던 말.

 결국 같은 말이었다.



퇴근 후 열심히 오이부추 김치를 담근다. 내일 엄마네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일하면서 아이 키우느라 힘들겠다며 엄마는 늘 이것 저것 반찬을 만들어 주셨었다. 

그래서 나는 이 나이 될 때까지 사실 요리에는 흥미도 크게 없지만 할 기회도 많지 않았었다. 

이제는 내 차례.

엄마 덕분에 요즘 나의 요리실력이 늘고 있다.   


‘인생은 돌고 도는 물레방아’라는 구태의연 한 옛노래 가사처럼. 

우리의 인생은, 인간의 삶은 이렇게 돌고 돌아 가는 것이리라!


“엄마, 오늘도 놀이터에서 잘 노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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