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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득여사 Jun 20. 2024

베르디의 두려움

  우리집 강아지의 이르은 베르디. 이름은 어느집 강아지보다도 우아하고 클래식(?)하지만 모습은 안타깝게도 이름값은 못하는 너티보이. 실버푸들은 귀티난다 해서 더욱 기대가 컸던 베르디였는데….. 역시 태생보다 환경이 중요한 것인가! 베르디는 확실히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의 기대를 빗나갔다. 누구를 탓하랴. 알뜰살뜰 살펴주기에는 우리 가족은 늘 바쁘니 말이다. 가족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보니 우리 베르디는 대부분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형편이다. 그래서인지 태생이 그런지 베르디는 겁도 많고 피부도 좋지 않아 늘 자기 살을 물고 뜯고 해서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그래도 우리집에 온 지 벌써 몇 해가 지났고 베르디는 ‘우리 베르디’로서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가뜩이나 베르디는 안쓰러운 구석이  많은 녀석인데 가끔 참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진다. 그것은 베르디를 공포로 꼼짝 못하게 하는 정체 때문인데 바로 ‘베르디의 똥’ 때문이다. 베르디는 가끔 응가를 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거실 복도를 질주하고는 구석에 딱 눌러 앉아 버릴  가 있다. 가까이 가 보니 꼬리를 둥글게 말고 몸을 웅크린 채 작은 온 몸을 사시나무 떨 듯이 떨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눈빛은 겁에 질린 듯 하고 가뜩이나 가느다란 다리가 더욱 앙상하게 뼈가 도드라진 채 잔뜩 구부리고는 또아리를 틀 듯이 앉아서 떨고 있는 모습에 우리는 놀라기도 하고 걱정이 되어 어쩔 줄 몰랐다. 처음에는 ‘아이고 베르디가 큰 탈이 났구나’ 싶어서 당장 동물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가까이 가서 베르디를 안아 올리려 하자 베르디는 사납게 송곳니를 드러내며 우리를 얼씬도 못하게 한다. 억지로 다가갔다가는 딱 물릴 판이다.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몇 시간째 베르디는 처음 웅크린 자리에 머물러 있다. 다행히 떨림은 가라앉은 상태. 나는 베르디가 좋아하는 간식으로 일단 베르디를 움직이게 해야 겠다 싶었다. 고구마는 베르디의 최애 간식이다. 고구마를 베르디에게 십센티정도에 던져 주었다. 코를 벌름거리며 작은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고구마를 향해 몸을 움직여보더니 뭔가 깜짝 놀란 듯이 다시 철푸덕 주저앉는다. 그렇게 좋아하는 고구마를 코 앞에 두고도 꼼짝 못하는 베르디가 참으로 안타까웠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또 몇 시간이 지났다. 다시 관찰. 이제는 베르디는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몸을 좀 움직거리며 웅크리던 자세가 좀 느슨해져 살짝 옆으로 누운 형태가 되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때 발견할 수 있었다. 꼬리 밑에 '데롱데롱' 달려있는 그것을. 콩만한 똥덩어리가 베르디 엉덩이 주변의 털에서 굳어진 채 매달려 있는 것이다. 아하! 저것 때문이었구나. 바보같은 베르디 녀석. 아무것도 아닌 자기 똥 덩어리인 줄도 모르고. 떼어주려고 살금살금 손을 뻗는데 순간 똥덩어리 근처에 손이 닿기도 전에 졸고 있던 베르디는 한 마리의 표범같이 돌변해서 공격하려 드는 것이었다. 결국 베르디는 엄청난 두려움의 대상을 자기 엉덩이에 매단 채 공포와 두려움으로 이틀을 보냈다.


  이틀 뒤 밤이 되어서야 베르디는 다시 ‘우리 베르디’로 돌아왔다. 가뿐한 몸놀림으로 꼬리를 흔들어 대며 졸졸 따라다닌다. 역시나 공포의 그것은 거실바닥에 초라하게 떨구어져 있다. 휴지로 공포의 그것을 집고는 들여다보았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 작고 작은 똥덩어리 일 뿐.

 

  ‘바보 같은 녀석’이라고 웃어넘기려다가 문득 드는 생각. 우리도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우리는 때때로 실체가 무언지도 모른 채 막무가내로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 잡힐때가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결국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닌 것에 불과한 것에 우리는 쩔쩔 맬 때가 많다. 결국 그 두려움의 정체는 있기나 했던 것인지, 어쩌면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베르디의 굳어버린 ‘콩 만한 똥덩이리’처럼 ‘하하’ 웃음으로 던져버릴 수 있는 하찮은 무언가에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는 것이다.

베르디의 공포의 '그것'을 변기에 넣고 버튼을 꾹 누른다. 변기물이 소용돌이 치며 공포의 '그것'은 변기속으로 ‘꼬로로’ 빨려 들어간다. 안녕.

  잘가라. 똥 덩어리여! 너는 어쨌든 유죄이니 사라져라.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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